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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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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을 걸을 자격이 있을까-⑤ 사려니숲길(제주도)

도도함으로 아름다운 생태자원의 보고 제주 사려니숲길…
‘올레 마무리’로 각광받아 탐방객 급증해 훼손 우려 일어
등록 2011-08-10 09:12 수정 2020-05-02 19:26
제주도 한라산 동쪽 경계에 있는 사려니숲길. 길 양쪽으로 삼나무 숲이 빽빽하다. 윤승일 한겨레21 기획위원

제주도 한라산 동쪽 경계에 있는 사려니숲길. 길 양쪽으로 삼나무 숲이 빽빽하다. 윤승일 한겨레21 기획위원

2009년 방송담당 기자를 할 때였다. 그해 유난히 드라마의 제주 현지 촬영이 많았다. 취재가 끝나면 부지런을 떨어 ‘올레’(‘집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말)에 한 걸음을 더했다. 올레가 트렌드였으니까, 새 길이 생길 때마다 완주를 다짐했다. 같은 시기 보존을 위해 일반에 공개되지 않던 숲길 하나가 열렸다. ‘사려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숲길은 올레 다음’이라는 섣부른 판단에 사려니 숲길을 만나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등산용 지팡이도 사용 금지

사려니 숲은 넓고 깊다. ‘산의 안’이라는 뜻의 ‘솔아니’가 변한 말이 ‘사려니’가 됐다는 설도 있지만 난대산림연구소, 한라일보사 등에서 공동으로 펴낸 제주산림문화체험 이라는 책에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또는 ‘신령스러운’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 사려니는 ‘신령스러운 곳’을 의미한다고 돼 있다.

지난 8월3일 사려니숲에는 비가 왔다. 숲은 자연스럽게 안개를 품고 있었다.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 쪽 물찻오름 입구가 바로 사려니숲의 입구다. 원래 사려니숲은 물찻오름 입구에서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 부근까지 15km의 숲길과 물찻오름에서 붉은오름을 가는 10km 숲길을 말한다(표 참조). 사려니라는 이름은 한라산국립공원 동쪽 경계인 성판악 휴게소 동남쪽에 형성된 ‘요존국유림지대’에 위치한 사려니오름의 명칭에서 왔다. 요존국유림은 ‘국토보존, 산림경영, 학술연구, 임업기술개발과 사적· 성지 등 기념물 및 유형문화재의 보호 기타 공익상 국유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 산림’을 가리킨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물찻오름에서 사려니오름까지의 길은 숲 보존을 위해 통제한다. 그 길을 일반인이 걸을 수 있는 때는 1년에 한 번, 5월의 열흘 정도다. 숲을 관통하는 게 아니라면 탐방 2일 전까지 난대산림연구소에 예약해 사려니오름을 서귀포시 방향에서 들를 수 있다. 무작정 해안도로를 걷기 시작하면 만나는 올레에 비해 까다롭다. 까다로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숲길이지만 음식을 사먹거나 해먹을 수 없다. 보존을 위해서다. 등산용 지팡이도 사용이 금지된다. 이 정도면 까다로운 게 아니라 도도하다.

평일인데도 이미 관광객 30여 명이 들머리에서 웅성거린다. 제주도청에서 관계자가 나와 ‘세계 7대 경관’ 투표에 참여해달라며 목청을 높인다. 2009년에는 발걸음이 뜸하던 게, 올레 마니아들 사이에서 “올레의 마무리는 사려니숲길에서”라는 말이 번져 올해에는 주말이면 2천 명이 북적인다. 숲한테는 좋은 일이 아니다. 그 발걸음이 자제되지 않고 숲을 헤집는다면 통제 구간은 더 길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길 들머리의 마뜩잖은 인상은 30분을 채 걷기도 전에 사라졌다. 우선 참꽃나무 숲이 반긴다. 안개를 망토 삼아 너울너울 춤춘다. 강송화(43) 숲해설사의 목소리가 들뜬다. “참꽃에 동백꽃까지 피어 5월이면 환상적” “가을이면 서어나무, 단풍나무 등이 장관” “겨울이면 삼나무 숲에 내리는 눈이 절정” 따위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사계절의 매력을 모두 품고 있다는 이야기다. 극상림 형태가 잘 보존된 물찻오름까지의 길은 5.2km, 그 안에는 때죽나무·단풍나무·서어나무·졸참나무·꽝꽝나무 등이 혼생한다.

물찻오름 정상의 모습. 검은 기운까지 감돌아 신비스럽다. 현재는 보존을 위해 연말까지 통제돼 있다. 윤승일 한겨레21 기획위원

물찻오름 정상의 모습. 검은 기운까지 감돌아 신비스럽다. 현재는 보존을 위해 연말까지 통제돼 있다. 윤승일 한겨레21 기획위원

푸릇한 생명 담아 멋진 천미천

물찻오름에 가까워지자 입구에서 보이던 북적임이 거의 사라졌다. 길을 ‘구경’ 온 사람들은 30분 정도를 걷다가 돌아선다. 2km 정도 지점이다. 거기서 돌아서지 않으면 10km를 완주하거나 시작점까지도 10km를 걷는 셈이다. 지름길은 없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지점이 바로 ‘적색’의 송이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송이’는 송이버섯이 아니다. 바로 ‘스코리아’(Scoria), ‘분석’(噴石)이라고도 하는 화산재, 곧 잘게 부서진 용암 덩어리를 뜻한다. 흑색이나 적색을 띤다. 사람들의 발을 덜 타서인지 내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정도로 입자가 크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건강에 좋다는 말에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현무암을 생각하면 찌를 듯 날카로울 것이라는 짐작에 조심조심 내딛던 발은 금세 자신감이 붙을 정도로 송이에는 거친 부드러움이 있었다. 비스킷을 밟고 선 듯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2km 정도를 걸었지만 무리가 없었다. 눈앞에 나타난 천미천에서 발을 헹궜다. 진흙처럼 달라붙지 않고 물속으로 녹아든다. 천미천은 건천으로,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날은 내린 비로 발도 호강한 셈이다. 천미천은 건천이지만 한라산 정상부 동쪽 사면에서 발원해 중산간 마을에 식수를 대고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경계 삼아 휘돌아 흐르는 제주도에서는 가장 긴 하천이다. 물찻오름까지 네댓 군데 지류가 등장하는데, 그 지류는 거의 말라 있다. 제주의 건천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푸릇한 생명을 담아 멋진 정원으로 변모해 있다. 검은 돌 위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은 숨 돌리고 가라며 발길을 잡는다.

“골프 약속이 있는데, 길을 걷다 보니 좋아서 여기까지 왔네요.”

천미천을 지나 4km 지점쯤 쉼터에서 만난,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40대 후반의 4명은 등산객 차림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 골프 치기는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들어선 길에 욕심내다 보니 완주를 하자고 모의한 모양이다. 골프를 위한 여행이 숲길 여행으로 바뀐 셈이다. (숲길 칭찬은 좋은데, 담배는 피워서는 안 됩니다. 뒤로 감추는 것 다 들켰어요.)

오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인사를 한다. 제주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유를 물었다. 안개를 가득 머금은 사려니숲길의 새벽을 경험한 사람은 그때만 찾는다는 설명이다. 새벽길을 마다하지 않는 애정으로 그들은 숲길 지킴이를 자처하기도 한다. “출근 시간을 피해 새벽에 산악자전거를 거칠게 타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분들을 말리고 신고하는 게 새벽 숲길을 걷는 주민들이에요.” 강송화 해설가까지 3명의 공무원이 숲해설에 관리까지, 이 숲을 다 지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초입에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지만 모두가 10km 코스, 15km 미공개 코스를 무단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숲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산악자전거를 타기 좋은 길이다. 원래는 자전거 출입도 허용됐다. 현빈도 이 길에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드라마 에서다. 그 뒤 자전거가 몰려들었다. 한 달 전부터는 자전거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그 자체로 사려깊은 자연기념관

물찻오름에 다다르니 발을 쉬는 무리가 10여 명 있다. 모두가 물찻오름이 보존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어쩔 수 없다. 송이로 이뤄진 오름은 올라갈수록 무너진다. 그 안의 동식물은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 오름 정상의 분화구에 연중 물이 가득 차 있어 ‘물찻오름’이라고 부른다. 숲이 검다고, 신성한 곳이라고 ‘검은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처럼 매력적인 곳이다. “저기!” 그때 오름 쪽에서 노루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다리가 여물지 않은 어린 녀석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도리어 신기한지 도망가지 않고 다가온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뿔 한쪽은 떨어져나갔다. 끔벅거리며 눈을 맞춘다. 진귀한 경험이다. 물찻오름까지 주로 극상림이 좌우로 펼쳐져 있어 길 안으로 동물이 뛰어드는 경우가 꽤 있다. 노루는 물론 최근에는 멧돼지도 출몰했다. 멧돼지는 제주도가 고향이 아니다. 농장에서 뛰쳐나온 녀석이 이쪽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뛰쳐나온 녀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찻오름 정상의 물에 방생한 금붕어와 거북은 어찌할 것인가. 수백만 년의 시간을 담고 있던 오름의 호수가 몇 년 새 생태계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가 이 숲을 걸을 자격이 있을까.

물찻오름에서 나머지 무리들이 다시 돌아간다. 나머지 길은 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럴까. 발을 옮겼다. 사려니오름이 아닌 붉은오름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부터는 송이의 색깔부터 검었다. 일반 자갈이 섞여 있어 아쉬웠다. 맨발이면 탈이 날 듯했다. 1km 정도를 걸었다. ‘월든’으로 명명된 삼나무 숲이 펼쳐진다. 어둡던 하늘도 환하게 열린다. 그 숲을 걷는 사람들은 말수를 줄였다. 경기도 분당에서 왔다는 딸 둘을 둔 가족도 환한 얼굴과 달리 이심전심, 말을 걸어도 수줍게 웃기만 한다. 그렇게 5km를 걷는 동안 삼나무 숲은 계속된다. 일제 때 들어온 삼나무는 뒤늦게 이 숲에 자리를 잡았고,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녹화사업으로 한라산과 중산간·오름의 주인이 됐다. 일제와 박정희를 성찰하는 자연기념관으로도 사려니숲길은 그 자체로 사려깊은 곳이다. 삼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가 코를 감싼다.

산림조합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제주=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제주도 사려니숲길 안내도

제주도 사려니숲길 안내도




■ 코스 및 소요 시간
비자림로(1112번 도로) 물찻오름에서 출발
물찻오름 구간 왕복 9.4km 2~3시간
붉은오름 입구 편도 10km 3시간
사려니오름 편도 16km 6시간(행사 기간에만 탐방 가능)

행사 기간 외 사려니오름 탐방 안내
난대산림연구소(064-730-7272)에 탐방 2일 전까지 예약한 뒤, 서성로 방면 출입구를 이용해 입장.

■ 가는 방법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시간 28분에 출발하는 번영로선 시외버스를 탄 뒤 물찻오름 입구에서 하차. (붉은오름 쪽 남조로로 나와 20분 간격으로 있는 버스를 이용해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갈 수 있음)
97번 도로(번영로) 이용. 남조로 교차로까지 간 뒤 제주돌문화공원 방면으로 우회전, 교래사거리에 도착하면 다시 우회전해 4.5km 정도 가면 길 왼쪽으로 사려니숲길 주차장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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