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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디언> 피처 전문 기자 존 헨리가 말하는 ‘디지털 저널리즘 실험과 혁신’… 독자를 뉴스 생산에 참여하게 하는 오픈 저널리즘 시도, 인터랙티브 기사 ‘파이어스톰’ 통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가능성 보여줘
등록 2015-04-29 10:44 수정 2020-05-02 22:17
독자편집위원 노지원씨는 두 달 전, 월간 에 실린 안수찬 편집장의 글을 보았다. 의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기사 ‘파이어스톰’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글의 마지막은 이랬다. “영국 런던 가디언 본사에서는 존 헨리 기자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강좌가 열린다. ‘파이어스톰’에 대한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는 강연을 직접 듣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돈을 들여 런던으로 날아가 지난 3월23일 강좌에 참석했다. 강연 주제는 ‘피처 (feature) 쓰기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한국 기자들이 흔히 ‘기획 기사’라고 부르는 것이 영미 언론의 ‘피처 기사’다. 존 헨리(55) 기자는 의 피처 전문 기자다. 노지원씨는 이틀 뒤, 헨리 기자를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그 내용을 요약해 에 보내왔다. 그의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의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더 상세한 기사는 언론 전문 교육기관인 프론티어저널리즘스쿨(FJS)의 웹진 (www.storyofseoul.com)에도 게재될 예정이다. _편집자
의 ‘파이어스톰’ 제작진이 컴퓨터 화면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자, 다큐감독, 프로듀서, 에디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구성된 23명의 제작진은 석 달 동안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의 ‘파이어스톰’ 제작진이 컴퓨터 화면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자, 다큐감독, 프로듀서, 에디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구성된 23명의 제작진은 석 달 동안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내가 'AP' 기자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일하던 1980년대만 해도 저널리스트는 유일한 ‘진실전달자’였다. 기자가 기사를 쓰면 곧 뉴스가 됐고, 쓰지 않으면 뉴스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 뉴스인지, 그 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봐야 하는지를 기자가 직접 결정했다. 뉴스는 그렇게 일방향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됐다. 기자가 기사를 쓰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신문 기사는 ‘최후의 언어’였다.

이제 기자들은 더 이상 진실을 독점하지 않는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독자들은 기자보다 더 많이 안다. 과거엔 독자가 하고 싶은 말,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중은 기자가 쓰는 기사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댓글을 달거나, 전화를 하고, 전자우편을 보내 의견을 제시한다.

의사소통은 더 이상 일방향이 아니다.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는 사람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공유된 기사를 클릭해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이가 더 많다. 뉴스가 과거처럼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사는 이제 최후의 언어가 아니다. (언어의) 시작에 불과하다. 뉴스룸은 수많은 상호작용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기사가 독자들에 의해 수정되고, 업그레이드되는 그 투명한 상호작용의 한가운데 있다. 기사는 ‘진화하는 것’(an evolving thing)이다. 대중은 기사의 진화 과정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자가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했다. ‘오픈 저널리즘’(Open Journalism) 시대가 됐다. 기자가 독자에게 조언을 구하고, 또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2012년, 나는 유럽의 경제위기가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혹은 끼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리스에 갔다. 사람들이 금융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기사는 ‘진화하는 것’이다

출발 전 트위터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제가 아테네에 갑니다. (금융위기로 인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이를 이겨내려는 자구책에 관한 이야기를 찾고 싶습니다. 도와줄 수 있나요?” 가야 할 장소와 만나봐야 할 사람들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 좋은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였다. 기획 기사 ‘빈곤의 그리스’는 그렇게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100여 개의 트위트를 받았다. 런던을 떠나기 직전 400명 정도가 내 트위터 계정을 팔로했는데, 일주일 만에 그 수가 1200명으로 늘었다. 팔로어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선택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의 ‘식량 조달 프로젝트’였다. 그리스의 의사와 약사들이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건강보험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메디컬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젝트로 모인 돈은 굶주리는 이들에게 전달됐다. 나는 이 이야기를 웹 블로그에 실었다. 트위터의 ‘지오로케이트’(Geolocate·사용자의 위치 표시 서비스) 기능을 활용해 인터랙티브 지도도 만들었다.

‘빈곤의 그리스’ 기획 기사의 대부분은 이렇게 트위터를 활용한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군중이 제공한 뉴스자료 활용) 기법으로 수집됐다.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트위터 이용자들이 주변의 이웃을 소개해줄 수 있다. 나는 그런 제보자의 실명을 밝히고 그가 취재에 기여했음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이는 대중이 기자의 취재 활동에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동시에 뉴스 생산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트위터 활용한 크라우드 소싱, ‘빈곤의 그리스’

‘빈곤의 그리스’는 다양한 플랫폼으로 구현됐다. 뉴스 블로그에 올린 (개별) 기사들은 일단 홈페이지에 ‘Greece on the breadline’이라는 제목으로 모아졌다. 이후 지면을 통해 보도됐고, 의 토요판 매거진인 ‘g2’의 커버스토리로 재구성됐다.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재활용’(recycling)된 것이다. 인터넷 웹사이트, 블로그 등을 통해 보도한 기사를 재구성해 인쇄매체 등에 옮기면 기사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음은 물론 오프라인으로 영구 보존도 가능하다. “그리스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존 헨리에게 명예시민권을 줘야 한다.” 수많은 반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다. 이런 반응을 얻은 것은 인터넷 등을 이용해 오픈 저널리즘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저널리즘은 중요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기자를,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시대에 ‘좋은 저널리즘’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되찾을 수 있다. 그래서 오픈 저널리즘의 구현이 중요하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오픈 저널리즘은 그것으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기에 효과적이고, 독자와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측면에서 유익하며, 궁극적으로 대중이 그것을 요구하기에 필수적이다.

다만 몇 가지 유의할 점은 있다. 이런 취재 방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취재를 위해 내가 어디에 가야 하는지, 어떤 목소리를 들을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기자가 기사의 주제와 관련한 기초적 배경 취재를 먼저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객관성·정확성·공정성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선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가 나온다. 대중은 그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고 싶어 한다.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길 원한다. 어떤 이야기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이다. 웹에서 구현할 수 있는 텍스트, 그래픽, 오디오, 비디오 등을 메시지 전달에 활용하는 것이다. 거기에 수용자가 어느 정도 통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을 부여한다면 더욱 흡입력 있고 재미있는 멀티미디어 기사를 만들 수 있다.

“대단한 스토리텔링, 이것이 신문의 미래”

2013년 5월, 우리는 ‘파이어스톰’이라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기획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판 출범을 앞두고 있었는데, 뭔가 기획을 해야 했다. 2013년 태즈메이니아에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주들을 찍은 사진을 보고 취재를 시작했다. 뭔가 좋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할수록 엄청난 이야기를 발견했다. 커다란 재앙 앞에서 펼쳐지는 휴먼 드라마 뒤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기후변화와 그 때문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화재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로렌스 토펌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3주간 머무르며 취재했다. 영국으로 돌아와 두 달 동안 기사를 디자인하고, 쓰고, 수정하고, 프로그래밍 작업을 했다.

세계적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상영됐고, 여러 가지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받았다. 트위터를 통해 “주목할 만하다, 감동적이다, 놀랍다, 대단하다, 대박이다, 엄청나다, 세련됐다, 독특하다, 장관이다, 선구자적이다, 영리하다, 우수하다, 강렬하다” 등의 반응을 받았다. 미국 방송 은 “언젠가 모든 언론이 이런 모습일 것”이라 했고, 영국 방송 는 “대단한 스토리텔링. 이것이 신문의 미래”라고 했다. ‘파이어스톰’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를 증명해냈다. 독자들은 ‘파이어스톰’ 웹페이지에 평균 17분 동안 머물렀다. ‘파이어스톰’을 제작하면서 만든 템플릿을 이후 다른 기사에 여러 번 재활용했다.
이제 많은 언론들이 기사에 영상, 음향 등을 삽입한다. 그런데 대부분 텍스트에 나와 있는 내용을 반복한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이 아니다. 여러 저널리스트들이 둘러앉아 어떤 부분을 텍스트로 할지, 비디오, 오디오로 처리할지를 함께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멀티미디어 저널리즘이다.



기자·개발자·디자이너 등 23명 참여,‘파이어스톰’



새롭고 생생한 ‘읽기 경험’의 창조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파이어스톰’(사진)은 오스트레일리아판 창간과 함께 선보인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기사다. 기자, 다큐멘터리 감독,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램 개발자, 멀티미디어 프로듀서 등 23명이 석 달 동안 함께 작업했다. 텍스트·영상·사진·음향을 하나의 내러티브에 녹이면서, 기사 곳곳에 1분30초 안팎의 영상 9편을 기승전결 구조를 따라 배치했다. 전체적으로 영상 이미지와 문자 정보가 분리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자신들의 기사에 대해 제작진은 이렇게 소개한다. “새로운 종류의 생생한 ‘읽기 경험’을 창조하기 위해 논픽션 영상과 음향을 논픽션 내러티브에 부드럽게 아로새긴 맥락적 기사다.”
처음부터 신문 기사, 인터넷 멀티미디어, 전자책의 동시 발간을 의도했다. 전자책은 2.99달러(약 3천원)에 판매되고 있다. 제작 과정과 뒷이야기를 발표하는 유료 공개강좌도 열었다. 기사는 세계 언론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상 최고의 멀티미디어 기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퓰리처상인 워크리상(Walkley Award)의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부문에서 수상했고, 세계 3대 다큐영화제인 영국 ‘셰필드 다큐멘터리영화 페스티벌’의 경쟁작에 올랐다.



추론과 종합 그리고 집중

좋은 피처 기사의 주제를 생각해내려면 세 가지 방법을 염두에 두면 좋다. 첫 번째는 ‘추론’(Extrapolate)이다. 뉴스 뒤에 감추어진 배경 등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라. 두 번째는 ‘종합’(Synthesis)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모아보고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을 찾으면 이 또한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집중’(Focus)이다. 이야기의 가지를 쳐내고 중심을 잡아보는 것이다. 중요한 이슈, 경향, 사건들을 찾고 이들이 실제 사람들 혹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 뉴스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가? 과거의 기사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보도했는가? 누군가 소외된 사람은 없나? 내가 특정한 장소에 가서 혹은 특정 인물을 만남으로써 이 모든 것을 보여줄(Show)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글·사진 노지원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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