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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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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특별법은 무죄다

복제인간의 비애를 그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보며
성매매의 비인간성을 생각하다
등록 2011-03-10 16:08 수정 2020-05-02 19:26

존경하는 재판장님! 현명하신 배심원 여러분!
저는 오늘 피고인 ‘성매매 특별법’을 변론하기 위해 이 법정에 섰습니다. 피고인의 정식 명칭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지만 흔히 ‘성매매 특별법’ 혹은 ‘성매매 단속법’이라고들 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2004년에 만들어진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법 제정 당시에 의도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회의도 많습니다. ‘풍선 효과’ 때문에 한 곳을 단속해도 다른 곳으로 성매매 장소가 이전할 뿐이라고 합니다. 애초부터 성매매를 처벌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성매매란 원래 없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처벌로 다스리려고 시도해봤자 전과자만 양성할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성매매 특별법만큼 억울한 법도 찾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이 생긴 이후에 비로소 성매매를 한 남성이 처벌받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전에도 엄연히 처벌을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 된지 7년이 지났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04년 인천 숭의동 성매매 집결지 풍경.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 된지 7년이 지났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04년 인천 숭의동 성매매 집결지 풍경.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점잖은 이들의 다급한 연락

1961년 11월9일 ‘윤락행위를 방지하여 국민의 풍기 정화와 인권의 존중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윤락행위 등 방지법’은 처음부터 ‘윤락행위를 한 자’와 더불어 ‘그 상대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3만환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라는 가벼운 벌칙을 두었지만 점차 법정형을 높여 2004년에 폐지되기 직전에는 ‘윤락행위의 상대자가 된 자’도 1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해도 된다면, 성매매 특별법이 생기기 훨씬 전인 제 초임 검사 시절에도 퇴폐 이발소에 갔다가 구속된 남자를 본 일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분이 이 글을 본다면 성매매 특별법의 억울함에 십분 공감하시겠지만, 아마 선뜻 나서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성매매 특별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변호사를 하다 보면 가끔 평소 점잖은 분으로 알고 있던 의뢰인이나 아는 사람으로부터 급히 의논할 것이 있으니 만나자는 연락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면서 나가보면 대개 비슷한 사정을 털어놓습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퇴근했더니 아내가 엽서 한 장을 내밀더라는 것이지요. “○○○님께,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할 내용이 있으니 ○월○일 ○시까지 ○○경찰서 형사과로 출석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엽서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솔직히 실제 상황에서 펜의 힘이 이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를 좀처럼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사시나무처럼 떠는 사람들을 보면서 웃음을 참기 어렵습니다. 아마 아내의 손에 그런 엽서가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이분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처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매매 특별법이 생기기 전에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매매는 1947년 ‘공창제도 폐지령’이 공포되고, 1961년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이미 범죄로 취급받아왔던 것입니다. 다만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유례없이 강력한 단속을 했을 따름입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피고인 성매매 특별법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변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를 따져보고 싶습니다. 과연 돈을 주고 성행위를 하는 것은 허용돼야 할까요? 섹스가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성매매가 아주 오래됐다는 이유로 처벌 무용론을 펴기도 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매춘’을 한갓 실정법으로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주장도 근거가 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막기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사회에도 절도와 살인 등의 범죄는 있었습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이런 범죄를 근절하기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도둑질이나 살인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명백히 잘못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성매매 특별법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성을 매매하는 행위가 허용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좌우에서 공격받는 성매매 특별법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돈을 받고 온갖 행위를 하는데, 성매매만 특별 취급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특히 감정노동에 대해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월급을 받고 하루 종일 손님을 상대로 웃음을 보여야 하는 직업이나 돈을 받고 성을 제공하는 행위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라고 하는 것도 이런 입장을 반영한 것입니다. 심지어 결혼마저 일종의 제도화된 성매매라고 봅니다. 그러나 과연 성매매를 감정노동, 혹은 결혼과 동일한 평면에 놓고 볼 수 있을까요?

과거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 이제 노골적인 인신매매나 폭력에 의한 성매매의 강요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성매매 특별법을 비판하는 사람 중에는 실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 중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선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성매매 여성이 ‘완전한 자유의지’로 그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원하는 직업을 갖기 어렵고, 때로는 정말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전적으로 강요된 삶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가를 받고 성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직업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지요.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성매매 종사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성매매를 ‘자발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성매매를 하나의 직업으로 다룰 수 있을까요? 저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같은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하신 배심원 여러분, 성매매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책을 한 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라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성매매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이 성매매 여성도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난 복제인간입니다. 겉모습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우리와 똑같습니다. 다만 10대 후반이 되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장기 기증을 시작해야 합니다.

도구에 불과한 삶의 비애

순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할 장기의 보관자로서 존재 가치를 갖는 그들은 최대한 네 번까지 장기 제거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수술 과정에서 죽는 경우도 있지만, 운 좋게 회복 과정을 거쳐 네 번째 수술 단계까지 가더라도 그 이후의 삶은 없습니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됩니다.

“네 번째 기증이 끝나면 기술적으로는 목숨이 다했다 해도 의식이 어떤 식으로든 남아서 더 많은 기증이 일어난다는 것을 본인이 안다. 그 경계 너머에서 여러 차례 기증이 이루어진다는 것, 더 이상 회복센터도 간병사도 친구도 없다는 것, 그들이 자기 몸에서 손을 뗄 때까지 기증이 연달아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은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헤일셤’이라는 학교에서 친절한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받으며 즐겁게 성장합니다. 서로 연애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네 번째 장기이식을 앞둔 남녀 주인공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커플은 수술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집행 연기’를 간청하지만 차갑게 거절당합니다. 그런 제도는 애초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애초에 왜 학교를 만들어서 이들이 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일까요? 헤일셤을 운영했던 교사들은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적어도 너희가 우리의 보호 아래 있는 동안에는 너희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게 우리는 신경을 썼다. …우린 너희를 위해 적어도 그런 많은 일을 했단다. 하지만 ‘집행 연기’에 대한 꿈을 허용하는 건 아무리 우리라도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어. …하지만 나는, 너희의 안전을 보장해준 데 대해 우리에게 고마움을 느꼈으면 한다. 이제 너희 둘을 보렴! 너희는 멋진 추억이 있고 교육을 받았고 교양이 있어. 그 이상의 것을 해주지 못하는 건 유감이다.”

그렇습니다. 도구에 불과한 삶,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인생은 어떤 경우에도 ‘그 이상의 것’을 받지 못합니다.

성매매 합법화가 ‘성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04년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여성종사자연맹의 생존권 촉구 집회가 열렸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성매매 합법화가 ‘성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04년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여성종사자연맹의 생존권 촉구 집회가 열렸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성매매 여성을 장기이식을 위해 키우는 복제인간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폭력 문제에 관한 토론회에 가보면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논객’들이, 성매매를 심하게 단속하기 때문에 젊은 남자들이 성욕을 해소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성폭력 사건이 증가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잠재적 성폭력 범죄자의 성욕을 해소해주기 위해 성매매 여성이 필요하다는 논리, 이보다 더 인간을 수단이나 도구로 보는 시각이 있을까요?

모든 일에는 한도가 있다

그래서 저는 돈을 주고 성을 매수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성매매 여성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쉬워진다는 것, 처벌한다고 해서 쉽게 근절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의 삶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세상에 ‘자발적인’ 성매매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저는 성매매 특별법 폐지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는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는 ‘허그방’이라는 것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3만원을 내면 포옹을 해준다고 합니다. 1만원을 더 내면 키스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정말 어딘가 선을 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정말 돈을 내고 자신을 고르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행위에 ‘자발적인’ 경우와 ‘비자발적인’ 경우가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명하신 배심원 여러분! 우리에게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성매매는 범죄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피고인 성매매 특별법에 무죄를 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금태섭 변호사

*그동안 ‘금태섭의 책 속에 이런 법이?’를 애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금 변호사는 머잖아 새로운 주제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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