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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한국사회, 진단 2015

“문화·정신적 수준이 저질스러워졌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정당체계’ 강의… ‘이념’이라는 단어에 신물을 내는 정치인들, 헌재 정당해산 결정문은 정당해산 자체는 차치하고 정신적·심리적 자유를 억제하는 게 문제

제1046호
등록 : 2015-01-22 17:17 수정 : 2015-01-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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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어떤 민주주의인가>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등을 집필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이며 이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최 교수는 최근 정치발전소에서 주최하는 ‘정치 철학이 있는 민주주의 강의 시즌2’를 시작했다. <한겨레21>은 모두 4번으로 나눠 진행되는 강의 가운데 1월12일 열린 첫 강의 ‘정당체계: 극단적 양당제 vs 온건 다당제 내지 다원적 정당체계’를 듣고 최 교수의 양해를 얻어 이를 요약해 싣는다. 2015년 한국 사회 진단 네 번째 순서다. 최 교수는 이 강의에서 한국의 정당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의 한계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한국의 정당체계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당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는 최 교수의 발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실었으나 긴 강의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다소 수정된 부분이 있음을 알린다. _편집자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모습. 최 교수는 독일의 정당체계와 같이 사회의 다원적 요구를 고루 반영할 수 있는 정당체계를 한국 사회에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일 기자
오늘 강의 주제는 정당이다. 이 강의의 주제는 독일 정당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정당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생각해보면 그동안 정당정치가 지속적으로 퇴행해왔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야권의 ‘정당 제도화’의 실패가 중심 원인이었고, 야권의 정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전체 정당체계가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독일의 ‘다 열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

독일의 민주주의 역사에는 정당체계 변화의 중요한 지점이 있는데 민주주의가 첫 번째 사이클에서 두 번째 사이클로 단절적인 변화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이클은 바이마르공화국 때다. 이때는 완벽하게 개방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 아래서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든 정당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이런 환경에서 극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극우정당이나 공산당, 나치당 등이 득세하게 돼 결국 체제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독일은 전후 두 번째 사이클을 시작하면서 과거 민주주의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되풀이하면 안 되겠다’는 공통의 합의가 있었다. 이것을 토대로 독일은 옛 바이마르 정당들을 재건하는 대신 새로운 정당을 창건했고, 결국 온건 다당제라는 새로운 정당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독일은 바이마르공화국에 비견될 만큼 완전히 개방된 정당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중심 정당이 안정적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도 공산당과 네오나치당 등 급진적 정당들이 존재하나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다 열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첫 번째 사이클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이란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어떤 돌파구나 단절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연속적인 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도 첫 사이클의 패턴(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정당체계)을 되풀이하고 있다. 계속 이렇게만 할 수는 없다. 통일에서부터 경제, 정당체계, 경쟁패턴, 이데올로기 양극화까지 계속 되풀이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이것을 통해 좋은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하나의 돌파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체계는 냉전과 권위주의의 경험으로 인해 이데올로기적 폭이 좁다. 특히 ‘중간부터 왼쪽’에는 정당이 없고 오른쪽에만 있는 체계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은 지금도 (이데올로기적 폭이) 좁은데 그것을 또다시 인위적으로 제한한 것으로, 아주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결정이었다. 이데올로기를 통제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주 크다고밖에는 얘기할 수 없다.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더 구체적인 견해는 포털 네이버 ‘열린연단’에 기고한 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민주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대변할 정당 없는 사회적 약자들

한국은 1990년대 말에 신자유주의적 경제 원리와 가치를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 나타난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정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보통은 이 정도로 큰 외부적 충격이 오면 정당체계가 근본적으로 동요하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독일 정당체계의 경우 어떤 사회적 충격이 왔을 때 유연한 변화가 일어나고 그다음에 또 안정되는, 충격과 변화가 유연하게 돌아가면서 정당체계가 전체적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구조가 정착돼 있다. 그러면서 이데올로기적 폭은 최대치로 넓어지고 (다양한 계층의 요구가 다양한 정당에 의해) 다 표출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정당을 통해 자기 이익을 전혀 대표하지 못한다. 왼쪽의 요구들이 없는 게 아니라, 있지만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는 잠재적 정당에 대한 요구가 크다. 이것이 제3당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때로는 ‘안철수 현상’처럼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민주주의에서는 정당에 의한 인풋 기능(계층별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기능)이 약화되면서 ‘대표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실패하게 된다. 결국 한국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일반투표제적 민주주의’다. 일반투표제적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투표를 통해 대통령이라는 최고 행정수반을 한번 뽑고 나면, 이후에는 정당을 매개하지 않고 건너뛰어서 권위를 직접적으로 대표(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책임성이 아주 애매해진다.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된 뒤 대통령은 비판에 직면했을 때 “국민이 나를 뽑았는데 무슨 소리냐. 나는 전체 이익을 대표한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정치적 책임에 대한 관념이나 실제 책임을 지는 정도가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이 허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당이 매개가 되어야 책임도 물을 수 있고 인풋도 확대될 수 있다.

한국 정당은 스스로 사회적 기반을 확대·강화시켜야 하지만 이보다는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될까’에만 관심이 있다. 정당이 하늘만 보고 땅을 보지 않는 것이다. 정당이 공중에 매달린 형국이다. 이 때문에 밑에서부터 정치적 기반이 조직적으로 모아져 선거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집권하고 책임을 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정당이 전부 대선에만 신경 쓰는 등 전도된 정당체계를 갖게 되면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 새누리당과 개혁적이라고 일컫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념적으로는 모두 보수의 스펙트럼 안에 몰려 있어서 이념적 거리는 매우 좁다. 두 당의 차이는 사람들의 기분 차이, 두 당이 내거는 지지 기반이나 레토릭의 차이일 뿐 정책 내용으로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뭔가를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이렇게 이념의 거리는 굉장히 좁은 반면,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치면 세계 최고라고 할 정도로 적대적이다. 반MB, 반박근혜 등 원한에 가득 차서 서로를 저주하는 이념적인 온갖 레토릭이 여기에 다 들어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모순된 현상이 공존하는 상태가 한국 정당체계의 특징적 현상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월12일 정치발전소가 주최하는 ‘정치 철학이 있는 민주주의 강의 시즌2’의 첫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온건 다당제의 유연성과 장점

또한 한국 정당은 ‘대중정당’을 표방할 뿐 이념·가치·비전 등으로 차이를 갖는 정당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들에게 “진보적 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우리는 ‘이념’이라는 글자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이념이 무엇인가. 이념은 여러 정책 분야, 기능적 분야에서 일관적 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념이라고 해서 공산주의를 하자는 건 아닌데 이념이라고만 하면 정당에서는 ‘그건 아니올시다’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적 방향도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하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것부터가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을 문제 삼는 것도 이런 (이데올로기적 폐쇄성) 부분이다. 결정문을 읽어보면 통합진보당 부근에 간 모든 정당이 불그스름하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나는 괜찮은가’ 이런 느낌을 갖게 한다. 정신적·이데올로기적·심리적·지적·문화적 자유를 억제하는 게 이번 재판의 가장 큰 문제다. 통합진보당이 없어지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정신적 수준을 너무 저질스럽게 만든다는 것, 이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당 발전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제도적으로는 양당제보다는 온건 다당제가 좋다. 이 점은 독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 대립적 이념을 둘러싼 갈등은 양극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두 당이 타협과 컨센서스를 형성하기 어렵다. 온건 다당제가 되면 큰 두 정당 사이에 작은 정당이 들어가서 한쪽 편을 들어주면서 두 당의 장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추축 정당(중심축이 되는 정당·피벗 정당)의 역할은 이런 것이다. 요즘 유럽의 공통적 특징은 단일 이슈 중심의 틈새 정당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틈새 정당에도 장단점이 있지만 이들은 큰 정당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아주 중요한 하나의 이슈를 커버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온건 다당제가 상당히 큰 유연성과 장점을 갖는다. 한국의 경우 보수는 충분히 대표되고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좌편에 위치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좌편에 속하는 정당이 유념해야 할 점은 ‘최소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자유주의에서 사민주의 사이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것은 좌편이 대개 레토릭이나 언어 담론에서 ‘최대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당장 혁명이라도 일으킬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작동 가치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보통 진보파들은 이성적으로 디자인된 걸 추구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안 되면 혁명적 방법으로라도 추진하면 사회가 바뀔 것 같다고 보는 성향이 많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적 사고와는 잘 매치되지 않는다. 다원적 이익집단들의 자기 이익 추구를 인정하고 그것을 잘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즉, 합리적 목표와 수단을 동원하는 리더십의 기능, 그리고 당내에 존재하는 다원적 이익을 존중해서 잘 아우르는 능력, 이 둘이 합쳐져 변증법적으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정치 발전에서 정치인,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독일의 정치와 정당정치를 보며 실감한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좋은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는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제도를 통해 차선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막스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겸비한 지도자를 이야기했다. 신념윤리 없이도 책임윤리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신념윤리 없이 책임윤리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념이나 가치 없이 정치공학만 머릿속에 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민주화 이후 진보파가 많이 양산됐는데 이 진보파들 사이에서 신념윤리를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았을까. 그리고 신념윤리를 가진 사람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임윤리를 가졌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신념윤리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 조직을 잘 만들어서 좋은 정치인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는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는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지닐 덕목으로 지속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즉, 자신의 이념을 한번 가지면 변하지 말고 세상이 뭐라든 그걸 해야 한다. 그런 일관성을 유지하다보면 사이클이 맞을 때가 반드시 온다. 이런 지속성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추구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정리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녹취 정인선 인턴기자 insun9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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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한국사회, 진단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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