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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것이 옳은 것보다 강력하다”

‘레거시 미디어’ 기자가 본 ‘디지털 네이티브’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12시간
등록 2015-03-31 05:48 수정 2020-05-02 19:27

섭외는 빠르게 성사됐다. 3월24일 오후, 김도훈 편집장과의 통화 기록은 2분17초. 그는 “ 사무실로 찾아가서 일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싶다”는 취재 요청에 비교적 흔쾌히 응했다.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라고 덧붙이자, “오 마이 갓”을 내뱉긴 했지만.

2014년 NYT “디지털 소매치기”라 언급

그는 웃음 섞은 짧은 통화 중에 “관찰해도 별로 볼 게 없는데?” “재미가 없을 텐데”라며 ‘별것 없음’을 강조했다. “기존과 다른 의견, 새로운 시도, 처음 핀 봄꽃, 누군가의 말 한마디. 모든 것이 뉴스”이며 “인생은 뉴스로 가득하다”는 의 홍보 카피와 어울리지 않는다. 기자의 눈에 의 일이 특별해 보이겠느냐는 의미에 가까웠다.

지난 3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빌딩에 위치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사무실에서 원성윤 에디터(왼쪽)와 박세회 에디터(오른쪽)가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3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빌딩에 위치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사무실에서 원성윤 에디터(왼쪽)와 박세회 에디터(오른쪽)가 작업을 하고 있다.

편집장의 ‘예언’- 맞힌 건 아니지만- 덕분에, ‘레거시(legacy) 미디어’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방문 전에 자각하게 됐다. 같은 종이잡지와 신문 등은 디지털 시대 이전에 태어나 현재까지도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레거시 미디어(전통 언론)로 불린다. 처럼 디지털을 공기나 헌법 같은 필수 환경이자 규범으로 삼은 채 디지털로 태어난 매체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이런 매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도 불린다.

기성 언론들이 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다. 가 2014년 내부 혁신 보고서에서 의 행태를 두고 “디지털 소매치기”라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14년 2월28일 뉴스 서비스를 시작한 는 2005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의 한국판이다. 는 자체 취재로 쓰는 기사도 있지만, 기성 언론 기사 가운데 ‘쓸 만한 것’을 골라 자체 스타일로 재가공한 뒤- 인용 또는 원본 기사의 주소를 하이퍼링크한 채로- 자신들의 플랫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하는 일이 많다. 엔터테인먼트·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기사량이 정치·경제·사회 부문의 기사량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포털에 입점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에도 불구하고(기성 언론 대부분은 포털에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서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3월25일 오전 9시부터 퇴근 시간인 6시30분을 넘긴 밤 9시까지, 12시간 동안 서울 종로구 도렴빌딩에 위치한 사무실에 머물렀다. 20평 남짓한 사무실은 편집국과 회의실로 구분돼 있다. 회의실은 대표이사의 공간과 겸하고, 편집인과 편집장은 9명의 에디터 및 번역가와 같은 사무공간을 쓴다.

편집장 옆 자리와 왼쪽 대각선 방향 자리에 에디터 팀장 2명(△엔터테인먼트·라이프스타일 △정치·경제·사회), 편집장 앞 자리에 블로그 에디터, 오른쪽 대각선 방향 자리에 트렌드·트래픽 에디터가 있어 상호 소통을 원활하게 했다. 한쪽 벽면에는 뉴스 채널로 고정된 TV가 하나 켜져 있고, 책상마다 컴퓨터 모니터가 2대씩 놓였다. 겉으로는 편집국 내 디지털뉴스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바이럴…애그리게이션…리스티클…

‘언어’가 달랐다. “바이럴(viral)하겠습니다” “이건 애그리게이션(aggregation)해서 쓰자” “리스티클(listicle) 좀 챙겨줘” 같은 표현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디지털 매체를 취재한 경험이 있지만, 관련 개념을 ‘일상어’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 애그리게이션은 비슷한 주제의 기사나 글을 모아서 정리하는 일이고, 리스티클은 리스트(list)와 아티클(article)을 합한 신조어로서 ‘○○하는 ○가지 방법’류의 기사를 말한다.

애도를 표하기 위해 사이트 대표 이미지를 흑백으로 처리했고, 그 아래에 있는 기사들의 이미지도 세월호와 관련이 있든 없든 모두 흑백으로 처리했다. 〈허핑턴포스트〉 미국판 에디터를 비롯해 다른 나라 에디터들이 큰 관심을 가졌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애도를 표하기 위해 사이트 대표 이미지를 흑백으로 처리했고, 그 아래에 있는 기사들의 이미지도 세월호와 관련이 있든 없든 모두 흑백으로 처리했다. 〈허핑턴포스트〉 미국판 에디터를 비롯해 다른 나라 에디터들이 큰 관심을 가졌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바이럴은 어떤 콘텐츠가 SNS를 통해 바이러스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말한다. 에서는 에디터가 SNS에 콘텐츠를 게시하는 행위를 칭하는 말로 쓰고 있었다. “바이럴하겠습니다”는 “SNS에도 기사를 게시하겠습니다”는 뜻이다. 직접 이미지를 붙이고 카피도 쓴다. 의 ‘뉴욕 한식당 부당노동행위로 30억원 배상 판결’ 기사 본문을 그대로 올리면서, SNS에 ‘사장님, 거기는 한국이 아니에요’라는 짧고 강렬한 문구를 붙여 유통하는 식이다.

지난 3월25일 밤 10시30분께 공개된 〈허핑턴포스트〉의 스플래시 모습. 종합편성채널 JTBC가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내보낸 여고생들의 키스신 이미지가 들어갔다. 기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날 해당 드라마를 심의하면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냈고, 중징계를 예고했다는 내용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지난 3월25일 밤 10시30분께 공개된 〈허핑턴포스트〉의 스플래시 모습. 종합편성채널 JTBC가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내보낸 여고생들의 키스신 이미지가 들어갔다. 기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날 해당 드라마를 심의하면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냈고, 중징계를 예고했다는 내용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오전 9시를 조금 넘겨 출근한 김도훈 편집장이 컴퓨터를 켜고 전자우편함을 확인했다. 미국 의 글로벌 콘텐츠 전략을 담당하는 선임 에디터 조(Zoe)에게서 온 새 전자우편만 4통. 3통은 국제적인 바이럴 콘텐츠, 기타 이슈 등을 골라서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한국판에 실을 만한 게 있으면 번역해서 쓰면 된다. 나머지 1통은 미국판에서 ‘세계의 방문 예절’을 주제로 리스티클을 쓰려고 하니, 각국 에디터에게 나라별 상황을 알려달라는 요청이다. 편집장을 보조해 콘텐츠를 관리하는 트렌드·트래픽 담당 남현지 에디터가 이미 답장을 보냈다. 곧이어 미국판에서 기사가 올라왔고, 한국판은 이를 번역해 내보냈다.

편집장은 물론이고 에디터 모두 미국 사무실은 물론, 각국의 에디터들과 수시로 소통하고 있었다. 는 2011년 AOL에 인수된 뒤부터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해왔고, 현재까지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일본·북아프리카·브라질·인도·독일·한국·그리스 등 총 13개 나라에서 뉴스 서비스를 하고 있다. 나라별로 현지 언론을 선택해 공동 투자, 운영한다. 한국판은 한겨레신문사가 파트너다.

김도훈 편집장은 “2~3주에 한 번 구글 행아웃(구글에서 만든 메신저)으로 (각 나라) 편집장들이 모이고, 1년에 1~2회 직접 만난다. 전자우편으로는 수시로 연락한다”고 말했다. 에디터별 모임도 있다. 전날 벌어진 여객기 추락 사고도 프랑스판인 가 즉각 각국에 상황을 공유했다.

이미지 없는 기사는 등록 자체가 안 돼

미국판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콘텐츠가 많지만, 방향이 바뀌는 경우도 생긴다. 세월호 참사 때는 한국 언론의 무분별한 재난 보도를 비판한 한 블로거의 글이, 지난해 11월에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 자녀들의 선천성 질환 문제를 다룬 의 탐사보도가 미국판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번역됐다. 유엔 결의안에 영향을 미친 탈북자 신동혁씨의 증언 번복과 관련해, 한국에 들어온 신씨를 가 직접 인터뷰한 기사도 여러 나라가 번역해 실었다.

오전 10시, 편집장과 에디터 5명이 회의실에 모여 앉아 30분가량 트래픽 상태를 분석하고 기사 계획을 논의했다. 에디터 각자가 고른 국내외 기사들 가운데 그대로 옮길 것, 인용·편집할 것 등이 나뉘었다. 자체 취재 중인 기사의 진행 상태도 공유했다. 자주 등장한 단어는 ‘재미’와 ‘관심’. 만드는 에디터들끼리 느끼기에 재미있으면 즉각 통과됐고,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을 헤아리는 데 집중했다. ‘알려야 하는 이슈’로 분류된 건 전날의 여객기 추락 사고와 미국 핵심 인사들의 이스라엘 비판 발언 보도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온라인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수시로 새로운 기사를 제안해, 게시 여부를 논의했다.

낮 12시30분부터 편집장, 에디터 5명과 대구탕을 함께 먹었다. 식사 직후 에디터 2명은 종로구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확인받는 서류를 받으러 다녀왔다. 조합원 자격이 없는 편집장을 뺀 에디터 전원이 조합원이다.

에디터들의 노동은 말 그대로 ‘편집’이었다. 다들 기사 작성에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했다. 자체 취재 대신 국내외 기성 언론 등을 주재료로 삼기 때문은 아니다. 다양한 매체 경험이 있는 에디터들은 “어떻게 하면 보는 사람이 쉽게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이전보다 더) 고민한다” “기사체 문장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것저것 실험해볼 수 있다”는 걸 공통된 이유로 들었다.

고통은 기사에 적당한 이미지를 찾고 카피를 짓는 데 있었다. 의 대표적 특징은 큼지막한 이미지와 강렬한 카피로 구성된 누리집 첫 페이지 머리기사에 있다. 이들은 머리기사를 ‘대서특필(된 기사)’, ‘주변 색채와 대조되는 화사한 색’이란 뜻을 가진 ‘스플래시’(splash)라 부르는데, 비주얼을 중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세련된 것이 옳은 것보다 강력하다’ ‘중요한 뉴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는 그만큼 돋보이도록 소개해야 한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미지가 없는 기사는 화면 등록이 되지 않는다.

비주얼로 목소리를 낸 세월호 참사 100일

가 자체 개발한 콘텐츠매니지먼트시스템(CMS)은 비주얼 중심 편집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미지를 한 번 등록할 때 웹, 모바일, SNS 등 용처별로 다양한 크기에 맞춰 저장해두는 식이다. 에디터가 사진이나 동영상만 잘 찾으면 플랫폼별 구현은 CMS가 ‘알아서’ 도와준다. 사진 등록 때 검색용 키워드, 크레디트(출처)도 반드시 입력해야 하며, 출처는 사진 이미지 오른쪽 하단에 자동 기록된다.

는 세월호 참사 100일 때 애도의 표시로 스플래시 이미지는 물론 세월호와 관련 없는 기사까지 모두 흑백으로 처리했다. 이건 CMS에 없는 기능이라, 편집장이 일일이 흑백으로 바꿔 등록하는 수작업을 하루 종일 했다. 다른 나라 에디터들의 반응이 좋았단다. “비주얼로 매체의 목소리를 낸 것”이 ‘허핑턴포스트답다’는 이유에서다. 김도훈 편집장은 “프랑스판은 출범 1주년을 맞아 모든 기사 이미지를 카툰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에디터들의 공통된 바람은, 압도적인 편집 노동과 가욋일 같은 자체 취재의 비중을 ‘균형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뿐 아니라 미국판을 뺀 나머지 나라 에디터들이 공유하는 고민이라고 했다. 미국판은 2011년 탐사보도 전문기자를 영입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다친 미군들을 다룬 기사로 201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자체 취재가 가능하려면 규모가 받쳐줘야 한다. 에디터만 200여 명에 달하는 미국과 달리, 국제판 에디터는 각 나라별로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는 온라인 유료화 대신 광고와 스폰서십으로 수익을 낸다. 미국판은 창간 5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는 창간 1년을 맞은 올 2월 처음으로 소폭 흑자를 기록했다. 김도훈 편집장은 “트래픽과 영향력이 동일하다고 보지 않으며, 비례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트래픽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영향력을 늘리는 일을 같이 해내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체 인터뷰 기사 생산 체제를 1년 내로 안착시키고 다음 단계를 모색할 계획이다.

이날 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스플래시에는 종합편성채널 JTBC가 드라마 에서 내보낸 여고생들의 키스신 이미지가 들어갔다. 헤드라인 카피는 ‘누가 이들의 키스를 벌하는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날 해당 드라마를 심의하면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냈고, 중징계를 예고했다.

김도훈 편집장은 이 스플래시를 마지막으로 저녁 8시30분에 회사를 나섰다. 회사 건물 앞에서 야근자와 담배를 피우던 그가 문득 “사람들이 기사를 볼 때 맞춤형 BGM(배경음악)이 깔리게 할 수는 없을까?”라고 말했다. 기사를 편집하면서 “케이티 페리의 노래 (I kissed a girl) 같은 카피를 달고 싶다”고 갈구했던 여운이 부른 상상이다.

편집장, 에디터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기성 언론의 틀에 갇힌 생각”이란 지적이다. 다 동의할 순 없었다. 대화는 종종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 미디어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인식 등 ‘전제’를 검토·확인해야 할 필요성으로 번졌다.

공통점은 있었다. 레거시든 디지털 네이티브든 같은 시대를 ‘표류’하는 처지라는 점. “사실 아직도 매 순간 뭔가를 새로 배운다”는 자기고백은 너나 할 것 없었다.

같은 시대를 ‘표류’하는 처지

최진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올해 초 에디터들을 만났을 때 ‘달콤한 소셜의 축배에 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소셜에 기반한 의 성장 과정과 매체 위상은 짜깁기 시비, 상업성·선정성 논란, 연성 스토리의 과잉 등과 연결되어 뉴저널리즘의 가능성과 한계를 질문하게 만든다. ‘저널리즘은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도 답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2014년 발간한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 원칙’ 보고서에서 ‘핵심 질문’ 두 가지를 던진다. “첫째, 역사를 지닌 기성 조직들은 디지털 신생 미디어가 취하는 저널리즘 원칙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둘째, 기성 조직의 전통적 저널리즘 원칙 중 신규 진입자들이 더 확고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순혈주의자’들이 시대를 버티고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혼종’ 저널리즘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 기사는 의 김도훈 편집장, 권복기 전 편집장, 강병진·박수진·박세회·원성윤·허완·곽상아·김병철·남현지·류호성 에디터, 번역가 김태성, 최진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 이재훈 디지털콘텐츠팀기자, 디지털미디어사업국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글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ryuw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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