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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생이 생겼어요!

지구 최초 동물 의료협동조합 병원 ‘우리동생’ 개원 박두… 사람 조합원과 동물 조합원이 함께 만드는 마을생명 공동체
등록 2015-04-04 05:41 수정 2020-05-02 19:27

“아프냐? 아프면 아프다고 왜 말을 못하는 거야!”
사랑하는 존재가 아픈데 얼마나 아픈지 몰라 답답한 이들이 있다. 자신을 그들의 “엄마” “아빠” “집사”로 부르는 사람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드라마 주인공인 사람들 얘기만이 아니다. 반려동물이 아프면 반려인도 아프다. 반려인 진정은(37)씨는 “아프면 아프다고 제발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게 반려인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처럼 반려동물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서 병원에 늦게 데려간 아픈 경험을 가진 반려인이 많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2013년 꿈이 2015년 현실로

2013년 봄날의 꿈은 일장춘몽이 아니었다. “사람의료생협만 만들란 법 있어?” 서울 마포 ‘민중의집’에서 마포의료생협을 준비하던 9명은 그렇게 질문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족으로 둔 이들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동물의료생협도 있으면 좋겠어….” 이들은 술자리 대화로 끝날 얘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인간과 동물의 역사’ 강연을 열자 성원이 답지했다. 용기백배, 협동조합을 ‘질렀다’.

2013년 5월 창립총회를 열고, 2014년 4월 출자금을 모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사회적 협동조합 승인도 어렵게 받았다. 아이쿱과 한국사회투자가 지원하는 1억원 임대료 융자도 성공적! 그리하여 지금 서울 성산동 이층집에 동물병원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머잖아 개원할, 아마도 지구상 최초의 동물병원협동조합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은 그렇게 탄생했다. 3월20일 현재 사람 조합원 857명, 동물 조합원 1544마리가 가입돼 있다. 우리동생(www.mapowithpet.com)은 19.7% 가구가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1천만 반려인 시대의 상징이 될까.

일찍이 꿈꿨던 9명 중 한 명, 진정은 조합원은 친구와 함께 강아지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운다. 길에서 만난 유기견 쿠바가 맏이다. 그는 쿠바의 목줄을 사러 동물병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쿠바가 갑자기 헉헉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의사가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잇몸이 하얀 건 중금속 중독일지 모르고….” 쿠바가 아픈 줄 몰랐던 그는 의사의 말에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순식간에 대여섯 가지 검사가 진행됐다. 심장사상충으로 밝혀졌다. 나중에 결제를 하면서 그는 비로소 ‘응급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도 진료비 28만원이 정확히 기억난다”며 “꼭 과잉진료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반려인의 불안감을 부추겨 검사를 유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쿠바는 10~11살, 코난은 7살, 고양이 샨띠는 7~8살이에요.” 진 조합원은 이들을 길에서 만나거나 동물보호소에서 데려와서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정경섭 우리동생 대표는 “(동물 나이에) 곱하기 7을 하면 대략 (사람의 연령에 해당하는) 나이가 나온다”고 말했다. 어느새 노년에 접어든 쿠바는 턱 밑이 희끗한 닥스훈트 강아지가 됐다. 진씨는 “쿠바가 고령견이 되니까 더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우리동생에는 고령견·고령묘를 키우는 이가 적잖다. 정 대표는 “동물도 5살이 넘으면 정기검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동생이 “오래 알고 지내고 계속 만나는 평생 주치의”를 강조하는 이유다. 반려동물의 노후 대비에 믿을 만한 동물병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좋은 시절만 아니라 아픈 시간도 함께하려는 이들이 우리동생을 만들었다.

정경섭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 대표(앞 가운데)는 협동조합 동물병원이 마을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기를 바란다. 남녀노소 다양한 이들이 우리동생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동네 제공

정경섭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 대표(앞 가운데)는 협동조합 동물병원이 마을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기를 바란다. 남녀노소 다양한 이들이 우리동생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동네 제공

만나야 할 이들이 만났다

동물병원 진료비는 제각각이다. 정부가 1999년 동물병원 의료수가제를 폐지한 뒤 벌어진 일이다. 100% 본인 부담에 10% 부가세까지 붙으니 병원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진정은 조합원은 “사교육비처럼 병원비가 들지만 아이가 아니라서 심부름을 시켜도 못한다”며 웃었다. 반려동물이 아파서 수술이라도 하려면 몇백만원씩 들기 십상이다. 정 대표는 “정부가 ‘폭리를 취하는 의사 대 손해 보는 반려인’ 구도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료비에 부담을 느끼던 이들이지만, 동물병원을 만들면서 오히려 ‘저렴한 진료비’만을 강조하지는 않게 됐다. 진 조합원은 “이유 없는 가격은 없더라”며 “오히려 전보다 반감이 줄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손님으로 취급되는 수동적 입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해되는 진료비를 원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저렴한 진료비가 아니라 합리적 가격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적정 진료를 원하는 것이다. 진료비 결정에 조합원 의사가 반영되고, 투명한 공개가 원칙인 협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꿈꾸는 병원은 공짜로 생기지 않았다. 공존의 길을 만들기 위해 공부가 먼저였다. 우리동생은 한 달에 한 번씩 강연을 열면서 내실을 다졌다. 2014년 11월15일 ‘아프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9월25일 ‘독일의 반려동물과 더불어 사는 이야기’, 7월17일 ‘반려견 행동교육’ 등이 공부한 목차다.

재미있는 ‘열공’ 시간도 있었다. 2014년 6월11일 ‘고양이 장난감 만들기’ 모임이 열렸다. 고양이 네모, 지니아와 함께 사는 김현주 우리동생 사무국장은 “장난감이 비싸기도 하고 잘 망가진다”며 “함께 만드니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소모임 번개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거묘 모임’이 열렸다. 김현주 사무국장은 “고양이 자랑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10kg이 넘는 우리 첫째가 챔피언”이라며 웃었다. “사실 고양이 배가 좀 나와서 걱정했죠. 어떻게 거묘인들이 사료량을 조절하는지 궁금했어요.” 그의 궁금증이 이날 조금은 풀렸다. 누구는 양치를 어떻게 시키는지 몸을 써가며 설명했다. 그렇게 교과서를 넘어선 답을 함께 찾았다. “얘는 개야? 왜 이렇게 커?”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서러움과 마음에 담아둔 자랑스러움이 동시에 폭발하는 시간이었다. 소중한 존재를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풀렸다. 걸핏하면 “극성스럽다” “유난 떤다” “결혼 안 해서, 애가 없어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던 이들이었다.

비혼 공동체 가능성 보인다

동물을 아끼니 사람을 만났다. 남편과 함께 고양이 꿈꿈이를 돌보는 김정현(33) 조합원은 “중성화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며 우리동생 개원을 재촉했다. 서울 강서구에 살지만 열심히 조합에 참여하는 그는 “꿈꿈이가 7살이 되니까 치석도 낀다”며 “고령묘를 키우는 반려인들에게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그는 모임에 오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엇갈리는 정보로 혼란스런 경우도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조합원들의 한마디가 100가지 정보보다 때로는 유용했다. 그렇게 우리동생은 돌봄과 치유의 경험을 나누는 커뮤니티로 성장하고 있다. 김현주 사무국장은 “친구를 사귀듯, 애인을 만나듯 서로의 20년을 책임질 방법을 배우는 나날들”이라고 말했다. 우리동생 인터넷 카페에는 “강아지 당뇨병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이 올라온다. 그렇게 고민을 나누는 이들을 직접 만나기 쉽지 않다.

점점 신뢰가 쌓이며 돌봄망이 형성되고 있다. 인터뷰 사이에 정경섭 대표의 휴대전화에 “신○○씨가 우리 고양이를 돌봐주기로 했어요”라는 조합원의 문자가 왔다. 여행을 가는 며칠 동안 얘들을 어디에 맡길까, 반려인의 큰 고민이다. 가까운 동네에 살지 않고, 신뢰가 없으면 맡기기 어렵다. 진정은 조합원은 “동물병원에 맡겼다 돌아오면 학대를 당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우울하다”며 “친구들이 맡아주면 살뜰하게 돌봐서 오히려 쾌활해져서 만난다”고 전했다.

2014년 6월7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2014 퀴어퍼레이드’에서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이 조합 활동을 알리는 홍보 부스를 열었다. 지난 2년간의 준비 끝에 요즘 동물병원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우리동네 제공

2014년 6월7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2014 퀴어퍼레이드’에서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이 조합 활동을 알리는 홍보 부스를 열었다. 지난 2년간의 준비 끝에 요즘 동물병원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우리동네 제공

한 사람이 오자 한 동네가 왔다

그렇게 마포 지역에 기반한 협동조합 우리동생은 돌봄망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동물협동조합은 동네에서 보이지 않던 이들을 보이게 하는 효과도 낳았다. 정 대표는 “기존의 마을 공동체는 육아를 매개로 한다”며 “동물협동조합을 통해 소외된 비혼들의 공동체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동생의 조합원은 다양하지만, 30~40대 비혼여성이 주축이다.

우리동생은 마포에만 한정된 조합이 아니다. 경기도 수원에 살면서 인천 남구의 직장에 다니는 홍진영(37) 조합원은 남구청이 위촉한 동물보호 명예감시원으로 활동한다. 그는 “반려인들이 모이니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온다”며 “동물에 대해 묻는 동네분들이 많은데 조합에서 나눈 얘기가 답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동물보호 활동을 하는 한 사람이 오자 같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왔다. 그는 “우리동생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분들과 함께 조합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가입 출자금 5만원을 내면 1인1표를 갖는 우리동생 조합원이 된다. 조합원이 아니라도 우리동생 병원에서 반려동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우리동생은 ‘와디즈’(WADIZ)에서 의료장비 구입을 위한 크라우드펀딩(www.wadiz.kr/Campaign/Details/644)을 하고 있다. 정해진 기한에 1천만원 목표를 넘기고 모금이 연장됐다. “사는 곳이 멀어 이용할 일은 없겠지만 이런 조합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펀딩에 참여했다” “제2, 제3의 우리동생이 생기기를” 같은 댓글이 여기에 달렸다. 홍진영 조합원은 “믿을 만한 사료, 동물약국, 애견놀이터 등을 만들려는 동물협동조합 결성 움직임이 있다”며 “많은 이들이 전국에서 우리동생을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려동물 무료 진료의 꿈

우리동생의 꿈은 야무지다. 저소득층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위한 무료 진료를 하고 싶고, 무항생제 사료로 만드는 간식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동생은 동물병원의 이익이 지역사회로 환원되고 동물복지로 순환되기를 희망한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마을이 목표다. 정경섭 대표는 “사람 조합원 2천 명, 동물 조합원 4천 마리가 되면 병원이 안정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아직은 꿈이다. 우선 병원부터 열어야 한다. 조합비도 더 모아야 한다. 우리동생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김현주 사무국장은 이렇게 전했다. “언젠가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어요. 강아지를 보낼 때가 됐는데 잘 보내고 싶으시단 거예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고, 함께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우리동생은 사람과 동물이 생애주기를 함께 겪고 희로애락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고 싶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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