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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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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통과해 겨우 0점을 향하여

세월호 참사 1주기 오히려 ‘심리적 침몰’하는 ‘이웃’에게 건네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시인 진은영의 위로 “진상 규명은 유가족이 겪는 고통을 의미화하는 첫 단추”
등록 2015-04-18 11:17 수정 2020-05-02 19:28

30초 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요즘 경기도 안산의 이웃들 얘기를 전하는 치유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울어선 안 된다. 지금 여기서 울음을 참고 전해야 할 말들이 있다. 호흡을 고르고, 그녀는 말해야 했다.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 만났던 이들의 깊은 슬픔, 지독한 트라우마를 세상의 이웃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녀는 세월호 아이들이 부른 고통의 치유자이자 슬픔의 메신저다.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을 껴안은 이웃의 이야기, 동네 밖을 서성이는 악마의 그림자를 그녀는 전해야 한다. 전해줄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이웃의 진은영을 만났다. 니체를 전공한 철학자이자 사회와 문학과 정치의 접점을 찾는 시인이자 대학원에서 인문상담학을 연구하는 교수인 그녀가 적임자였다. ‘이웃’에서 보낸 서너 번의 계절을, 진은영이 묻고 정혜신이 답했다.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라는 부제를 단 (창비 펴냄)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조마조마하다”

정혜신(이하 정) 엄마·아빠가 삭발을 하니까 아이들이 받는 충격이 커요. 정서적 돌봄이 안 되고… 엄마들 마음도 모아지고 있었는데 다 흐트러지고…. 요즘 ‘이웃’에는 아빠들이 많이 와요. 유가족들의 심리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신호예요. 분노가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아빠들도 자살 충동 얘기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다 싫다, 무기력하다, 그만두고 싶다… 그러죠. 어떻게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지? 충격을 받아서 자해를 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긴급상황 시행령이 돼버렸다. 지난 연말을 지나며 “긴급상황은 지났다”고 생각했던 그는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삭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분노를 어찌할 것인가.

아빠들이 이제 시작되는 것 같다고 그러죠. 그동안 유가족들이 항상 갖는 긴장감이 있었어요. 어디를 가도, 이 사람이 혹시 ‘일베’나 어버이연합 같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함’이 항상 있었어요. 근데 이제 삭발을 했으니 유가족이라는 것이 숨겨지지가 않잖아요? 긴장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는 방어기제가 확 무너진 거예요.

진은영(이하 진) 희생자 아버지 한 분을 뵌 적이 있어요. 힘들어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은 차에 추모 리본을 달고 다니는데 자신은 오히려 그러지 못해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하셨어요. 당시는 정확히 이해가 안 됐어요. 근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유가족이 갖는 부담이 이해돼요.

“사고가 없어야 하니까 긴장되고 예민해지고 자꾸 격해지고….” 치유자 정혜신조차 요즘은 그렇다. 모멸감, 시행령이 안겨준 감정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웃’에서 그가 만나는 이들은 앞에서 싸우기보다 “마음은 있지만 뒤에 있는 엄마들”이다. 모여 뜨개질하면서 모멸감을 달래고 함께 치유의 밥상을 나누는 “이웃집 아줌마들”이다. 에는 꼭 만나고 싶었던 평범한 세월호 이웃의 얼굴이 있다. 진은영 시인의 인문학적 인용이 빛나는 질문과 치유자 정혜신의 뜨거운 전언을 읽다보면 ‘만나고 싶었던 세월호 아줌마들’이 보인다. ‘이웃’에 가서 한참 얘기를 듣고 온 기분이 든다. 아주 조금 겨우 힘을 내서 마음을 추스르던 이들이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오히려 ‘심리적 침몰’을 경험하고 있다.

4월8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은영 시인(왼쪽)과 치유자 정혜신이 마주 앉았다.

4월8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은영 시인(왼쪽)과 치유자 정혜신이 마주 앉았다.

사회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전제

정혜신 선생님은 지금 유가족과 (심리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함께 겪고 계신 거죠. 마음이 하강곡선을 그릴 때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함께 손을 잡고 계세요. 무슨 치료를 했더니 엄청난 효과가 있다, 그런 게 아닌 거죠. 함께 절망과 희망을 겪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강조돼야 합니다.

우리는 치유라고 하지 않고 ‘이 시간을 통과한다’는 표현을 써요. 같이 손 꽉 잡고 통과하는 과정인 거죠.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심리적으로) 좋아진다는 게 뭐냐는 거예요. 이건 빵점인 얘기예요. 죽을힘을 다해서 마이너스 오백, 천까지 떨어지는 것을 막고 겨우 빵점에 도달하는 거죠.

에는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명백히 외부의 가해가 있는 상처이고, 사회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는 책임자 정죄가 치유의 전제라고 책은 전한다. 탁월한 전문가, 무슨 치료법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란 환상에도 반대한다. ‘이웃’에 와서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손을 잡는 ‘이웃 치유자’와 함께 상처는 조금씩 나아질 뿐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엔 박근혜 대통령의 냉담함에 대한 분석도 나온다.

외부적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면적 문제도 해결되기 어려워요. 그래서 진상 규명은 치유의 토대예요. 외부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내면의 문제와 뒤섞이니까 피해자들이 혼란스러워하죠. 엄마들이 상담을 하면서 “내가 괴물이 돼가는 것 같다”고 고백해요. 세월호 이후에 사고가 터지면, “몇 명 죽었대? 얼마 안 되네” 이렇게 된다는 거죠. 방송에 대통령 얼굴만 나오면 욕을 하게 되고. 전에는 눈물도 많고 욕도 모르던 사람들인데요.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 얘기를 해요. 왜 가짜 눈물을 흘리고 저토록 냉담한지 아느냐. 트라우마 증상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생긴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받지 못해서다. 피해자들은 죄의식도 성찰도 없는 저들을 용서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놓고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어요.

니체는 ‘인간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성을 견디지 못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진상 규명은 유가족이 겪는 고통을 의미화하는 첫 단추예요. 자기 아이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되지 않으면 의미화 작업이 진행될 수 없어요. 애도는 사회 전체와 함께 그 지독한 고통을 제대로 의미화하면서 가능해지는 거예요.

대담집 를 펴낸 이들은 “1주기에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얘기할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위). 경기도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는 누구나 마음껏 울도록 방음이 잘된 방이 있다.

대담집 를 펴낸 이들은 “1주기에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얘기할 줄 알았는데…”라고 말했다(위). 경기도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는 누구나 마음껏 울도록 방음이 잘된 방이 있다.

악마들도 우리 앞집에 산다

사실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적잖은 이들이 “그만 울어!” 짜증을 내면서 유가족을 힐난한다. 충분히 울 만한 시간을 주지도 않고서, 왜 울어야 하는지 진상도 밝히지 않고서, 벌써 “지겹다” 한다. 를 뒤집으면 ‘악마들도 우리 앞집에 산다’가 아닐까?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제주 4·3 항쟁, 알코올중독, 가정폭력…. 치유받지 못한 경험이 너무 많아요. 한 번도 치유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강퍅한 마음이죠. 내 고통에 매몰돼 있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다가가지 못하는 거예요. 내 고통은 한 번도 주목받고 치유받지 못했지만 나는 살아남았어. ‘너희는 국가가 보상도 해주고 배가 불렀네’ 이렇게 되는 거죠. 이런 마음이 켜켜이 적폐같이 쌓여 있어요.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도 개입한다고 봐요. 세월호가 아니라도 죽음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혐오하죠. 죽음은 병원에서 관리하는 것이고, 하루빨리 일상에서 치워져야 하는 거라고만 보는 거예요. 오래 애도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도록 만드는 문화예요.

위로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을 요약하면, 트라우마 가이드북. 어설프게 알았던 트라우마의 실체가 책을 읽으며 차곡차곡 그려진다. 세월호 유가족, 쌍용자동차 해고자, 조작간첩 피해자의 고통을 들으며 공감하고 반성하는 것을 넘어 내가 겪어온 슬픔을 돌아보고 나의 주변에 닥친 트라우마에 다가갈 ‘힌트’를 얻는다. 말하지 말아야 하나 생각했던 것들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조금은 배우게 된다. 내가 왜 그 순간에, 어쩌지 못하는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했는지 이해하고 반성하게 된다. ‘이웃’에서는 고통을 말하는 형식으로 ‘생일모임’을 연다.

아이들이 짧은 생을 살다 갔잖아요. 예컨대 오늘이 건우 생일모임이라고 하면, 아이들한테 이렇게 말해요. 오늘은 건우 얘기만 하고, 건우를 느끼고 집중하는 날이다. 그래서 건우 생일인 거다. 친구들은 엄마·아빠가 상처받을까봐 건우 얘기를 못하거든요. 미리 편지를 쓰면서 얘기해두죠. 이야기를 하는 게 엄마·아빠한테도 훨씬 좋은 거라고. 아이들이 실컷 건우 얘기를 하고 엄마·아빠도 듣다가 맞장구를 치고 그래요. 요즘은 선생님도 오세요. 단원고 교사들에 대한 유가족들의 적의가 대단하다고 했잖아요. 근데 선생님이 오셔서 건우가 수업 시간에 이랬다, 교무실에서 이랬다,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이 풀어져요. 선생님이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아이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거죠. 친척도 오고 교회 오빠도 와서 조각조각 얘기를 꺼내놓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가 화사하게 살아나는 경험을 해요. 마지막에는 시인들이 써준 생일시를 다 함께 낭송해요. 천주교 신자인 한 엄마는 생일모임을 하고 “아이가 부활한 것 같아요” 그래요. 아이가 짧은 생을 살았지만 엄마·아빠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풍부한 삶을 살았구나, 확인하는 거죠. 건우 아빠는 생일모임을 하고, 사고 이후 처음으로 건우 방에 들어가서 건우 침대에서 잤대요. 남자애들 생일에는 담배 피운 얘기가 나오거든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지트가 어디였다, 친구들이 말하죠. 엄마는 ‘아이가 모범생이어서 한 번도 그런 경험을 못했을 줄 알았는데 해봐서 너무 다행이다’ 안심이 되는 거죠. 몰랐던 여자친구 얘기도 나오고. 이렇게 하니까 좋다는 걸 확인하고 친구들끼리, 식구들끼리 더 하는 거예요.

진은영 시인(왼쪽)은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304낭송회’ 등에 적극 참여해왔고, 치유자 정혜신은 고문피해자·해고노동자와 심리상담을 해왔다.

진은영 시인(왼쪽)은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304낭송회’ 등에 적극 참여해왔고, 치유자 정혜신은 고문피해자·해고노동자와 심리상담을 해왔다.

오지에 가는 유족들에게 주는 지도 한 장

온 나라가 지난 1년 365일 하루하루를 희생자 304명 한명 한명의 날로 정해 그렇게 기억해야 하지 않았을까. 끝으로 “진상 규명이 안 되면 어쩌냐”고 정혜신에게 우문을 던졌다. “될 때까지 가는 거죠. 진상 규명이 안 된다고 포기하고, 부모는 그럴 수 없는 존재예요. 이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리석죠. (비가 올 때까지 하는) 인디언 기우제예요. 고문 피해자들도 30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잖아요.” 끝으로 그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오지에 가는 유족들에게 지도 한 장은 가지고 가게 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치유자 정혜신과 진은영 시인이 을 통해 희망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일상적인 상실과 이별을 겪는 이가 많잖아요. 그런 분들께 가이드북이 됐으면 좋겠어요.

길어질지 모르는 세월호 싸움에서 용기가 필요할 때 펼치는 책이 됐으면 해요. 그래서 우리가 겪는 상황에 대해 개념적 접근도 해보고, 슬픔을 견디는 순간에 읽으면 좋을 시들도 넣었어요. 많은 분들이 마음을 돌아보는 구실이 되길 바랍니다. 슬픔의 교육학 책으로 쓰였으면 좋겠어요.

진행·정리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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