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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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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들을 기억하라

생존의 힘. 공동체적 삶의 토대로 되곤 하는 ‘선’의 ‘평범성’…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활약한 의인들을 벌써 너무 쉽게 잊어가
등록 2015-04-01 06:00 수정 2020-05-02 19:27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에겐 로렌초가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증언 문학으로 손꼽히는 저작 에서 레비는 참혹한 나치 수용소에서 자신을 버티게 한 생존의 힘을 로렌초에게서 찾았다. 강제노동에 내몰려 공포를 먹고 절망을 입고 사는 레비에게 이탈리아 민간인 노동자 로렌초는 여섯 달 동안 매일 빵 한 조각을 가져다주었고 옷과 엽서를 전달해주었다. 레비에게 그것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도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알리는 빛이었다. 레비는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수용소 밖에는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로렌초 덕에 레비는 나치의 광포한 위계질서와 그것이 만들어낸 수인들 사이의 인간성 파괴와 내적 황폐 속에서도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프리모 레비에 비친 생존의 빛

지난 세기 파시즘을 비롯한 각종 정치체제의 폭력들,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단절하게 만든 처참한 재난 사건들은 파도처럼 사람을 덮쳤고 바다처럼 문명을 삼켰다. 흔한 이데올로기적 체제 비판과 철학적 문명 비판을 넘어 그것을 보면 구체적이고 다양한 행위자들이 눈을 또렷이 뜨고 물음을 던진다. 구조의 모순이나 체제의 결함이 아니라 행위와 현상에 더 초점을 맞추면, 폭력 가해자와 사건 책임자의 동기와 목적 또는 행위 과정을 제대로 따질 필요가 생기고, 희생자와 피해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들(과 가족들)의 고통과 불안, 절망과 고독에도 탈출구가 더 다양하게 마련돼야 함을 알게 된다. 아울러 정치적 집단 행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의 저항 투사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줄 안다.

나치 치하 독일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을 1천 명 넘게 탈출시켰다. 그는 원래 돈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널리 알려졌다.  한겨레

나치 치하 독일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을 1천 명 넘게 탈출시켰다. 그는 원래 돈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널리 알려졌다. 한겨레

그에 반해 문명이 ‘가라앉는’ 순간 희생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구조에 뛰어든 의인들은 쉽게 잊힌다. 기껏 미담의 주인공으로 잠시 세간의 관심을 받다 ‘숨은 영웅’(Unsung Hero)으로 사라진다. 문명이 단절되고 국가가 의미를 잃은 사건들의 충격 속에서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 의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에피소드로 전락하며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역사학에서도 의인들에 대한 연구는 얕다. 현대사 연구 분야에서 가장 다양한 성과를 보인 홀로코스트 연구에서도 오랫동안 구조자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이미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와 희생자, 저항 투사들에 대한 연구는 산더미로 쌓였다. 나치 억압과 인종 살해를 수용하고 추종했던 일반 시민들에 대한 연구도 다양했다. 하지만 나치의 살해 체제에 쫓기고 몰린 사람들을 숨겨주고 피신시킨 행위자들의 역사는 망각에 빠졌다. 구조자는 홀로코스트 역사의 행위자 범주에서 무시됐던 것이다.

최근에야 홀로코스트 역사의 한 행위자 범주로 구조자와 의인들에 대한 연구 관심이 증대했다. 볼프람 베테를 위시한 소수의 역사학자들과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을 구조하는 데 나선 의인들을 연구해 대략적 개요를 밝혔다. 2014년 1월 야드 바셈 박물관의 통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을 구조하는 행위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 의인 수는 2만5271명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의인들은 빠진 것이기에 그 수를 놓고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상적인 것은 독일인 의인을 553명으로 헤아렸는데, 그중 100명 정도는 나치 군인과 경찰의 신분으로서 유대인의 은신과 구조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베를린에선 1942년 중반에도 약 7천 명의 유대인이 곳곳에 숨어 있었는데, 그중 1500명 정도가 종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 모두 독일인 구조자들의 도움으로 은신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테는 6천만 명이 넘는 독일인 가운데 이러한 구조자가 많이 잡아도 3만 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며 냉정했다.

최근에야 관심 커진 ‘의인’ 연구

이에 비해 덴마크의 구조자 역사는 환했다. 1940년 4월9일 덴마크는 나치 독일에 의해 최종적으로 점령됐다. 당시 덴마크에 거주하는 유대인 수는 8천 명 정도였다. 그런데 처음부터 코펜하겐의 병원과 대학, 교회 종사자들은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도왔다. 특히 1943년 10월 초 나치가 덴마크 거주 유대인들을 전부 수용소로 이송하려고 했을 때, 덴마크의 구조자들은 결속해 그 계획을 무력화했다. 구조자들의 도움으로 7천 명에 달하는 덴마크 유대인들은 수용소가 아니라 스웨덴으로 안전하게 배를 타고 피신할 수 있었다. 다만 500명 정도의 유대인만이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로 끌려갔다. 하지만 덴마크인들은 그들을 계속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절반 정도는 목숨을 건져 다시 덴마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국 나치의 유대인 절멸 정책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유대인의 98%는 생존했다.

베를린에서든 코펜하겐에서든 이 구조 활동에 참여한 의인들은 특정 사회계층 출신이 아니었다. 구조자들의 직업과 계급은 천차만별이었다. 기업가와 관료, 노동자와 소상인도 있었고 주부나 매춘부도 있었으며, 심지어 일부는 비도덕적 행위의 전력자이기도 했다. ‘구조자 연구’에 몰두한 역사가들은 아직 구조자들의 행위 동기에서 공통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행위 동기는 다양했고 복합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의인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행위를 인간으로서 당연한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했다. 홀로코스트 구조자 연구를 통해 확인한 중요한 교육 효과는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확산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재난과 관련된 것이기에 정치폭력과는 그 성격과 양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행위자들과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접점이 없지 않다. 정치폭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사건에서도 진상을 밝혀 책임자들을 벌해야 한다.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기억을 제도화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에 대한 치유와 극복에 큰 관심이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의인들의 구조 행위는 걸맞게 기억돼야 한다. 그 이유는, 먼저 그들의 행위를 통해 비로소 재난 사고 당시 도주하거나 방관한 책임 당사자들의 범죄적 행위들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재난 구조에 나서야 했을 선원들과 국가기관의 무책임, 무능력 및 소극성이 구조자들의 능동적 행위와 대비돼 부각되고 책임 추궁이 명료히 가능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의인들은 당시 구조의 가능성과 대안적 행동 여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 의인들의 구조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인간적 가능성의 도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무장 양대홍, 학생 정차웅, 교사 남윤철과 최혜정, 기사 최재영, 승무원 박지영 등과 ‘파란 바지의 구조자’ 김동수 등은 모두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 구조에 나섰다. 기억은 과거에 대한 것이지만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향한 것이다. 의인들을 예우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구조 행위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공동체의 신뢰 회복 자산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적 재난과 파국적 위험에 직면해 타인을 구조하기 위해 나선 인간적 행위는 이미 사회적 의미를 지닌 행위이고 역사적으로 기억되어 마땅한 삶이다. 그럼에도 일부 의인들에 대해서는 신분상의 이유 또는 직무 수행 관련성이나 신청 여부라는 절차상의 관료적 줄긋기로 인해 공적인 의사자 지정과 의상자 인정이 부족하고 더디다. 일부 생존 의인들은 관료적 장벽과 세상의 무관심으로 오히려 사회의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 어쩌자고 이러는 것일까?

의인들이 구석에 몰리는 세상

전남 진도군 대마도에 사는 어민 김현호(47)씨는 세월호 침몰 직후 쪽배를 몰아 25명의 생명을 구했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

전남 진도군 대마도에 사는 어민 김현호(47)씨는 세월호 침몰 직후 쪽배를 몰아 25명의 생명을 구했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

2014년 4월 전남 진도 앞바다의 ‘로렌초’들, 즉 세월호의 의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젖어들고 싶은 영웅적 미담이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을 통해 순전히 인간적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의인들이 온몸을 던져 만들어낸 ‘선의 희미한 가능성’을 더 짙게 만들어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토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라앉는’ 문명 속에서 로렌초를 통해 ‘생존해야 할 가치’를 찾은 레비처럼 우리도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건져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여 의인들의 용기와 헌신을 가능하게 한 생애사의 의미에 대해서도 더 많은 탐색과 토론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의 주관적 기대를 내세워 그들을 ‘천사’나 ‘영웅’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단견으로 보인다. 홀로코스트에서든 세월호에서든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구조 행위는 분명 ‘영웅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평범한’ 인간의 일이기도 했다. 의인들은 한결같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고 말한다. 실제 그들은 저항 투사와 달리 조직화된 정치 훈련을 경험하지도 않았고 특정한 신념을 결의하지도 않았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누군가와 불화를 겪거나 삶의 굴절과 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구조자들을 ‘흠 없는 영웅’으로 전제하고 보면 더 이상의 질문도 불가능하고 답은 동어반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영웅이기 때문에 영웅적으로 행동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영웅이 아니기에 ‘나라면 저렇게 하기 어려웠을 거야’ 하고 물러서기 바쁘다.

그렇기에 의인들을 ‘영웅적 모범’으로 만들어 오히려 낯설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실천적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처럼 모순과 주저 속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그들이 어떤 동기와 의지로 그 ‘섬광의 순간’에 결정적인 용기와 헌신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를 더 살피는 것이 현실적인 태도다. 해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각심 못지않게 ‘선의 평범성’(“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태도”)의 비밀에 다가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정치공동체의 선한 신뢰의 축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렇게 망가진 국가와 찢어진 사회에서도 어떻게 저런 헌신적 용기와 인간적 유대를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소통 가능한 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관찰 몰래카메라 (What Would You Do?)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는 타인에게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그중 한 장면. 빵가게 직원이 시각장애인 고객에게 거스름돈을 속여 돌려줄 때 다른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는데 용기 있게 나서 시각장애인을 도운 한 여성이 등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나요?”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제 생각에는 제가 그렇게 하도록 교육받은 것 같아요. 누군가 위험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힘을 받아 교육이 바로 답이라고 무릎을 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순진해 보인다. 같은 교육을 받아도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했으며, 높은 학식과 많은 교육이 정반대로 이기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예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한 ‘시민 용기’(Civil Courage) 교육 프로그램은 유용하다. ‘시민 용기’의 반복 학습과 훈련은 분명 ‘선이 평범’해지는 문명적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미국 여성의 발언에서 인상적인 것은 오히려 교육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대한 깊은 신뢰다. 그는 의로운 행위를 자신의 개인적 인성의 덕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한 사회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간주했다. 공동체와 타인에 대한 신뢰와 관심이 모든 선과 의의 진정한 출발점일지 모르겠다.

선이 평범해지려면

물론 평범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영웅적’ 선행과 의로운 선택의 순간들로 실험하는 사회와 국가는 불안하고 위험하다. 1954년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대로, ‘영웅이 없는 나라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영웅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불행하다’. 그러나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일단 로렌초 같은 ‘숨은 영웅’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던진 공동체적 삶의 질문을 집단적으로 숙고하고 계속 토론하는 일이다. 그들의 경우처럼 위기와 위험의 순간에도 선과 의가 ‘평범’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4년 4월16일, 우리에게도 로렌초가 있었다!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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