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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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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수몰민의 눈물 “우리 추억을 어쩌라고”

등록 2013-02-25 05:46 수정 2020-05-02 19:27

“1995년 4월28일은 역사가 짧은 한국 PC통신 역사에 길이 기억될 만한 날이다. 그날 오전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대참사를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보도했던 매체는 그 막강하다던 신문도 방송도 아니다. 바로 PC통신이었다.”( 제60호 ‘PC통신! 최강 매체를 꿈꾼다’) 18년 전, PC통신은 변화의 상징이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모뎀 전화선으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 덕이었다. 당시 기사에는 국내 4개 PC통신 서비스에 등록된 동호회 수만 620여 개에 이른다는 내용도 나온다. 동호회가 만든 새로운 인간관계가 토론의 시대를 열어준 셈이다. 
“우리가 직접 인수해 운영하겠다”
PC통신이 그저 생소한 ‘추억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계기는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이다. ‘PC통신 삼국지’ 시대를 이끌던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도 포털 사이트로 변신을 시도해야만 했다. 그러나 네이버·다음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이텔은 2004년 파란닷컴(paran.com)에 흡수됐지만, 파란닷컴마저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소규모 포털사이트로 전자우편·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운영해오던 나우누리(nounuri.net)도 지난 1월31일을 마지막으로 모든 서비스를 끝냈다. 천리안(chol.com)만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다.
세월의 부침 탓에 PC통신 ‘3대 천황’은 그렇게 스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PC통신시대의 추억 지키기 운동이 일어났다. 바로 ‘나우누리 살리기 운동’이다. 그 중심에는 나우누리 이용자인 임원택(50·상자기사 참조)씨가 있다. 나우누리의 폐업 소식을 들은 그는 지난해 12월8일 ‘나우누리 살리기’(cafe.naver.com/nownurinet)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우누리 서버에 쌓여 있는 PC통신 시절부터의 동호회 게시판 자료 등을 지키려고 모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까지 160명 넘게 모였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이용자들이 나우누리를 직접 인수해 운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본격적인 활동은 임씨가 지난 1월2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나우누리 운영업체인 나우SNT를 상대로 ‘서비스 이용종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시작했다. 그는 서비스 이용종료 금지 가처분 신청서에 “1996년경부터 목록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동호회) 게시판에 고정 칼럼을 비롯한 다수의 글을 왕성하게 게재해왔다. 그러나 이런 저작물은 나우누리의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로 모두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고 썼다. 그는 또 “사용요금을 연체한 적도 없으며 정보통신사업법상 천재지변 등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자가 서비스를 중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우누리가 서비스 종료를 공지한 두 달은 저작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부족한 시간이다”라며 서비스 종료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임씨는 “다른 많은 나우누리 회원들도 출자해서라도 나우누리 서비스가 지속될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인수 의사를 밝혔다. 재판부의 중재로 나우SNT는 현재 게시물 등의 자료를 폐기하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다.
이용자 보호할 법적 근거 희박해

지난 1월31일 문을 닫은 나우누리 누리집의 첫 화면(위)과 2월18일 서비스 종료를 알리는 프리챌 누리집의 첫 화면.

지난 1월31일 문을 닫은 나우누리 누리집의 첫 화면(위)과 2월18일 서비스 종료를 알리는 프리챌 누리집의 첫 화면.

나우누리의 사례처럼 포털 서비스가 문을 닫아 이용자들이 쌓아온 인터넷 게시물 등의 자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등의 대중화로 인터넷 생태계가 바뀌어 철 지난 이른바 ‘1세대 인터넷 사이트’가 경영난으로 줄지어 문을 닫는 일이 잦아진 탓이다. 파란닷컴은 한 때 5대 연예뉴스 매체와 독점 계약을 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수익성이 떨어져 결국 문을 닫았다. 지난해 12월31일 서비스를 중단한 야후코리아의 사례는 더 충격적이었다. 1990년대 말 인터넷에 입문하던 이들이 첫 무료 전자우편 서비스로 많이 이용하던 곳이 야후코리아였다. 야후코리아는 사업을 철수하며 한 달의 기간을 두고 개인정보의 해외 이전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이용자의 전자우편 첨부파일과 블로그 자료 등을 일괄적으로 삭제해 “자료를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원성을 듣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의 폐쇄로 개인 자료를 잃는 이용자를 ‘디지털 수몰민’이라 부를 만하다.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 부랴부랴 짐을 챙기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수몰민과 다를 게 없는 탓이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디지털수몰민을 보호할 만한 근거가 없다.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는 ‘이용 약관’ 등에서 서비스 종료 30~60일 전에 개인 게시물 삭제를 통보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다. 전자우편·블로그 등이 대부분 무료 서비스인 탓에 구체적인 계약 기간 등도 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한두 달 만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디지털 수몰민들의 혼란스러운 ‘짐싸기’ 풍경은 프리챌(freechal.com)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월18일 자정 서비스를 종료하는 프리챌은 2000년대 초반 커뮤니티 모임 사이트로 큰 인기를 끌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이번 서비스 종료를 ‘프리챌 멸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싸이월드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유료화로 새 활로를 찾으려던 프리챌은 2011년 파산을 선언하고 웹하드에 인수됐다. 그러나 여전히 수익을 못 내고 사업을 접게 됐다.

대학에서 학사조교로 근무하고 있는 백창현(33)씨는 얼마 전 프리챌 폐쇄 소식을 듣고 뒤늦게 13년 전에 만든 미술학원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친목 모임 커뮤니티의 내용을 옮기고 있다. 그는 “지금은 돌아가신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라 게시물 하나하나가 회원들 모두에게 의미가 깊다”며 “이 커뮤니티 말고도 중요한 곳이 여러 개 있는데 업체에서 제공하는 백업 프로그램도 없이 한 달 안에 모든 자료를 옮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프리챌에서 가장 큰, 학원강사 배아무개(41)씨의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TOEIC 정보 공유 커뮤니티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2년 동안 운영해온 이 커뮤니티는 회원 수만 3만6천 명이 넘는다. 배씨의 사무실 관계자는 “2년 전 프리챌이 파산할 때 이미 자료를 네이버 카페에 옮겨둬 큰 피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회원들이 공유했던 영어 공부 후기 등 유·무형의 자료가 고스란히 묻히 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게시물을 일일이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다른 곳에 옮기기는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고스란히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대신 옮겨주는 서비스도 등장

프리챌 멸망이 다가오자 커뮤니티 자료를 대신 옮겨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박지수(27)씨는 자신의 대학 동아리 커뮤니티 자료를 정리하며 만든 프로그램으로 지난 2월11일부터 트위터 등 SNS에서 신청을 받아 프리챌의 커뮤니티 게시물·사진 등을 백업해주는 작업을 대행해주고 있다. 게시물 1만 개, 사진·첨부파일 1천 개 이하 기준으로 10만원이고 초과하면 추가 비용을 받는다. 박씨는 “초과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커뮤니티 10곳의 자료를 옮겨줬다”며 “나머지는 여력이 안돼 프로그램의 소스를 인터넷에 공개해 다른 사람들도 이용하도록 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도 프리챌에서는 보이지 않는 짐싸기가 밤낮으로 한창이다. 이제는 부디 내 블로그의 짐을 싸는 일 없기를, 내 인터넷 카페가 철거당하는 일 없기를 기도해야 하는 시대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나우누리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소송 낸 임원택씨
나우누리 이용종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임원택(50·사진)씨는 자신을 “나우누리에 빚을 많이 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농업법인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한때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했다. 정부 탄압이 심하던 1990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준비위원회를 만들며 공무원을 그만뒀다. 그는 “당시 나우누리 경영진의 협조 덕에 정부 탄압을 피해 PC통신에서 회원을 많이 모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뒤에는 나우누리의 저술 지원을 받아 PC통신에 올렸던 글을 묶어 책을 냈고, 그 인세를 모아 한국납세자연맹(koreatax.org)이라는 시민단체도 세웠다. 그는 “이제는 내가 형편이 어려워진 나우누리를 도울 때”라며 “나우누리는 굳이 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고 자신이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가처분 신청을 낸 이유는 뭔가.
이용자들이 나우누리를 계속 운영하기 위해서다. 회사를 정리 중인 나우SNT와 연락이 잘 닿지 않아 불가피하게 가처분 신청을 먼저 냈다. 우선 인터넷 카페에 모인 이용자 가운데 10여 명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나우누리 운영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대부분이 전문가 수준이라 운영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기존 자료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PC통신과 인터넷의 강점을 합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 PC통신 시절 나우누리는 경영진과 이용자가 술자리를 자주 할 정도로 유대 관계가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온갖 정보가 공개되는 포털 사이트와 달리, 사생활이 보호되고 소외된 이들의 신변 보호도 할 수 있는 친밀한 통신문화를 만들고 싶다.
자금력 등 이용자들이 인수할 여력이 있나.
일반적인 기업 매각에서는 잔존가치, 매각가치를 따진다. 그런데 나우누리는 팔기보다는 폐업을 하겠다고 먼저 선언했기 때문에 큰돈 없이도 충분히 인수할 수 있다. 나우SNT 쪽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수하면 이용자들의 공동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고 현재 직원들도 고용을 승계할 거다. 수익이 나면 이용자에게 모두 돌리는 식으로 운영할 것이다. 국민주 기업 형태라고 보면 된다. 기존 언론에서 못 쓰는 기사를 올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앞으로 남은 법적 절차로는 뭐가 있나.
3월20일에 2차 변론이 잡혀 있다. 재판부에서는 가능하면 그 전에 당사자끼리 인수 협상을 끝마치라고 했다. 그동안 사회적 영향력을 끼쳐온 나우누리는 사실상 ‘공공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나우누리는 고향 같은 존재다. 모두에게 있어야 하고, 영원히 갈급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나우누리를 꾸려갈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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