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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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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자’에 대한 연민

등록 2015-03-31 05:51 수정 2020-05-02 19:27

얼마 전 에 ‘보수만화’를 그린다는 윤서인씨가 댓글을 잘못 달았다 홍역을 치렀다. 그의 만화는 월 100만원을 받아도 징징대지 말고 150만원어치 일을 해서 고용주를 미안하게 만들어 월급을 높여야 한단 주장을 담았다. 그런데 만화가가 병역특례 업체를 다닐 때의 회사 동료가 당시 그는 열심히 일을 않고 부업을 했다 ‘폭로’했고, 만화가가 그 사실을 인정하자 그를 싫어하는 독자들이 병역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노푸’가 공적으로 발화될 때

사실관계부터 보자면, 회사 동료가 부업을 인지했을 정도면 만화가는 그에 대한 허락을 구했을 것이니 이 문제는 병역법 위반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가 ‘병특 막판에 누가 그리 열심히 하냐’고 반문한 상황은 그의 주장과 생활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한다. 군생활 말기에 다음 직장을 그가 고민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적은 월급에 투덜대는 사람들 역시 많은 경우 정당할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이 올라가지 않는 직장 환경도 흔하고, 대부분은 병역특례 업체에서처럼 ‘칼퇴’하고 부업을 뛸 수 없는 근로조건일 테니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사적인 조언을 구할 때, 우리는 여러 사람이 지지하는 의견을 주로 신뢰한다. 만약 길 건너편 중국집이 맛있는지 어떤지 알고 싶다면 그곳을 다녀온 이들의 견해를 수집하면 될 일이다. 나와 음식 취향이 비슷한 다수의 친구가 중국집을 ‘맛있다’고 평한다면 나는 거기에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공적 발화의 영역에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가령 나는 최근 샴푸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샴푸를 쓰는 건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줄 때 귀찮아서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뿐이다. 최근 나는 ‘노푸’에 도전한 이들의 경험담을 종합해볼 때, 인류의 3분의 1 정도는 샴푸가 전혀 필요하지 않고, 3분의 1 정도는 샴푸가 가끔 필요하며, 나머지 3분의 1은 체질상 샴푸가 필요하지만 지금 쓰는 것의 반 정도만 쓰면 되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추정’은 샴푸산업의 파이를 반토막 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공적 발화의 영역으로 끌려나간다면 수많은 반대파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당장 어느 패션잡지에선 ‘노푸’ 실행의 첫 번째 장벽에 해당하는 일주일만 실험을 해놓고 ‘노푸’는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지 않던가(처음 일주일간은 나도 괴로웠다).

자기계발 도서로 유명한 어떤 필자가 “이제는 재벌 등 대기업의 문제도 비판하겠다”는 인터뷰를 한 걸 본 적이 있다. 이는 출판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그가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발언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그와는 달리 과거의 그와 대부분의 자기계발 도서 필자들이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들이 책을 파는 것만으론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주로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강연을 맡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적 발화’는 이해관계에서 순수해야 한다는 당위와 환상이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이해관계에 오염된 영역이다. 또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지급 능력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지지자 수와도 상관없이 편향적이다. 살면서 정치에 대해 쓰지만 않으면, 또 쓰더라도 진보파의 입장에 서지만 않으면 글쟁이도 살 만하겠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취향’에 대해 쓰더라도 대부분 그것들은 ‘소비’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반전시킬 숨구멍은

그렇기에 나는 ‘말하는 자’의 어떤 행태가 짜증나더라도 약간의 연민의 정을 가져줄 것을 독자에게 당부드린다. 이런 사회에서 공적 발언을 하는 이들은 이해관계에 적극적으로 영합하는 이와 자신의 나르시시즘으로 모종의 공정함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이로 양분된다. 전자가 훨씬 많은데, 후자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니 생활인들이 보기엔 짜증이 난다. ‘진보의 싸가지’를 운운하는 것도 이런 생태계와 관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세태를 약간이라도 반전시킬 숨구멍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가 나 같은 이의 고민이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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