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빠의 하늘

‘굴뚝 아빠’ 이창근씨의 아들 주강이와 나눈 이야기, 일기, 그림을 모아 쓴 ‘굴뚝 동화’
등록 2015-03-04 06:54 수정 2020-05-02 19:27
‘차를 만드는 아빠’가 ‘해고자 아빠’가 됐을 때(2009년) 주강이는 4살이었습니다. 10살이 된 주강이는 이제 ‘굴뚝 아빠’를 둔 아이가 됐습니다. 아빠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씨는 80일째(3월2일 기준) 하늘에 있습니다. 일주일에 2~4차례 주강이는 엄마(이자영씨)를 따라 굴뚝 아래로 가서 아빠를 올려다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주강이가 지난해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책()을 읽은 뒤 느낌을 표현하는 과제였습니다. 스토리 없이 동물들 정보를 나열한 그림책을 읽고 주강이는 6컷짜리 ‘물고기 가족’의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아빠가 굴뚝에 오르기 전 그린 그림은 굴뚝에 아빠를 둔 요즘 꺼낸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주강이에게 아빠는 ‘땅에 있을 때도 하늘을 산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주강이는 ‘아빠 이창근’의 아들이지만 그가 바라보는 하늘은 고공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모든 아빠·엄마들의 하늘이기도 합니다. 주강이와 나눈 이야기, 주강이가 쓴 일기와 그린 그림들을 모아 주강이의 눈에 비친 ‘아빠의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주강이는 가끔 아빠를 흉내(보도자료 쓰기) 내 번호를 붙여 글을 씁니다. 은 주강이를 흉내 냈습니다. _편집자

엄마 물고기가 아들 물고기에게 묻는다.

엄마 물고기 아가야, 오늘은 어딜 갈가(까).

아들 물고기 오랜만에 아빠한태(테) 갈(가)볼래요.

아빠 물고기 등장.

엄마 물고기 여보.

아들 물고기 아~빠.

아빠 물고기 어, 우리 아들.

엄마 물고기가 아빠 물고기에게 말한다.

엄마 물고기 가요.

아들 물고기 아빠 이재(제) 집으로 가요.

아빠 물고기 그러자구(꾸)나.

물고기 세 마리가 한 방향으로 헤엄친다.

아빠 물고기 허허허.

동그란 방 안에 물고기 세 마리가 모였다.

아빠 물고기 우리 집 정말 오랜만이내(네).

아들 물고기 그치.

엄마 물고기 호호호.

물고기 세 마리가 나란히 누웠다.

아들 물고기 아녕이(안녕히) 주무새(세)요.

엄마 물고기 그래.

아빠 물고기 잘 자라.

아들 물고기도, 엄마 물고기도, 아빠 물고기도, 쿨쿨쿨~.

1. 아빠, 그거 알아?
2. 아빠, 세상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동물이 뭔지 알아?

고함원숭이래. 새벽과 해질 녘에 숲 끝까지 울리도록 시끄러운 소리를 낸대. 가장 큰 소리는 화가 나서 다른 동물에게 울부짖는 소리래. “여긴 내 구역이야”란 뜻이래. ‘끽끽’ 목 긁는 소리로 위험을 알리기도 하고, 혀 차는 소리, 으르릉거리는 소리, 짖는 소리도 낸대. 재밌지.

나도 애들하고 놀 때 가끔 막 소리를 질러. 으으으아 거리기도 하고, 쿠아아아 하기도 해. 화가 날 땐 그래. 싫어서 하지 말래도 자꾸 하는 애들이 있어. 그럼 괴물처럼 무서운 소리를 내줘야 돼.

고공농성 중인 이창근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의 아들 주강군이 그린 ‘물고기 가족’ 이야기. 김진수 기자

고공농성 중인 이창근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의 아들 주강군이 그린 ‘물고기 가족’ 이야기. 김진수 기자

3. 아빠,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동물이 뭔지 알아?

야크래. 히말라야산맥의 숲이나 풀밭에서도 살 수 있는 소래. 그림을 보니까 삽살개처럼 몸에 털이 북실북실해. 되게 높고 추운 산에서 살려고 따뜻한 털을 갖게 됐대. 산소가 별로 없는 곳에서도 살 만큼 숨도 잘 쉴 수 있대.

아빠는 야크 같아.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야. 엄마랑 가서 보면 굴뚝이 엄청 길어. 삼촌들이 70m래. 100cm가 겨우 1m니까 1m짜리 자가 70개나 있는 거잖아. 땅에서 보면 아빠 얼굴은 보이지도 않아. 정욱이 삼촌인지 아빠인지 알아보지도 못하겠어. 아빠도 꼭 털 많이 달린 옷 입고 산소마스크도 자주 써. 그럼 야크만큼 잘 지낼 수 있어.

굴뚝 연기는 물에서 나는 연기(*수증기) 같아. 굴뚝에서 나와서 구름으로 올라갔다가, 비로 다시 내려오고, 비가 얼어서 눈이 되는 거. 왠지 아빠를 따뜻하게 해줄 거(*실제론 액화천연가스(LNG)로 인체에 유해) 같아.

4. 아빠,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사는 동물이 뭔지 알아?

데빌즈홀펍피시래. 이름 되게 어렵지. 북아메리카 남쪽 사막의 작은 연못에서 산대. 거기 말고는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물고기래. 2만 년 동안 거기서만 살았대. 여름이 끝날 때쯤 400~500마리로 늘어났다가 겨울엔 100~200마리로 줄어든대. 살아남은 애들만 봄에 다시 새끼를 낳는대.

아빠는 높은 굴뚝 위에서 안 외로워? 아빠 굴뚝은 그 물고기들 연못보다 넓어? 굴뚝에선 얼마나 잘 보여? 멀리 있는 것도 보여? 아빤 뭘 보려고 올라간 거야? 밑에선 볼 수 없던 걸 굴뚝에선 볼 수 있어? 아빠가 보고 싶던 공장 안은 잘 보여? 보고 싶던 공장 안 삼촌들도 잘 보여? 나도 멀리까지 보고 싶어. 내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게 뭔 줄 알아? 아빠야.

12월21일. 일요일. 눈 옴.

감사한 일: 아빠랑 화상통화를 해서 좋았다.

5. 아빠, 아빠는 나한테 뭔지 알아?

거짓말쟁이야. 나한텐 부산 간다고 해놓고 굴뚝 올라갔어. 그래도 밉진 않아. 아빤 원래 거짓말쟁이니까. 장난감 사준다고 하고 안 사준 적 많았으니까. 옛날(*7살 때 ‘생명평화대행진’)에 아빠랑 걸어가다 쉬할 때도 거짓말했어. 오줌 눌 동안 가려준다고 해놓고 휴대폰에 빠져서 혼자 가버렸잖아. 배신자. 이광수.

엄마가 며칠 뒤 이야기해줬어. ‘복직’하려고 굴뚝에 올라갔다고. 복직이 뭐냐고 물으니까 엄마가 그랬어. “아빠가 매일매일 집에 들어오는 거”라고.

12월15일(*아빠가 굴뚝에 오른 지 이틀 뒤). 월요일. 맑음.

제목: 학교 안 가는 날

어젯밤 토를 했다. 아침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를 가지 않았다. 갈지 말지…. 이 상태론 힘들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감사한 일: 학교에 안 가서 좋았다.

*선생님 메모(12월17일):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주강이는 학교 안 오면 심심하지 않아요? (선생님 메모 밑에 주강이가 다시 연필 글씨로) “글새(쎄)요.”

6. 아빠, 굴뚝에 있는 아빠가 언제 가장 부러운 줄 알아?

맛있는 거 먹을 때야. 굴뚝에 있으면 먹고 싶은 거 다 올려주잖아. 그래서 나도 굴뚝에 올라가고 싶어. 아빠가 땅에 있을 때 맛있는 거 많이 안 사줬어. 밀가루 음식은 살찐다면서 못 먹게 하고. 굴뚝에 올라가면 피자 마음대로 먹을 거야. 갖고 싶은 장난감도 밑에서 올려줄 거고.

그래도 지금은 올라갈 수 없어. 나까지 올라가면 엄마 혼자 있어야 되잖아. 엄마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안 돼. 아빠는 정욱이 삼촌이랑 있어서 괜찮아.

1월10일. 토요일. 맑음.

제목: 엄마

야호! 드디어 엄마 만나는 날!(*삼촌 집에 간 주강이가 일주일 만에 엄마와 재회) 어서어서 옷 입고 세수하고 밥 먹고 출발! 우우우웅!(*차 타고 가는 소리) 삼촌, 엄마 어딨어? 엄마~. 푹!(*품에 안기는 소리) 헤헤헤. 나는 엄마와 집으로 갔다.

감사한 일: 엄마를 만나 고맙고 감사하다.

아빠(이창근)와 삼촌(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고공농성 중인 굴뚝을 주강군이 그림으로 묘사했다(왼쪽).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주강군(오른쪽). 김진수 기자

아빠(이창근)와 삼촌(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고공농성 중인 굴뚝을 주강군이 그림으로 묘사했다(왼쪽).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주강군(오른쪽). 김진수 기자

7. 아빠, 그날 내가 아빠한테서 처음 본 게 뭔 줄 알아?

아빠 눈물. 그날(*2014년 11월13일 대법원의 ‘해고무효’ 파기환송) 되게 추웠어. 옷을 얇게 입고 가서 덜덜 떨었어. 아빠만 안(*법정)에 들어가고 나랑 엄마는 밖에 있었잖아. 아빠 기다리면서 처음 보는 이모랑 잔디에서 떼굴떼굴 구르며 놀았어.

11월13일. 목요일. 추움.

얼음처럼 추운 날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법원으로 갔다. 거기에서 딱 10명만 법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못 들어갔다. 재판에 졌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나도 눈물이 났다.

‘재판에 졌다’고 쓰긴 했는데 무슨 뜻인지는 기억 안 나. 재판에 이기면 뭐가 달라지는지도 까먹었어. 그래도 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기면 아빠가 비싼 장난감 사준다고 했잖아. 재판에 져서 장난감도 날아갔어.

법원에서 나올 때 손이 시려 호주머니에 넣었어. 옆에서 땅을 보고 걷고 있는 아빠를 봤어. 나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아빠가 갑자기 ‘흑’ 하고 울었어. 아빠도 우는구나 생각했어. 일기에는 “눈물이 났다”고 썼는데 사실 울진 않았어. 아빠가 시켜서 쓴 거야. 울었다고 써야 감동적인 이야기가 된다고 아빠가 그랬잖아.


스케치북에 그린 불안과 공포


아빠를 찾는 울음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아빠가 굴뚝에 올랐다는 사실을 엄마 이자영씨는 5일 만(2014년 12월17일)에야 주강이에게 이야기했다. 굴뚝 아래로 처음 데려가던 차 안에서였다. “주강이가 굴뚝의 상황을 너무 구체적으로 상상할까봐 두려웠어요.”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는 아이들의 마음도 거세게 할퀴었다. 경찰의 가혹한 진압 장면이 남긴 공포가 주강이의 그림을 통해 드러났다. 현재 주강이의 스케치북은 온갖 무기로 치장한 ‘강한 존재’들로 가득하다. 총, 창, 검, 칼, 방패, 투구, 갑옷….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방어하며, 인체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강이는 고심했다. 경찰특공대가 지붕 위에서 ‘삼촌들’을 때리는 장면을 본 뒤엔 특공대를 물리치는 방법을 매일 상상했다. 학교나 텔레비전에서 응급처치법을 배우면 열심히 설명하며 꼭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간혹 으르렁거리는 괴성으로 아이들을 겁주는 행동도 위험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수단으로 엄마는 이해하고 있다. 공장 위를 비행하며 최루액을 쏟아붓던 헬리콥터 소리 탓인지 주강이는 기계음을 무서워한다. 지금도 변기 물을 내리고 나면 귀를 막아버린다.
아빠가 하늘로 오른 날부터 주강이는 많이 아팠다(12월16일까지 결석). 토하고, 배를 움켜잡고, 머리가 아프다며 울었다. 아버지가 부산에 간 줄 아는 아이가 이유 없이 열 차례나 눈물을 쏟았다. “아빠가 하늘에서 느끼는 불안을 주강이가 같이 느끼고 있구나 싶었어요.”
굴뚝 아래서 아빠를 처음 올려다봤을 때 주강이는 “와, 높다”는 말뿐이었다. 주강이에게 ‘굴뚝에 있어 부재하는 아빠’와 ‘땅에서도 부재했던 아빠’의 차이는 크지 않은 듯했다. “특정 장소에 가면 멀리서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빠를 보기 힘들었던 전보다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빠를 찾는 울음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주강이는 갑자기 울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아빠 보고 싶다’며 밤마다 서럽게 운다”고 엄마는 전했다. 그때마다 주강이는 아빠와 통화하며 말했다. “당장 내려와.” 가끔은 이런 말도 한다. “내려오기만 하면 아빠 볼 뽀뽀해서 다 빨아먹을 거야.”

8. 아빠, 아빠가 굴뚝에 있어서 가장 싫을 때가 언제인 줄 알아?

축구 못할 때야. 아빠는 집에 잘 안 들어오다가도 한번 오면 거의 잠만 잤어. 잠에서 깨서 눈 반쯤 뜬 얼굴에 안경을 비뚤게 걸치고 있던 거 생각나. 가끔이지만 아빠랑 축구할 때가 재미있었어. 내가 골키퍼가 돼서 아빠가 쏘는 강슛을 막을 때가 너무 신나. 아빠가 세게 차서 다이빙하게 해주는 게 좋아. 너무 세게 차서 얼굴에 공 맞고 운 적도 있었잖아. 아빠가 없으니까 축구가 재미없어. 굴뚝에서 내려오면 목욕탕도 같이 가줄게. 욕조에서 오랜만에 수영도 하자. 아빠 등이 너무 커서 때 미는 건 힘든데…, 빨리 내려오기만 하면 등도 밀어줄게.

아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게 뭔 줄 알아? 아빠야. 정욱이 삼촌이야. 풍선처럼 붕붕 떠올라서 굴뚝까지 올라갔어. 아빠들이 풍선보다 더 높이 올라가면 어떡해. 너무 높이 올라가서 풍선처럼 뻥 터져버리면 어떡해. 아빠 떨어질까봐 무서워. 아빠 어서 내려와.

1월18일. 일요일. 흐림.

제목: 생일

두근두근 오늘은 내 생일. 삼촌은 언제 올까? 삼촌! 보드게임 하자! 응? 알겠어. 목욕탕으로 출발! 아우 따뜻하다.

감사한 일: 가족이 모여서 좋았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