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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뒤에도 후끈… 물대포에 뭘 탄 거야

경찰, 노동절 철야집회에서 ‘과량 노출시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파바 섞은 물대포 발사… 내부 ‘지침’보다 더 하위 단계인 ‘공문’에 근거한 모호하고 자의적인 사용
등록 2015-05-16 09:37 수정 2020-05-07 01:44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이 기획해 매주 2~3차례 <인터넷 한겨레>에 싣는 ‘더 친절한 기자들’과 ‘뉴스 A/S’ 가운데 가장 깊고 자세하고 풍부한 기사를 골라 <한겨레21>에 싣고 있습니다. 화제가 된 이슈를 기존 뉴스보다 더 자세한 사실과 더 풍부한 배경 정보를 담아 더 친절한 문체로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지난 5월1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진행된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촉구 철야집회를 취재 중이던 저를 포함한 기자들과 1천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밤 10시12분 처음 발사된 물대포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후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던 물대포가 밤 10시39분부터 9분 동안 쉬지 않고 시위대를 향해 쏟아졌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구토와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맨살에 직접 물대포를 맞은 목덜미와 팔뚝은 샤워를 해도 불에 덴 듯 후끈거리고 따끔거렸습니다. 바닥에 고인 물을 보니 우유처럼 하얀 빛깔이었습니다. 물대포의 정체는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였습니다.

지난 5월1일 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촉구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 하자,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경찰이 이들을 가로막고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고 있다. 경찰은 버스 위에서 사진을 찍던 기자들에게도 물을 뿌렸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지난 5월1일 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촉구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려 하자,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경찰이 이들을 가로막고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고 있다. 경찰은 버스 위에서 사진을 찍던 기자들에게도 물을 뿌렸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곳곳에서 구토하고 호흡곤란 호소

이 최루액은 ‘파바’(PAVA)라는 합성 캡사이신의 한 종류입니다. 경찰은 1980년대부터 ‘시에스’(CS)를 물대포에 섞어 써왔는데, 발암물질 등 인체유해성 논란이 불거지자 2009년 시에스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작성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파바는 “심각한 과량 노출시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 피부 접촉, 눈의 접촉, 섭취시 매우 유해. 가려움증, 수포 생성을 초래”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최루액 물대포’에 대한 내용은 경찰 내부 지침에 불과한 ‘살수차 운용 지침’에만 나옵니다. 이 지침에서도 “불법행위자 제압에 필요한 적정 농도로 혼합”해 쏠 수 있다며 ‘모호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최루액 혼합 농도나 최루액으로 쓸 수 있는 화학약품의 종류 등에 관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경찰은 “‘0.5%, 1.0%, 1.5%’라는 상·중·하 기준을 갖고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기준은 내부 ‘지침’보다 더 하위 단계인 한갓 ‘공문’에 나오는 내용일 뿐입니다.

인체에 유해한 최루액 물대포를 모호하고 자의적으로 바꿀 수 있는 지침에 근거해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가족과 시민 등 3명은 5월6일 헌법재판소에 경찰의 자의적인 최루액 물대포 사용을 막아달라는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청구인들의 법률 대리인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최루액 물대포는 시민의 생명권, 건강권,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데 경찰은 법률적 근거 없이 이를 사용하고 있어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헌재 “다시 반복될 가능성 없다” 각하

헌재는 지난해 6월 물대포 사용에 대해 “이미 발사 행위가 종료돼 기본권 침해 상황이 마무리돼 헌법소원을 제기할 실익이 없다. 앞으로 집회 현장에서 당시처럼 근거리에서 물대포를 발사하는 행위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리 자체를 하지 않은 채 각하했습니다. 이후 헌재의 각하 이유와는 반대로 물대포가 반복적으로 사용됐고, 더구나 이번에는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가 사용돼 위해성이 더 커졌습니다. 헌재의 새로운 판단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김규남 <한겨레> 24시팀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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