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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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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핫하다는 청년과 시장의 ‘로맨스’

구로시장의 ‘영-프라쟈’, 이태원 도깨비시장의 우사단길, 저렴한 임대료 덕에 시장에 활기 불어넣는 청년 장사꾼들
등록 2015-03-04 08:10 수정 2020-05-03 00:54
지난 설 연휴, 장은 어디서 보셨습니까. 편리하고 안락한 대형마트에 다녀오셨습니까. 어떤 규제를 도입해도 마트의 편리함을 재래시장이 뛰어넘을 순 없겠지요. 대신 마트보다 재미있는 시장들이 있습니다. 공산품처럼 판에 박힌 먹거리, 영혼 없는 먹거리를 넘어 유쾌하고 유니크한 먹거리들을 내놓으며 시장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이 활력을 불어넣고, 시장을 지켜온 상인들은 온정으로 청년들을 돌보며, 재래시장을 함께 지켜가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봄, 편리한 장보기 대신 유쾌한 장보기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요. _편집자

서울 구로시장에 지난 1월 문을 연 크레이프 전문점 ‘구로는예술대학’. 구로구 마을공동체 추진팀과 지역 예술문화 단체가 함께하는 민관 협력사업 ‘영-프라쟈’에 참여하는 청년 장사꾼들이 운영하는 가게다. 정용일 기자

서울 구로시장에 지난 1월 문을 연 크레이프 전문점 ‘구로는예술대학’. 구로구 마을공동체 추진팀과 지역 예술문화 단체가 함께하는 민관 협력사업 ‘영-프라쟈’에 참여하는 청년 장사꾼들이 운영하는 가게다. 정용일 기자

시장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구로공단이 이 나라 최고의 산업단지로 추앙받을 때, 한복과 침구, 옷을 파는 가게가 촘촘히 들어선 서울 구로시장의 좁은 골목에도 구경꾼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공들은 월급날이 되면 으레 시장을 찾아 옷을 사입거나 가족에게 내밀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갔다. 시장의 전성기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른 사람과 어깨가 부딪히곤 했지. 사람 머리밖에 안 보일 정도로 그렇게 꽉 차가지고.” 허물어가는 시전을 지키는 상인의 눈가에 아련한 기억이 물들었다.

한물간 도깨비시장, 가장 트렌디한 우사단길

공단의 쇠락과 함께 시장에도 쇠락이 깃들었다. 상인과 손의 흥정하는 소리가 잦아들고 주인을 기다리던 상품 진열대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좁은 시장 골목은 시장이라기보단 흉물이 되어갔다. 인적 없는 골목은 인사불성의 취객이 잠을 청하거나 10대들이 모여 담배를 태우기에 맞춤했다. 발길이 끊기는 것이 당연했다. 정부가 시설을 고쳐준다는 소문이 나면 상인들이 모여 기대를 나누었고 재개발한다는 소문이 나면 살길을 고민해야 했다. 설왕설래뿐이었다. 월세도 내지 못할 형편이 된 상인들은 오랜 터전을 두고 떠나갔다. 한 집 걸러 한 집은 창고가 되었고 다른 한 집은 빈집이 되었다.

구로시장에 다시 맥박이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의 일이다. 30년 전 청년 노동자들이 구로공단의 맥박을 이었던 것처럼, 구로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청년 상인들이 찾아들었다. 구로구 마을공동체 추진팀과 지역 예술문화 단체가 함께하는 민관 협력 사업 ‘영-프라쟈’에 참여하는 신세대 장사꾼들이다. 지난 1월23일 문을 연 영-프라쟈의 입점 업체는 총 4곳이다. 대구식 똥집튀김 전문점 ‘똥집맛나’, 수공예품 판매점 ‘아트플라츠’, 크레이프 전문점 ‘구로는예술대학’, 토르티야·피자 및 식재료 판매점인 ‘쾌·슈퍼’. 4개의 청년 상점은 비어 있던 상점가 곳곳에 색색의 간판을 내걸면서 골목을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오래된 골목길의 낡은 상권이 역설적으로 청년들의 새 둥지가 된 사례는 구로시장만이 아니다. 서울 이태원 도깨비시장 역시 재개발 예정지로 묶여 있어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오히려 청년들에게 기회의 장이 됐다. 2012년 개발을 기다리며 오래 방치돼 삭막해진 거리에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와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공방을 열면서 한물간 ‘도깨비시장’은 가장 트렌디한 ‘우사단길’의 일부가 되었다. 새로 들어선 공방들이 빚어내는 풍경에 빵·잼·커피 등 다양한 먹거리와 거리 공연을 펼쳐놓는 계단장은 이곳 우사단마을을 단숨에 블로거들의 성지로 만들었다. 우사단마을은 페이스북을 통해 젊은 고객들과 소통하는 동시에 마을 신문 을 만들어 지역사회 안에서 소통하고 있다.

이태원 옆 보광동에서 4년째 살고 있는 최인주(31)씨는 근처에 도깨비시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말로만 도깨비시장을 들어보긴 했는데 거기서 장을 봐야지, 그런 생각은 못했죠.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어느 날 마음먹고 우사단길을 나섰다가 그 끝에 도깨비시장이 있어서 요새는 가끔 와서 반찬도 사가고 그래요.” 최씨는 덧붙였다. “계단장이 열리면 온갖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군것질거리를 즐기면서 시장에선 생활과 밀착된 반찬거리를 살 수 있으니까 1석2조예요.” 상인들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도깨비시장 인근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이아무개(57)씨는 “원래 바글바글했는데 완전히 한물갔다. 몇 년 사이에 젊은 사람들이 입주를 하면서 최근 들어 동네를 찾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안 오던 젊은 사람들도 일부러 찾아와서 식당에 흘러 들어오니까 앞으론 더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아직 변화 없어도, 젊은이들 자체가 활력

‘가오픈’ 단계인 구로시장의 영-프라쟈엔 아직 찾는 이가 많진 않다. “하루에 10개 팔면 많이 파는 거예요.” 구로는예술대학을 운영하는 윤혜원(29)씨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가 없어도 상인들은 젊은이들이 찾아와 활력을 돋우는 게 마냥 반가운 눈치다.

서울 통인시장(위쪽)과 구로시장(아래쪽)의 모습. 청년 장사꾼들이 시장통에 잇따라 가게를 열면서 재래시장이 진화하고 있다. 구로시장의 ‘쾌·슈퍼’는 지역 생산자들에게 납품받은 수제 잼과 과일청을 팔아 ‘공생’을 도모한다. 정용일 기자

서울 통인시장(위쪽)과 구로시장(아래쪽)의 모습. 청년 장사꾼들이 시장통에 잇따라 가게를 열면서 재래시장이 진화하고 있다. 구로시장의 ‘쾌·슈퍼’는 지역 생산자들에게 납품받은 수제 잼과 과일청을 팔아 ‘공생’을 도모한다. 정용일 기자

2대째 55년 동안 구로시장에서 도·소매 식재료점을 운영해온 ‘성진식품’의 정진기(53)씨는 동창생들을 이끌고 청년 사장이 운영하는 똥집맛나를 찾아 한턱을 내기도 했다. “똥집도 맛있고, (청년들이 파는 거) 다 맛있어요, 다. 나이 든 사람들만 시장에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오니 새로운 기분도 들고.” ‘박선생 철학사주 패션연구원’을 운영하는 박춘미(69)씨는 “젊은이들이 여기 들어온 건 황무지에서 돌을 캐낸 기적”이라고 추어올렸다. “젊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이 폐허를 뒤집어엎고 (창업을) 한 게 대단해요, 정말. 그러고 나서 가게 오는 분들이 ‘이 길 들어오는 게 기분이 좋다’고 하고, 친구들 들어오고 나선 외풍도 없어진 것 같고.”

‘선배 상인’들의 살뜰한 지청구도 많다. “너희들 장사하는 게 아직 잘 안 보인다. 저렴한 음식을 내놔야 한다. 손님들한테 친절히 해야 한다. 크레이프 말고 오뎅을 팔아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초보 상인들의 가게에 들러 싫지 않은 잔소리를 늘어놓고 간다. “싫지 않아요. 다 관심이잖아요. ‘마을은 말 걸기부터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잔소리도 감사하게 들려요.” 초보 상인 윤씨의 겸손한 너스레다.

청년과 시장의 ‘로맨스’가 언제나 성공적일 수는 없다. 지난해 11월15일 동대문 풍물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진행한 풍물시장 내 ‘청춘시장’ 프로젝트에 대한 상인들의 분위기는 구로시장과 사뭇 다르다. 서울시는 풍물시장 내 13개 점포를 청년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간으로 꾸며 100일 동안 시범사업을 벌였다. 일러스트·사진·수공예품 상점 등이 입점했다. 시범사업이라곤 하지만 3개월이면 적지 않은 시간이다. “젊은 사람이 조금 더 늘었어. 그래도 그 사람들이 뭘 산다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그전과 다를 건 없지.” 풍물시장에서 7년 동안 장사해온 이아무개(69)씨가 말했다.

“그냥 뭐 행사한다 하면 사람들이 몰렸다가 또 빠지고 하는 거지.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냄비같이 팍 끓었다가 또 싹 식어버리고. 매스컴 타면 조금 몰리다가 다 금방 빠진다. 그것도 하루이틀 효과 보는 거지.” 이씨의 반응은 냉담했다. 100일의 한정된 시간 때문일까. 이씨 같은 기존 상인과 새로 들어온 예술가들 사이엔 어떤 교감도 없는 듯했다. “가족 손님이 늘었고, 젊은 층이 좀더 들어온다. 사업을 잠깐 하고 마는 걸로 보는 게 아니라 2~3년, 그 이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 해보고 성과가 있다 없다 말하기가 어렵다”는 게 프로젝트 담당자의 설명이다.

‘완판’ 가게가 건물주한테 쫓겨난 뒤

단순히 공간을 내주고 청년들을 낡은 시장에 배치한다고 해서 시장이 살아나는 건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운영 방식을 가진 이들 사이에 ‘아교’ 역할을 해주는 것은 뭘까.

구로시장의 청년 사장들은 ‘공생’으로 토박이들에 화답한다. 윤씨가 만드는 크레이프는 철저하게 ‘구로산’이다. 성진식품에서 우유와 달걀을 떼오고 시장 내에서 부족한 재료는 이웃을 소개받아 해결한다. 똥집맛나의 닭똥집튀김 맛을 완성하는 마늘도 시장 안에서 공급한다. 쾌·슈퍼의 변은지(28)씨와 원지혜(29)씨는 지역의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납품받은 수제 잼과 과일청을 판다. 문화기획자였던 두 사람은 인근 소매점들의 포장지를 젊은 감성으로 디자인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재래시장과 청년 상인의 ‘퓨전’이 기존 재래시장에만 이로운 것은 아니다. 시장은 청년 상인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다. 박유석(35)씨가 운영하는 ‘똥집맛나’는 원래 홍익대 앞에서 유명한 맛집이었다. 프라이드치킨처럼 밀가루 옷을 입혀 튀겨낸 고소한 닭똥집은 소문 듣고 찾아오는 이들로 ‘완판’ 행렬을 이어갔다. 그렇게 성황리에 2년여 동안 장사를 하다가 새 건물주의 계약 해지 통보로 쫓겨났다. 권리금 2억원을 날렸다. “몽땅 뒤집어쓰고 와서, 여기서 2억원을 벌어야 해요.” 구로구에서 지원해주는 보증금과 1년의 임대료가 아니었다면, 박씨는 무일푼으로 쫓겨난 허탈감을 딛고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여기 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완전히 폐허 같았거든요.” 동료 상인들과 함께 페인트를 칠하고 망치질을 해 가게를 가꿨다. 홍대 앞 쟁쟁한 상권에서 ‘무한경쟁’에 익숙해진 박씨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홍대는 장난이 아니에요. 워낙 상권이 세니까 가게 수명이 다 짧았어요. 여긴 그런 느낌이 안 들죠.” 이들은 화요일마다 구로시장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주기적으로 뮤지션 등을 초대해 공동 행사도 연다. “요샌 장사 말고 다른 생각도 많이 한다”며 박씨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자랑했다. “저는 합정에서 쫓겨나다시피 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서로 외롭지 않게 즐겁게 장사하고 싶어요.”

“야시장도 열려요, 많이들 오세요”

재래시장의 진화엔 끝이 없다. 영-프라쟈의 젊은 사장들은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며 여러 꿍꿍이를 모으고 있다. “서체 디자인하는 업체에 폰트 제작을 맡겼어요. 지금 영-프라쟈 간판에 새긴 서체를 ‘구로시장 폰트’로 작업해서 배포하고 홍보할 계획이에요. 전단도 만들어서 직접 뿌릴 거고요. 아티스트들이 전시하고 뮤지션들은 공연하는 행사도 열 계획입니다. 3월에는 야시장도 열려고요. 많이들 오세요.”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강예슬 인턴기자 milkleft@naver.com·천다민 인턴기자 abeai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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