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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꼬박 모아도 부자 못 됩니다

부의 증가·분배에서 존재감 커져만 가는 자본과 자리 잃어가는 노동…

‘대체탄력성’, 심화되는 불평등을 설명하는 열쇠지만 개념에는 논란 있어
등록 2014-07-05 05:43 수정 2020-05-02 19:27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김정효 기자

지난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한국의 부/소득비율(β)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균제상태’에서의 부/소득비율이 저축률/성장률(s/g)이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선진국에 비해 저축률이 높지만 그만큼 성장률도 높은 편이어서 부/소득비율이 특별히 높아야 할 이유는 없다. 2013년 기준으로 (순)저축률이 18%인데, 앞으로 저축률이 더 올라가지는 않고 또 소득증가율은 적어도 3%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부/소득비율은 6 이하여야 한다. 그런데 2012년의 이 비율은 민간부 기준으로 7.5, 국부 기준으로 9.5다. 아마도 적정 수준을 넘어섰거나 이미 최대치에 도달한 상태인지 모른다. 실제로 한국의 부/소득비율은 2009년을 정점으로 상승세가 멈추었다.

저축·자산값 상승, 부 증가의 두 요인

부가 증가하는 것은 우리가 해마다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일부를 저축하기 때문이다. 저축이 쌓여 부가 된다. 부가 늘어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는데, 바로 자산가격의 상승이다. 자산가격이 일반 물가(예를 들어 소비자물가)와 같은 속도로 상승하면 부/소득비율 계산에서 가격상승률이 상쇄되므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자산가격이 일반 물가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경험적으로 그렇다. 경제학에서는 자산가격의 상승에 자본이득(capital gain)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자본이득률이 일반 물가의 상승률보다 높으면 부의 실질가치가 증가한다. 만약 당신이 20년 전에 산 아파트의 가격이 3배 올랐는데, 그동안 물가는 2배 올랐다면 당신의 ‘실질’ 부는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토지나 주식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실제로 토마 피케티는 부가 증가하는 데 저축과 자본이득이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계산했다. 주요 선진국을 대상으로 1970~2010년을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저축에 의한 증가 부분이 약 60%, 자본이득에 의한 증가 부분이 40%였다(독일만 예외적으로 자본이득 기여분이 마이너스였다). 어쨌든 자본이득의 기여분이 0을 넘는다는 것은 부의 가치가 물가보다 더 빠르게 상승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한국은 어떠한가? 그래프는 우리나라의 자산가격상승률과 소비자물가상승률 추이를 보여준다.

그래프를 보면, 2006년과 2007년에는 자산가격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돌았고, 그 뒤 격차가 좁혀지긴 했지만 자산가격상승률이 여전히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소득비율이 증가하게 된 것은 저축을 많이 한 까닭일 수도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발생한 자본이득 때문이기도 하다. 즉, 과거 한국에서 부/소득비율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높은 저축률과 높은 자본이득률의 상승작용에 의한 것이다. 필자는 피케티의 방식을 적용해 2005~2012년 한국의 실질 국부 상승을 저축에 의한 부분과 자본이득에 의한 부분으로 분해해봤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국부는 이 기간에 40% 정도 증가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43%는 저축에 의한 것이지만 나머지 57%는 실질 자본이득에 의한 것이었다. 피케티가 분석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자본이득의 비중이 훨씬 높게 나왔다.

소득이 쌓여 부가 되지만, 부의 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부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앞으로 소득을 더 많이 얻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부/소득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수 있을까? 앞서 말한 대로 ‘균제상태’의 비율과 비교평가할 때 이미 높은 수준으로 올라와 있다는 점, 게다가 부의 상승이 저축보다는 자본이득에 더 의존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부/소득비율이 더 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관성적으로 부/소득비율이 올라가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만약 더 오른다면 그것은 거품일지 모른다!).

노동소득의 몫은 점점 줄어들고

한 경제의 부/소득비율이 높으면 평균적인 소득으로 평균적인 부를 쌓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부/소득비율이 5일 때와 9일 때를 비교해보라. 비율이 5이면 평균적인 부를 쌓기 위해 5년치 소득을 모으면 되지만, 비율이 9로 올라가면 9년치 소득을 모아야 한다. 부/소득비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일정 수준의 부를 쌓기 위해 더 오래 더 많이 소득을 모아야 한다. 쌓아놓은 게 별로 없어 소득의 대부분을 일해서 버는 보통 사람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런데 부/소득비율이 올라가는 동안 자본소득분배율도 상승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했다는 것인데, 이는 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줄어든 것을 뜻한다. 부/소득비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부에서 창출되는 소득이 노동의 대가로 창출되는 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더 커진 것이다. 선진국은 1980년대 초부터,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소득 가운데 자본의 몫이 커지고 노동의 몫이 작아진다고 해서 소득분배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의 소득 안에는 자본소득도 있고 노동소득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소득도 불평등하게, 자본소득도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본소득은 노동소득에 비해 훨씬 더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 이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계 자료로 언제나 입증되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상위 10%가 차지하는 부의 점유율은 유럽에서는 60%가 넘고 미국에서는 70%가 넘는다. 부의 집중도가 이미 높은 현실 세계에서 자본소득분배율의 상승은 개인별 소득분배를 악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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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간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이 동반 상승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다. 일단 피케티가 설명한 방식을 살펴보자. 자본주의 경제에서 항상 성립하는 관계, 즉 그가 ‘제1법칙’이라 부른 수식은 ‘α=r×β’이다. 자본소득분배율=자본수익률×부/소득비율. 얼핏 β가 상승하면 α도 상승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β가 상승할 때 r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축적된 자본 또는 부의 양이 많아질수록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해 자본수익률이 하락한다. 따라서 β가 상승하는 동시에 r가 하락하면 α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경제학자들도 골치 아파하는 ‘대체탄력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면 β가 상승할 때 α도 상승하지만,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으면 β가 상승할 때 α는 감소한다. 대체탄력성의 크기에 따라 부/소득비율의 상승이 자본소득분배율을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다.

논쟁과 비판 쏟아지는 ‘대체탄력성’

엄밀한 정의는 제쳐두고 대체탄력성이 대략 어떤 개념인지 설명해보자.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고 결합해 소득을 창출한다고 할 때, 때로는 노동을 더 많이 투입하는 방식, 때로는 자본을 더 많이 투입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비중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생산기술, 즉 노동과 자본을 서로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을 때 노동과 자본 간의 대체탄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치인 1을 기준으로 1보다 높으면 탄력적이고 1보다 낮으면 비탄력적이라 한다. 피케티는 이 대체탄력성으로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의 동반 상승을 설명하는데, 특히 생산기술이 탄력적인 경우를 상정했다. 즉,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클 때 r의 하락보다는 β의 상승이 더 커서 α가 상승하는데, 역사적으로 관찰되는 추세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조금 더 차근차근 설명해보자.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본이 축적되고 노동의 생산성이 증가한다. 노동생산성 증가는 임금(w)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축적된 자본의 양이 많아지면서 자본수익률(r)은 떨어진다. 자본수익률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비용이므로 노동비용이 자본비용보다 상대적으로 비싸진다(r/w의 하락). 따라서 생산자는 자본(K)에 비해 노동(L)을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하길 원한다(K/L의 상승). 문제는 어느 정도 변경시킬 수 있는가인데, r/w가 1% 하락할 때 K/L를 1% 넘게 증가시킬 수 있는 유연한 경우가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 생산기술이다. 이 경우에는 r/w가 1% 하락했음에도 K/L가 1% 넘게 증가했으므로 r/w에 K/L를 곱한 값은 상승한다. 그런데 이 값은 바로 rL/wL, 즉 자본소득/노동소득비율이므로, 분배 측면에서 노동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피케티는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이고 복잡한 생산함수를 예로 들었지만, 관통하는 원리는 이와 같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은 단위당 비용이 높아진 노동은 가능한 적게, 단위당 비용이 낮아진 자본은 가급적 많이 사용하려 한다.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 유연한 생산기술하에서는 총노동비용에 비해 총자본비용이 더 많이 증가한다. 분배 측면에서 보면 자본의 몫이 커지고 노동의 몫은 줄어드는 것이다.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의 동반 상승에 대한 피케티의 설명은 전적으로 1보다 큰 대체탄력성에 의존한다.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바로 이 때문에 논쟁과 비판이 쏟아질 소지가 있다. 피케티는 주요 선진국에서 대체탄력성이 1.25 정도로 추정된다는 최근의 한 연구(Karabarbounis and Neiman, 2014, )를 예로 들었지만, 수많은 선행연구들과 비교할 때 이 수치는 이례적으로 높은 추정치에 속한다. 대부분의 연구는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거나 1에 근접한 수준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필자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한국에서 관찰되는 부/소득비율과 자본소득분배율의 동반 상승을 대체탄력성으로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그 수치가 민간부 기준으로 2.5, 국부 기준으로 1.9 이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생산기술이 이 정도로 유연해졌다고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부/소득비율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상응해 관찰되는 자본소득분배율의 급격한 상승을 생산기술의 변화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정보통신기술(ICT) 자본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에 따라 대체탄력성이 상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이는 면밀한 추정을 필요로 하는 과제다. 독점력이나 협상력 등 피케티가 언급하지 않은 별도의 요인을 추가로 고려해야만 종합적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대체탄력성, 독점력 등 고려해야

피케티 저서의 근간을 이루는 기조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그러나 그는 분석틀만은 가급적 주류 경제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인지 자본소득분배율 문제도 대체탄력성이란 개념만으로 간결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려 한 듯하다. 그는 책 제목에서 연상되는 카를 마르크스와의 연관성에 대해선 극구 부인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분명 천재다. 불평등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 동학을 보수주의 경제학의 분석틀로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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