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법관, 문제 있으면 ‘날려야’ 한다

한국 사법부는 135명 대법관 후보자 중 1명 청문회 검증에서 낙마했지만
미국은 160차례 중 36차례 걸러져
김병화 대법관 후보 낙마 뒤 지명되는 후보자도 온정적 통과 대신 철저한 검증 필요해
등록 2012-08-15 07:33 수정 2020-05-02 19:26
대법관 후보자는 또 낙마해도 된다. 그러라고 있는 게 인사청문회 제도다. 촛불재판에 개입하고도 대법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 이후로, 누구든 대법관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깨줘야 한다. 대법원 대법정의 대법관 좌석. 연합

대법관 후보자는 또 낙마해도 된다. 그러라고 있는 게 인사청문회 제도다. 촛불재판에 개입하고도 대법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 이후로, 누구든 대법관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깨줘야 한다. 대법원 대법정의 대법관 좌석. 연합

1968년 10월 조진만 대법원장이 65살로 정년 퇴임했다. 1961년 3대 대법원장으로 임명돼 6년 임기를 채우고 연임(4대) 중이었다. 조 대법원장 퇴임을 앞두고 대법원장 임명 제청을 위한 법관추천회의에서는 민복기 전 법무부 장관을 5대 대법원장으로 제청하기로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10월10일 국회에 임명 동의를 요청했다. 국회는 같은 달 15일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닉슨, 세번이나 대법관 후보 지명으로 타격

같은 해 미국에서도 우리의 대법원장 격인 연방대법원장이 새로 지명됐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10월 대법원장에 임명한 얼 워런이 77살 고령과 건강 문제를 이유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8년 6월 자신의 친구이자 정치적 고문인 대법관 에이브 포타스를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진보 성향의 포타스는 앞서 1965년 8월 존슨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다. 1968년은 대선이 있는 해였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포타스는 1968년 7월 상원 인사청문회를 거쳤지만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보수적인 남부지역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그해 10월 스스로 대법원장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포타스는 이듬해 5월 ‘2만달러 수표’ 스캔들로 대법관직마저 사임하게 된다.

1968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은 1969년 5월 보수 성향의 워런 버거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했고, 상원은 20여 일 뒤 이를 인준했다. 닉슨은 그해 8월 포타스의 빈자리에 연방항소법원 판사인 클레멘트 헤인스워스 주니어를 지명했지만 간단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증 과정에서 헤인스워스가 연루된 윤리적 추문이 드러났다. 재정적 이해관계가 얽힌 재판에 참여했으며, 민권 관련 과거 판결에서는 노동과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의심스런 시각이 확인됐다. 그해 11월 상원은 표결에 들어가 찬성 45표, 반대 55표로 인준을 부결시켰다.

당혹한 닉슨은 1970년 1월 연방항소법원 판사인 해럴드 카스웰을 다시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카스웰 역시 법정과 판결에서 흑인과 가난한 사람 등에게 보인 적대적 태도가 문제가 됐다. 대법관을 맡을 만한 능력이 없다는 불신도 따라붙었다. 석 달 뒤 상원은 카스웰마저 45 대 51로 연거푸 인준을 거부했다. 닉슨은 해리 블랙먼을 다시 지명했고, 상원은 인사청문 등을 거쳐 1970년 5월 인준 투표에 참여한 94명 전원 찬성으로 닉슨의 선택에 동의했다. 포타스가 물러난 지 1년 만이다. 세 번씩이나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해야 했던 닉슨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문제가 있다면 대법원장 후보자든 대법관 후보자든 ‘낙마’하는 게 정상이다. 미국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얘기다. 우리도 대법원장 내정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적이 한 차례 있다. 1987년 민주화항쟁 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압력이 커지던 1988년 6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정기승 대법원판사(대법관)를 새 대법원장(10대)으로 내정하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냈다. ‘새로운 대법원 구성’을 요구하며 법관들이 들고 일어선 ‘2차 사법파동’의 여파로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났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정기승 내정자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시국사건에 간여하는 등 사법부 신뢰 회복에 적절치 않은 인물이라는 의견을 밝혔고, 변호사와 사법연수원생 수백 명도 임명동의안 철회를 요구했다. 여소야대였던 국회는 정기승 내정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

‘사법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균형

저축은행 브로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이 드러난 김병화(57·전 인천지검장)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7월26일 사퇴한 뒤 후임자 선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형식은 자진 사퇴였지만 사실상 정치권과 언론의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밀려났다. 정기승 대법원장 내정자 낙마 뒤 무려 24년 만의 일이다. 언론들은 ‘대법관 후보 사상 첫 낙마’라는 제목을 뽑았다. ‘위장전입 대법관’을 줄줄이 배출해온 우리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1948년 8월 사법부가 구성된 이후로 이제까지 모두 135명의 대법관이 임명됐다. 김병화 후보자는 2000년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뒤 첫 낙마자다. 2000년 이전에는 낙마자가 없었다. 135명이 임명되는 동안 단 1명만이 걸러졌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Supreme Court Nominations Not Confirmed, 1789~2007’ ‘Supreme Court Appointment Process’)를 보면, 미국은 1789년 이후로 지금까지 160차례(동일인 복수지명 포함)의 대법관·대법원장 지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36차례(22.5%) 인준이 거부됐다. 이렇게 검증 과정 등에서 걸러진 후보자는 31명에 달한다. 상원 전체 표결로 부결된 것이 11차례, 표결 전에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한 것이 11차례였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대법원장·대법관 임기가 없는 종신제를 택하고 있다. 대법관이 사망하거나 탄핵되거나 스스로 물러나지만 않는다면 길게는 수십 년을 대법관으로 있을 수 있다. 현재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6년 임명된 앤터닌 스캘리아(76)와 1988년 임명된 앤서니 케네디(76)가 각각 26년, 24년째 대법관을 맡고 있다. 종신직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9명의 성향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균형 혹은 불균형이 상당 기간 지속되기 마련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한 뒤 상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데, 일반적으로 민주당 대통령은 진보 성향 대법원장·대법관을, 공화당 대통령은 보수 성향인 이들을 지명한다. 때로는 임명권자의 기대를 저버리며 보수에서 진보로, 혹은 그 반대로 ‘배신’을 하는 이도 나온다. 그렇더라도 새로 임명되는 대법관 1명에 따라 미국 사회 주요 의제의 향방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상원에서는 상대당 지명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대응한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Supreme Court Appointment Process’)는 상원의 이런 태도를 ‘사법부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분석한다. “법리 판단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해당 지명자로 인해 연방대법원의 이데올로기적 밸런스에 끼칠 영향”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가장 뚜렷한 예가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있었다. 1987년 7월 레이건은 루이스 파월 대법관 후임으로 보수주의자인 로버트 보크를 지명했다. 파월은 진보와 보수가 4 대 4로 팽팽히 나뉜 연방대법원에서 중도, 즉 ‘스윙보터’(Swing Voter) 구실을 해왔다. 보크가 인준되면 연방대법원은 보수 쪽으로 확실히 기울 가능성이 컸다. 상원은 그의 보수성을 들어 그해 10월 42 대 58로 인준을 부결시켰다. 레이건은 보크가 낙마한 뒤 다시 더글러스 긴즈버그를 지명했지만, 그가 학생들과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사실이 일주일여 만에 드러났다. 긴즈버그는 인사청문회를 거치기도 전에 자진 사퇴했다. 결국 세 번째로 지명돼 인준을 통과한 앤서니 케네디는 때로는 진보, 때로는 보수의 태도를 견지하는 스윙보터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 구성 다양화 위해 진보, 여성 필요

확실한 양당제 정치 구도, 최고법관 종신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의 정치·사법 상황을 한국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다. 자기들이 맡고 싶은 사건만 1년에 80~90건 정도 처리하는 연방대법원과, 한 해 3만6천 건(2011년 )이 넘는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되는 우리는 다르다. ‘철저한 검증’보다 ‘대법관 공백 아우성’이 더 크게 들리는 이유다.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날려야’ 한다. 인재풀의 한계를 말하고 ‘하찮은 하자’보다는 사건을 빠르게 처리하는 법적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미국에서 대법관을 저스티스(Justice)로 부르는 데 견주면 궤변에 가깝다.

김병화 후보자가 낙마하자, 김 후보자 못지않게 문제가 많았던 김창석·김신·고영한 대법관 후보자는 비교적 편안하게 대법관 자리를 꿰차게 됐다. 이전 대법관 후보자 검증과 달리 ‘과거 판결 분석’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김창석·고영한 대법관은 재벌 편향 판결이, 김신 대법관은 종교 편향성이 물의를 일으켰다.

대법원은 김병화 후보자의 낙마로 공석인 대법관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했다고 8월9일 밝혔다. 추천위 구성이 일부 바뀌기는 했지만, 권재진 법무부 장관 등 김 후보자를 추천했던 당연직·비당연직 추천위원 상당수가 추천위에 다시 포함됐다. 대법원은 검증을 더욱 충실하게 하려고 후보자 천거 기간을 종전 일주일 정도에서 2주로 늘렸다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천위 쪽에 “충분한 검증을 거친 후에 추천위원회 회의를 개최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검찰 몫’이던 김병화 후보자의 뒤를 이어 또다시 현직 검찰이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사법부 안팎의 중론이다. 진보 성향 대법관 5명을 이르던 ‘독수리 5형제’가 모두 퇴임한 뒤, 보수 일색으로 변한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서라도 재야의 진보 인사나 여성에게 대법관 자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Speed of Presidential and Senate Actions on Supreme Court Nominations, 1900~2010’)를 보면, 대법관 지명에서 상원 인준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1.5일(1981~2009)이다. 석 달 정도 충분히 시간을 갖는다는 얘기다. 미국은 우리처럼 최고 법관 4~5명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로지 후보자 1명을 두고 과거 판결과 가족 사항, 자산, 채무, 세금까지 탈탈 털어낸다. 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된다.

잘 뽑기 위한 짧은 공백은 괜찮다

우리 정치권에는 ‘한 번 낙마시켰으니 두 번째는 적당히 하자’는 온정주의가 있는 듯하다. 같은 자리에 지명된 고위직 후보자가 연달아 낙마한 경우는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에 국무총리 후보로 올랐던 장상·장대환씨 정도밖에 없다. 대법관후보추천위 추천을 받아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한 새 후보자에게 또다시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가 있다면 계속 날려야 한다는, 그런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헌법재판관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는 9월에 재판관 4명이 퇴임한다. 1년 넘게 공석인 재판관 한 자리까지 포함하면 재판관 후보자 5명에 대한 검증을 한꺼번에 진행해야 한다. 전체 재판관 9명의 과반이 바뀌는 결정적 시기다.

‘대법관·재판관 공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짧은 공백 기간이 두려워 얼렁뚱땅 임명된 이들이 맡게 되는 사건이 앞으로 몇 십 년간 한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임기 6년에 견주면 검증 기간 몇 달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