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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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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과 물길이 사이좋은 길-⑦ 내변산길(전북 부안)

평지와 오르막으로 밀고 당기고, 빽빽한 숲이 지루해지면 호수와 폭포가 나타나네… 전북 부안 내변산길
등록 2011-08-24 07:20 수정 2020-05-02 19:26
관음봉에서 내소사로 내려오는 길 어디쯤. 내변산은 끊임없이 출렁이는 산이다. 비가 내려 비옷을 꺼내 입었다. 한겨레21 정용일

관음봉에서 내소사로 내려오는 길 어디쯤. 내변산은 끊임없이 출렁이는 산이다. 비가 내려 비옷을 꺼내 입었다. 한겨레21 정용일

내변산에 파도가 쳤다. 물은 급하게 쏟아졌고 길은 사라졌다. 길을 통째로 막은 ‘입산 금지’ 간판을 건너뛰어 올라간 산길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사진 몇 장 찍고 내려와야 했다. 8월9일 전북 부안은 폭우로 물에 잠겼다. 내변산은 산길, 물길을 가리지 않고 물을 토해냈다.

일주일 뒤 서울에는 비가 내렸다. 내변산을 다시 찾았다. 해가 반가웠다.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내소사로 내려가는 코스를 잡았다. 직소폭포를 거쳐 재백이고개, 관음봉을 지나야 한다. 거리는 6.2km 정도. 3시간 코스다. 요즘 운동 삼아 스포츠센터에서 트레드밀을 열심히 한다. 1분 걷고 1분 뛰고 1분 걷고, 경사를 높여 2분을 또 걷는다. 이걸 10번 정도 반복한다. 심박수가 오르내리고 몸이 데워지면 땀이 난다. 내변산길이 그랬다. 심박수가 올라갈라치면 기분 좋은 평지가 나타났다. 땀이 나면 호수와 폭포가 들어오고, 바다가 들이닥친다. “이런 산도 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30여m 직소폭포의 장쾌한 울림

길은 평지로 시작한다. 지난번 비로 길이 여기저기 파였다. 잔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뿌리째 뽑힌 나무도 보였다. 잘 정돈된 탐방길보다 오히려 운치가 있었다. 좀 걷자니 꽝꽝나무라는 재밌는 이름의 나무가 보인다. 불에 넣고 태우면 꽝꽝 소리가 나서 꽝꽝나무란다. 천연기념물 124호인데 변산에 군락지가 있다. 직소폭포로 가는 길에 흐르고 꺾이는 계곡이 일품인 봉래구곡이 있다. 한국전쟁 때 전북 순창과 임실을 가르는 회문산에서 군경의 토벌작전에 밀려난 빨치산들이 이곳 내변산 봉래구곡까지 왔다. 빨치산 수백 명과 군경 수십 명이 봉래구곡에서 숨졌다.

산행에는 부안군청 송병조 대외협력팀장이 함께했다. “혼자 걸으면 재미없죠잉.” 눈을 찡긋한다. 그래도 내변산은 보는 재미가 많다. 산중 호수가 떡하니 나타났다. 직소보다. 1995년 부안댐이 생기면서 물이 찼다. 물가를 따라 나무로 만든 탐방로가 이어진다. 비로 불어난 물이 등산화 바로 아래까지 찰랑거린다. “캐나다 어느 산속 호수 같네요.” 가보지도 못한 캐나다 얘기를 꺼낼 정도로 이국적이다. 지금 생각하니 오스트리아로 바꿔도 되겠다.

직소폭포. 한겨레21 정용일

직소폭포. 한겨레21 정용일

갑자기 우릉우릉 소리가 들리더니 변산 사람들이 “꼭 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직소폭포가 나타났다. 변산 음식점 어디를 가나 직소폭포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30여m의 장쾌한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이 시원하다. 역시나 지난번 비 때문에 수량이 늘었다. 마른 날이 이어지면 이런 장면을 보기 어렵다. 폭포 아래쪽에 선녀탕이 있다. 왜 선녀들은 계곡을 돌며 옷을 벗고 선녀탕이라는 이름을 여기저기 남겨놓았을까. 야릇한 생각을 하는데 마침 송 팀장이 들고 있던 MP3 플레이어에서 아바의 이 흘러나왔다.

가파른 길을 오르면 직소폭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아래에서 올려보고 눈높이에 맞춰보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맛이 각별하다. 탐방지원센터에서 2.4km를 걸었고, 내소사까지는 3.4km가 남았다.

폭포를 지나자 또다시 평탄한 길이 나온다. 산속이니 곧 끝나겠지 했는데, 순한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걷기가 편하다. 나무가 우거져 햇볕도 잘 들지 않는다. 분위기가 끝내준다. 게다가 가는 길 왼쪽으로 계곡물이 따라간다. 내변산길은 산길이 물길인 셈이다. 한 아이가 뛰어서 나를 앞질렀다. 계속 뛰어가더니 숲길 끝으로 사라졌다. 조금 걷자니 아이가 물가에서 땀을 식히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 내소사에 산단다. 내변산이 동네 뒷산인 셈이다. 좋겠다. 탐방지원센터로 오는 길에 식사를 했던 초원가든 주인이 챙겨준 물병을 꺼냈다. 경남 밀양정수장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 만든 케이워터다. 맛이 밍밍했다. 송 팀장은 그새 물을 다 마시고 계곡물을 담는다. “이거 마셔도 돼요잉. 깨끗해여잉.” 서울 사람 티를 내는지 수돗물도, 계곡물도 선뜻 입이 가지 않았지만 계곡물은 차고 맑았다.

“코끼리도 다닐 수 있는 길이구먼”

30여 분간 이어지던 순한 숲길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힘 좀 써서 걸어야 한다. 해발 160m 재백이고개를 지나면서 곰소만이 보인다. 곰소염전으로 유명한 바로 그 곰소다. 재백이에서 관음봉 가는 길은 난코스다. “아이고 죽겠네잉” 하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린다. 트레드밀이 주는 인공적인 느낌 없이 산이 출렁인다. 건너편으로 바위 절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곡괭이로 찍어 팬 듯한 광경이 여기저기 펼쳐진다. 바람이 우 하는 소리를 내며 쓸고 지나간다. 바람에서 곰소염전의 짠맛이 느껴지나 했더니 흐르는 땀이다. 더 올라가니 너른 바위중턱이 나온다. 곰소만이 더 크고 넓게 보인다. 곰소만을 사이에 두고 멀리 전북 고창 선운산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산이 줄줄이 달려온다. 산들은 곰소만에 발을 뻗고 허리를 풀었다. 힘이 달린 산은 바다에 닿지 못했고, 힘있는 것들은 갯벌에 코를 박았다. 겹쳐서 내달린 산들은 앞쪽은 진묵, 뒤쪽은 담묵이었다. 변산은 산도 좋고 바다도 좋다더니 정말이었다.

관음봉삼거리에 이르렀다. 해발 370m. 관음봉으로 가는데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직소보가 한 뼘 보인다. 정말로 오스트리아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소나기 같았지만 지난번 비가 떠올랐다. 서울 사람은 산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가던 발길을 돌려 내소사로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멈췄고 후회가 됐지만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합리화가 필요했다. “이건 걷기 좋은 길 소개 기사지 등산 기사는 아니니까.”

관음봉삼거리와 직소폭포 가는 이정표. 한겨레21 정용일

관음봉삼거리와 직소폭포 가는 이정표. 한겨레21 정용일

관음봉 못 가고 내려오는데 빨간 배낭을 멘 20대 여성이 헉헉거리며 땀을 식히고 있다. 손에는 한입 깨물어 먹은 복숭아가 들렸다. “폭포 다 왔나요?” “아뇨. 1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요.” “휴….” “여기서부터는 갈 만해요.” “네….” 내소사에서 올라오는 길은 무지 가파르다. 거리는 1.3km밖에 되지 않는데 100m 달리기를 전속으로 13번 한 느낌을 준다. 내소사 전나무숲길에서 시작하면 초반에 힘을 빼게 된다. 같은 길도 시작점이 중요하다. 내소사 대신 근처에 있는 원암통제소에서 시작하면 훨씬 편하다. 원암통제소 코스는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김응룡 감독이 자주 다녔다고 한다. 이런 대화를 들었다. “김응룡이가 다니던 길이여. 완만해.” “코끼리? 코끼리가 다니던 길이네. 코끼리도 다닐 수 있는 길이구먼.” 덩치 큰 김 감독의 별명이 코끼리였다. 그만큼 험하지 않다는 얘기다.

빨간 배낭 아가씨가 결국 포기하고 내려온다. “아깝네요. 힘든 길은 다 끝났는데.” “갑자기 비가 오고 그래서요.” 내소사에 닿았다. 백제 무왕 34년(633)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대웅보전의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꽃문살을 구경하고 나오면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400m 정도 이어진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비옷을 입고 걸었던 길이다. 찌를 듯이 솟은 전나무가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침엽수의 맑은 향이 살아났다. 내변산길에 펼쳐지는 수종은 다양하다. 걷다 보면 이름표가 걸려 있다. 산벚나무, 작살나무, 팥배나무, 쇠물푸레, 다릅나무, 검양옻나무, 까치박달, 개벚나무, 쥐똥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노간주나무, 당단풍나무, 노린재나무, 덜꿩나무, 굴피나무, 갈참나무….

해변의 변산 마실길도 강추

요즘 부안군에서는 해안가를 따라 도는 변산 마실길을 강력 추천한다. 해안초소가 있던 길을 따라 4구간 8코스, 200리길이다. 일부 코스를 걸어봤는데 “역시 변산”이라는 말이 나온다. 썰물 때는 갯벌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발밑에 느껴지는 갯벌이 마치 카스테라처럼 폭신하다. 코스 하나를 선택해 설렁설렁 걸어보길 권한다. 적벽강, 수성당, 채석강, 모항, 곰소, 줄포 등을 두루 볼 수 있다. 변산 하면 바지락죽이 유명하다. 백합죽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새만금방조제가 들어선 뒤 백합이 잘 자라지 않는다. 수입한 백합이 많단다. 변산일품(063-582-3388)에서는 맛있는 바지락죽과 함께 주인이 모아놓은 수석도 구경할 수 있다. 곰소천일염으로 만든 젓갈도 빼놓을 수 없다. 곰소젓갈센터에 자리한 곰소만젓갈(063-581-9700)에서는 낙지젓, 가리비젓, 바지락젓, 어리굴젓, 아가미젓, 갈치속젓, 황석어젓, 멍게젓, 창난젓, 명란젓 등을 맛보고 살 수 있다. 주인 이향단씨가 친절하게 맞아준다.

산림조합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부안=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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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길 안내도

내변산길 안내도

■ 코스 및 소요시간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삼거리~내소사 6.2km 3시간

■ 가는 방법
부안버스터미널에서 내변산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버스는 2시간마다 있다. 사자동에서 내리면 된다. 승용차가 편리하지만 내소사로 넘어간 뒤 다시 넘어오는 일이 간단치 않다.

■ 탐방 안내
내변산 탐방지원센터 063-584-7807
부안관광안내소(변산 마실길) 063-580-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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