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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굴뚝 아래 쌓인 ‘부치지 못한 편지’ 속 전하지 못한 164개 마음… 마지막에는 공장 안팎 모두 함께 웃길
등록 2015-02-04 07:14 수정 2020-05-02 19:27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
하늘길이 막혀 배달되지 못하는 편지들이 ‘해고노동자의 땅’에 쌓이고 있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 밑엔 설치(2014년 12월27일) 뒤 한 차례도 배를 열지 않은 빨간 ‘굴뚝우체통’이 있다.
‘서신 검열’ 탓이다. 쌍용차 사 쪽이 편지의 ‘승천’을 막고 있다. 음식과 물품의 전달 때마다 내용물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기록·촬영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인도 출신 세계적 석학)이 해고자들에게 지지 서한(2014년 12월21일)을 보낸 직후 굴뚝 위로 전해지던 그의 저서도 불허됐다.

해고자의 땅에 수북한 응원의 외침

굴뚝우체통은 70m 고공을 수신처로 특수 제작(판화가 이윤엽·문화연대 신유아 등이 해고자의 요청으로 제작)된 전용 우체통이다. 김정욱(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의 어머니는 굴뚝을 찾을 때마다 우체통 앞에 서서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김정욱·이창근 두 해고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경기도 평택공장 굴뚝 아래에서 빨간 굴뚝우체통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품고 서있다(왼쪽). ‘굴뚝지기’ 복기성(전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씨가 1월27일 굴뚝우체통을 개봉해 그동안 쌓인 편지들을 꺼내고 있다. 정용일 기자

김정욱·이창근 두 해고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경기도 평택공장 굴뚝 아래에서 빨간 굴뚝우체통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품고 서있다(왼쪽). ‘굴뚝지기’ 복기성(전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씨가 1월27일 굴뚝우체통을 개봉해 그동안 쌓인 편지들을 꺼내고 있다. 정용일 기자

고공농성 46일째 날(1월27일) 이 굴뚝의 동의를 얻어 우체통을 열었다. ‘굴뚝지기’ 복기성(전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이 자물쇠를 땄다. 164통의 편지가 주인에게 닿지 못한 채 수북했다. 이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지면에 태워 하늘로 부친다. 손편지에 실린 간절한 마음들이 “하루하루 새롭게 사람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2014년 12월27일 인권운동사랑방 민선의 편지) 굴뚝을 향해 까치발을 들었다.

과거 고공을 지키며 하늘의 가파름을 겪었던 지인들은 김정욱·이창근의 시린 하늘을 염려했다. [ “생명줄과 같은 밥줄이 굴뚝 중간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시계추같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1월14일부터 8일 동안 음식과 물품 거부)을 목격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정하지만 버텨달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방금 이창근 동지 각시를 만났습니다. 85크레인 중간사수대 때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갚는 길)은 김진숙 동지를 잘 지켜내는 것이라 매일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1월1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 박성호) ]

김정욱·이창근은 땅에 있을 때도 ‘하늘살이’의 고됨을 잘 알고 있었다. 정작 자신이 고공에 올라 전하는 하늘 소식은 ‘톤다운’시켰을 것이라며 ‘의심’하는 마음도 있었다. [ “크레인 밑에서 사람들이 어떤 눈빛으로 크레인을 보고 있었는지 너무 잘 아는 당신이기에 그곳에서 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전화 통화 등은 실제보다 더 밝고 덜 힘들어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늘 의심해요.”(1월16일 쩡) ]

누군가는 지난해 ‘스타케미칼 희망버스’에서 본 김정욱의 모습을 떠올렸다. 온 힘으로 굴뚝을 위로했던 그가 스스로 굴뚝을 선택해야 했을 때의 암담함에 함께 힘겨워했다. [ “차광호 동지를 위해 노래를 몇 번이고 연습하게 했던 그 열정, 눈물, 다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란 책을 읽고 그제야 몇 명이고 동지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던 그 아픔, 그 분노가 조금은 읽히는 듯했습니다. 다시 고공농성을 위해 굴뚝으로 올라갈 결심을 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이 아프고 힘드셨을까, 감히 생각조차 못하겠습니다.” ]

생각조차,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동병상련하는 글들엔 노동자들이 통과해온 고된 시간이 배어 있었다. [ “양평 환경미화원들이 노조 결성을 이유로 전체가 해고되었고,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탑에 오를 생각을 했더랍니다. 스쳐가는 생각이었지만 상상하기도 버거웠습니다. 우리끼리 싸우고 망설이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주저앉았고, 지금은 노조도 깨지고 그분들은 거리를 헤매고 계십니다. 그때로 돌아간다 하여 제가 고공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1월9일 장혜진) ]

쌍용차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의 편지들(1월27일까지 164통)을 썼다. 쌍용차 해고 사태를 다룬 연극 〈해방구〉의 출연배우가 늦은 군입대 뒤 상병이 돼 편지를 보냈고, 2014년 6·4 지방선거 때 김득중(쌍용차지부장) 선거사무소에서 인턴을 했던 학생이 굴뚝인들의 안녕을 물었다. 12월14일(‘쌍코피연대’) 평택행 버스에 탄 사람들도 흔들리는 펜끝에 마음을 실었다.  정용일 기자

쌍용차 고공농성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의 편지들(1월27일까지 164통)을 썼다. 쌍용차 해고 사태를 다룬 연극 〈해방구〉의 출연배우가 늦은 군입대 뒤 상병이 돼 편지를 보냈고, 2014년 6·4 지방선거 때 김득중(쌍용차지부장) 선거사무소에서 인턴을 했던 학생이 굴뚝인들의 안녕을 물었다. 12월14일(‘쌍코피연대’) 평택행 버스에 탄 사람들도 흔들리는 펜끝에 마음을 실었다. 정용일 기자

김정욱·이창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타전한 식사 사진을 보며 홍태림은 고통스러웠던 군 시절을 떠올렸다. [ “당시 훈련병이던 저는 한겨울의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사격훈련 중에 저녁밥을 게워낸 적이 있습니다. 제 몸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저녁밥을 뱉어낸 것이지요. 지상도 이렇게 추운데 70m 굴뚝 위는 얼마나 추울까요. 차디찬 굴뚝 위에서 식사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

싱그러운 응원들도 있었다. 이창근의 아들 주강(10)군이 4살부터 8살 때까지 다닌 대안학교(강아지똥)의 친구들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안부를 물었다. [ “무쏘(당시 몰던 차 이름을 딴 이창근의 별명) 안녕. 새로운 소식도 있고 말할 게 너무 많네. 새로운 소식은 내가 이제 학교를 다녀. 이제 9살이지. (굴뚝농성) 20일째라며? 주강이 오빠는 무쏘가 굴뚝에 올라가서 많이 아프대. 무쏘 가끔씩 내려와서 인사도 하면 좋을 것 같아. 무쏘 안녕~.”(1월1일 지민) ]

호림(동성애자인권연대·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은 서울시의 ‘인권헌장 선포 거부 사태’ 때 지지 방문 온 이창근의 말을 잊지 못했다. [ “다른 투쟁 현장에 비해 너무나 호사스런 농성장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을, 코오롱 노동자를, 씨앤앰 노동자들을 뵈며 감사한 마음과 조금의 부끄러움, 그리고 연대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농성장에서 이창근 동지가 해주신 말을 선명히 기억합니다. ‘여기가 인권의 베이스캠프다.’ 굴뚝에 오르기 전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걸까, 두 분이 굴뚝에 오르신 이후 매일같이 이 말을 곱씹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문득 두 분이 올라 계신 굴뚝은 우리 모두의 노동권을 지키는 깃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꼭 답장을 드리겠습니다”

1월29일 해고자 복직을 논의하는 노-노-사 3자의 첫 실무교섭이 열렸다. 이창근은 굴뚝 벽에 청테이프를 붙여 만든 초록우체통에 편지 한 통을 넣었다. 수신자는 공장 안 동료들이었다. “굴뚝에 올라 있는 저희들을 매몰차게 내치지 않아줘서 고맙습니다. 출퇴근하며 슬쩍슬쩍 손 흔들어주고 문자 주고 굴뚝 아래를 그냥 스윽 지나가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흔들리는 굴뚝을 꽉 잡아줬기 때문입니다.” 빨간 굴뚝우체통에 편지를 넣어준 이들에겐 을 통해 약속했다. “연락처가 확인되는 분들껜 꼭 답장을 드리겠습니다. 2009년 파업으로 구속됐을 때도 1천여 통의 격려 편지에 모두 답장했습니다.”

평택=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스타케미칼 굴뚝 위 날아든 편지들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고공농성 250일(1월31일 기준) 동안 스타케미칼 굴뚝에도 많은 편지가 날아왔다. 다행히 차광호(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에겐 편지가 닿았다.
필리핀 노동자들도 스타케미칼 굴뚝에 연대를 약속하며 편지를 띄웠다(왼쪽).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동료의 12살 난 딸은 ‘광호 삼촌’을 생각하며 빼빼로를 만들고 편지를 썼다. 차광호 제공

필리핀 노동자들도 스타케미칼 굴뚝에 연대를 약속하며 편지를 띄웠다(왼쪽).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동료의 12살 난 딸은 ‘광호 삼촌’을 생각하며 빼빼로를 만들고 편지를 썼다. 차광호 제공

김수억 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의 편지는 “보고 싶은 동지께”로 시작해서 “쑥스럽지만 사랑합니다”로 끝났다. “날은 흐리고 희망보다 절망이 드리운 날들입니다. 희망은 오히려 45m 고공에 89일째 올라 있는 동지, 41일째(2014년 8월23일 작성) 병원에서도 미음조차 거부하고 있는 김영오님, 600일이 넘어도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동지들 속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김남주의 시 ‘벗에게’를 동봉했다.
‘하늘 선배’(171일 송전탑 농성)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전 쌍용자동차지부장)도 당선 전인 지난해 8월 굴뚝을 찾아 고공으로 편지를 올렸다. “송전탑의 겨울은 머리를 감으면 바로 백발이 될 정도로 매서웠지만 동지의 체온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온데 혼자서, 감시와 고립, 외로움을 어찌 다 감당하고 계시는지요.”
전북 장수에서 온 한완선씨는 “노동자는 거미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썼다. “가느다란 거미줄로 눈에 띄지 않고 힘도 없지만 씨줄 날줄 집을 지으면 큰 날벌레를 순식간에 먹이로 가두지요. 아무 힘이 없으나 거미집을 짓는 데 함께하겠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한 친구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세상을 향해 크고 작은 몸부림을 하면서 이 모진 세월 살아내고 있다”며 피부크림을 보내왔다. 연극배우 윤가현씨는 직접 털실로 목도리를 짜 올렸다. 필리핀 노동자 존스와 캐롤도 “당신의 투쟁은 우리의 투쟁”이라며 연대를 약속하는 영문 편지를 띄웠다. 해복투 동료 정병옥의 딸 하늘(12)양은 농성 160일째 날 ‘광호 삼촌’을 위해 ‘빼빼로 편지’를 썼다.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 그래서 제가 힘내시라고 빼빼로 만들었어요. 사랑해요. ♥~.”
하늘의 차광호는 말로 답장을 썼다. “아까워서 한꺼번에 다 읽지 못했습니다. 편지의 글과 마음을 아껴 읽으며 그 응원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저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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