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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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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장례식’을 준비합니다

올해 봄 폐간호를 준비하는 독립잡지 <헤드에이크>…시대의 기록, 수명을 다했으나 편집진과 독자가 함께했던 '다른 삶'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리라
등록 2015-01-29 05:52 수정 2020-05-02 19:27
2009년 창간 이후 13개의 질문을 던진 잡지 〈헤드에이크는〉 2015년 봄 폐간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월21일 정지원 편집장이 그동안 펴낸 잡지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정용일 기자

2009년 창간 이후 13개의 질문을 던진 잡지 〈헤드에이크는〉 2015년 봄 폐간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월21일 정지원 편집장이 그동안 펴낸 잡지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정용일 기자

(두통)는 2009년에 태어난 잡지다. 출발은 1이 아닌 0호였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았다.

2007년 정지원 편집장은 친구들과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잡지 읽기를 좋아하던 대학생들이었다. 근사한 잡지를 만들어 돈도 벌고 88만원 세대의 찌질한 굴레에서 벗어나 화려한 데뷔를 해보자는 꿈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잡지 콘셉트가 바뀌었다. “삶을 수긍한 채 살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매호에서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답변을 싣기 시작했다. 정 편집장과 친구들은 ‘질문’을 하며 늙어가자고 했다. 평생 잡지를 발간하겠다는 목표였다. 5년 동안 13가지 질문을 던진 는 올해 봄 폐간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끝까지 고군분투하다 장렬히 사망하라’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독립잡지는 2000년대 말 이래 그 수가 크게 늘었다. 1인 혹은 소규모 출판을 통해 주류 미디어가 다루지 않았던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잡지들이다. 역시 그런 잡지 가운데 하나다. 2010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독립출판 북페어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 담당자 문정원 대리는 “해마다 600~700종의 독립잡지가 행사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북페어에 참여하는 독립잡지 수는 매해 비슷하지만, 절반가량은 전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잡지다. 수많은 잡지가 태어나고,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셈이다. 처럼 ‘폐간호’라는 마침표를 찍는 독립잡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정 편집장은 2014년 말 폐간을 결심했다. “많을 땐 7명, 적으면 2~3명이 잡지를 내는 일이 너무 힘에 부쳤다. 물론 우리의 가치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인쇄비를 충당할 정도의 수익도 나왔다. 그동안 던진 13개의 질문은 우리의 고민이자 사회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아직 해결된 문제가 없다. 거기서 갈증을 느꼈다.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아닌 듯했다.” 애초 혼자 마지막 잡지 원고를 쓰고 3권 정도만 인쇄하려 했다. 폐간호 발간을 통해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기로 한 건 그가 처음 접한 독립잡지 를 만드는 이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2000년에 창간된 는 지금까지 생존 중인 ‘독립잡지계의 산증인’이다. 모두 53권을 발행했다. ‘당신에게 한 페이지가 주어진다면?’이라는 콘셉트로 개인 작업자들의 기고를 중심으로 한 잡지다. 1999년 뮤지션인 김용진(피터)·이아립 등 9명이 모여 ‘학급 문집’ 방식으로 잡지를 펴냈다. 한 총판(서점에 유통해주는 도매업체) 사장이 “잘하면 처럼 되겠다”며 유통을 맡아주었다. 1, 2, 3호는 대형 서점 판매대에 깔렸다. 독립잡지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 다른 주류 잡지들과 같은 유통 방식이었다. 3천 부를 찍어 ‘재고의 역습’을 받은 3호를 기점으로 전환을 맞는다. 인쇄 부수를 줄이고 공연과 전시회를 통해 독자들을 만났다. 잡지를 싣고 배달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적자는 꾸준히 쌓였다. 급기야 2011년 폐간을 고민했다.

그 무렵 김용진 편집장과 강지웅 에디터는 잡지수집가 서상진(60)씨를 운명처럼 만난다. 서씨는 1908년 창간한 한국 최초의 잡지 을 비롯해 한평생 1만여 점의 잡지를 수집했다. “선생님 말씀이 ‘끝까지 고군분투하다 장렬히 사망하라’고 하시더라. 묘하게 위로가 됐다.” 서상진씨의 잡지 철학은 52호에 기록돼 있다. “모든 매체는 중독성이다. 어느 날 매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건 독자들의 중독성을 끊게 하는 것이다. 폐간호를 낸다든가 종간호를 낸다든가 휴간호를 내야 한다. 사전에 독자에게 약속해서 충격이 덜 가게 해야 한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어느 날 안 나온다, 이건 독자에 대한 배신이다.” 이들은 잡지 만들기를 멈추지 않기로 한다. 대신 잠시 숨을 골랐다. 지난 3년간 해마다 한 권씩 잡지를 냈다. 올해엔 정기구독 신청을 다시 받고, 총 6권을 내보는 ‘모험’을 할 계획이다. “전국구로 알려지지 않으면 문화예술 활동가라고 인정받지 못하잖아요. 단기간 문화예술 활동을 하다 사라진 사람이 많아요. 가까이서 보기에 충분히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내는 것이 우리의 또 다른 역할인 것 같아요.”(김용진)

5년, 신념을 실험해본 시간

잡지는 또 다른 잡지의 자양분이다. 정지원 편집장은 2009년에 태어나 6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 디자인 잡지 창간호에서 ‘잡지를 지속적으로 내려면 재정적 안정성과 나름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당시 이 잡지는 등 이미 사라진 잡지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었다. 김용진 편집장은 를 창간할 당시, 영국에서 출간된 , 쌍용그룹 사외보 와 을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독립잡지 역시 시대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사회적으로 잘 보관되지 않는다. 공공도서관 등에서도 이런 소규모 출판물을 보기 어렵다. 정 편집장은 폐간호를 펴낸 뒤 그동안의 콘텐츠를 모아 전자북을 만들 예정이다. 는 재고가 없는 상태다. 도 과거 콘텐츠를 전자북으로 복원하고 있다.

이 작업을 지원하는 모바일·웹 소프트웨어 개발사 퍼니플랜의 남창우 대표는 “독립잡지는 소량으로 인쇄되기 때문에 빨리 절판된다. 아무리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도 문화 콘텐츠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를 전자북으로 복원해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독립잡지를 펴낸 지난 5년은 정지원이라는 개인에게 ‘신념을 실험해본 시간’이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져라, 혹은 누가 요즘 책을 읽느냐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타협 없이 밀어붙였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잡지를 만들었다. 열정을 쏟은 만큼 몸도 상했다. 사회적 지원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저는 4년제 대학을 나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언론에 보도도 되고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창작 지원 사업보다는 기본적인 복지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프리랜서, 백수, 실업자, 비정규직 2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사람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게 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 “멈출까?”

“멈출까?” 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사람들이 직접 행동하게 만들 수 있는 미디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2015년 그 수명을 다했으나 편집진과 독자가 함께했던 ‘다른 삶’에 대한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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