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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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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설립 취소에 분노하는 만국의 교사들

헌법재판소 ‘전교조 법외노조 근거법’ 합헌 결정… 국제노동단체들 한국 정부가 약속·국제협약·국제상식 위배했다며 목소리 높이고 있어
등록 2015-06-04 06:55 수정 2020-05-02 19:28

해직 교원을 조합원에서 제외하도록 한 법조항(교원노조법 제2조)에 문제가 없다고 헌법재판소가 5월28일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라고 선언한 근거였다. 헌재 결정은 법외노조화를 둘러싼 법적 다툼에서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직 전교조 교사이자 기자가 정부의 ‘전교조 옥죄기’를 바라보는 세계 교사들의 시각을 적어 보냈다. 편집자

지난 5월17일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사포럼이 열렸다. 윤근혁

지난 5월17일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사포럼이 열렸다. 윤근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노조로 보지 아니함.”

2013년 10월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이같은 글귀가 적힌 공문을 팩스로 보냈다.

“‘노동조합’이지만 ‘노조가 아니다’”라는 이 모순된 내용을 담은 통보문 한 장. 이것이 세계인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법외노조’ 통보의 이유가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된 교사 9명을 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분노했다.

한국, 세계교육포럼 열 자격 있느냐?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2013년에만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긴급 개입’을 통지했다. 같은 해 세계 172개국 401개 교원단체가 가입한 세계 최대 교원 기구인 세계교원단체총연합회(EI)를 비롯한 3개의 국제노동단체는 ‘Dear President Park Geun-hye’(박근혜 대통령께)란 글귀로 시작하는 전자우편을 청와대에 보내는 긴급 행동을 결의하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만국의 노동자들’이 나선 셈이다. 교원노조 설립 취소 문제를 놓고 이같은 국제적 항의가 벌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제 망신을 당하는 수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로부터 20여 개월이 흐른 지난 5월17일 인천 송도의 한 호텔. ‘세계인의 교육올림픽’이라는 세계교육포럼 사전 행사로 열린 세계교사포럼에서도 한국 정부에 대한 쓴소리가 터져나왔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이날 수전 호프굿 EI 회장과 모니크 후유 글로벌교육운동(GCE) 의장은 모두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조치는 ILO 협약 위반이며 ‘모두를 위한 교육’을 지향하는 세계교육포럼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EI는 세계 3천만 명의 교사를 대표하는 세계 최대 교원단체고, GCE는 세계 100여 개국의 교육시민단체가 소속된 세계 최대 교육단체다.

세계교육포럼을 주관해온 유네스코의 준비운영위에 참여해온 두 단체 대표의 이러한 경고성 발언은 한국 정부를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지난 5월21일 호프굿 EI 회장은 세계교육포럼 폐막식 대표 연설에서도 “정부와 교사는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세계교육포럼을 열 자격이 있느냐’는 자질 시비가 있어왔다.

“5월에 한국은 2015년 이후의 세계적 교육목표를 다루게 될 세계교육포럼 행사를 연다. 한국 정부가 질 높은 공교육을 위해 노력해온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면서 세계교육포럼 행사를 주최하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난 4월3일 오후 4시,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서 열린 영국 최대 교원단체인 전국교원연합여교사연맹(NASUWT) 전국대회장. 30만 교원이 가입한 NASUWT의 크리스 키츠 사무총장이 이 단체 300여 명의 임원들 앞에서 던진 말이다.

1996년 10월9일의 약속을 잊지 말라

지난 2월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교육포럼 유네스코 준비운영위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EI 대표에게서도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황현수 EI 아시아태평양위 집행위원(전교조 국제국장)은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국 정부의 김아무개 협력관은 EI 대표에게 ‘왜 한국 최대 교원노조인 전교조를 배제한 채 세계교육포럼을 준비하느냐’는 면박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세계 기구들은 왜 이처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까. 국제 교육계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가 국제사회에서 △약속 위배 △국제협약 위배 △국제상식 위배라는 이른바 ‘3배’로 지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먼저 약속 위배다. 한국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승인 이틀 전인 1996년 10월9일, 외무부 장관을 통해 OECD 사무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한국 정부는 결사의 자유나 단체교섭 등의 기본권을 포함하여 현재의 노사관계 관련 법령을 국제적인 기준(Internationally Accepted Standards)에 부합할 수 있도록 개정할 것을 확약합니다.”

이 서한은 OECD 이사회에서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이 “‘결사의 자유’ 미보장”을 이유로 한국의 OECD 가입에 제동을 걸고 나서자, 한국 정부가 이를 설득하기 위해 ‘확실히 약속’(확약)한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은 OECD 쪽은 이틀 뒤인 10월11일 이사회를 열고 한국의 OECD 가입을 최종 승인했다.

당시 한국 정부를 대표해 주OECD 대표부에서 복지·노동담당관을 맡았던 장신철씨의 회고록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OECD에 가입하기 위해 전교조 합법화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장씨는 291쪽 분량의 이 책자에서 “미국과 유럽의 회원국들은 한국의 OECD 가입 교섭 초기부터 노사관계 법제를 국제 기준에 맞출 것을 요구했다”면서 “주요 요구 사항은 △교원의 단결권 보장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 등 8개 항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3년 12월11일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의 교원노조에 대한 탄압 상황을 OECD도 예의주시할 것이며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가 몇 개월 안에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프랑스에 있는 OECD 사무국에서 열린 OECD 이사회-OECD 노조자문위(TUAC)의 정례협의회 자리에서다.
국제협약 위배 또한 국제사회에서 입방아에 오른 지 오래다. 헌법재판소의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법 선고 기일인 지난 5월28일 국제노동조합총연맹과 EI는 공동 의견서를 헌재에 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결정은 ILO 87호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 ILO 회원 국가는 이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해직자가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 등록 취소 결정을 한 것은 국제협약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해직자 품었다고 법외노조? 세계 최초!
1948년 ‘노조의 단결권 보장’을 위해 제정된 이 협약은 제3조와 제4조에서 “모든 노동자와 사용자 단체는 그들 스스로 규약을 정할 수 있고, 행정기관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 중지 명령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상식 위배다.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된 자를 노조에서 보호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오래된 미덕이며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을 내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했다. 당연히 몰상식한 일로 국제사회에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한국 정부의 행동은 세계 최초의 일이기까지 했다.
지난해 9월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서울고법 제7행정부(재판장 민중기)의 판결문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직 교원 아닌 자의 교원노조 가입을 법으로 금지하는 입법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에서는 현직 교원뿐만 아니라 해고자 등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윤근혁 디지털신문국장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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