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저자 일문일침

체벌은 필요악? 동성애는 불편해?


<불편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두식 교수와 독자 6명의 인권 방담…
지금 고민하는 문제들이 10년 뒤에는 보편적 상식이 되길

제825호
2010.08.25
등록 : 2010-08-25 22:34 수정 : 2010-11-16 15:10
8월18일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대강당에서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한겨레21〉이 함께하는 ‘이 분야 최고의 책 저자 강연’이 열렸다. 1회 강연자인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이날 인권부터 보수와 진보 논쟁까지 폭넓은 주제를 아울렀다.

<한겨레21>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함께 3주마다 한 번씩 ‘이 분야 최고의 책 저자 강연’을 진행한다. 독자들의 관심과 호평을 받은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독자와 직접 만나 대화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첫 강연에는 8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로 인권을 이야기한 <불편해도 괜찮아>(창비 펴냄)의 김두식 경북대 교수를 초대했다._편집자

8월18일 오후 6시30분, 서울의 하늘은 갑자기 어두워졌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택시 문을 열고 황급하게 타는데 세찬 비가 내처 따라 들어왔다. 김두식 교수의 강연은 이날 저녁 7시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대강당에서 열렸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어 폭풍 같은 비를 뚫고 한자리에 모였을까.

강연은 두 편의 영화로 시작했다. <우익청년 윤성호> <두근두근 시국선언>. 두 편 모두 윤성호 감독의 영화다. 온 국민이 우익이고 자신도 한심한 우익 지식인이라고 자조하는 감독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웃음을 유발하지만 넓은 담론을 끌어낼 수 있는 영화 속 감독의 목소리처럼, 김두식 교수도 강연에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 주류와 소수자 등 양 끝을 아우르는 주제를 포괄했다. 자신의 책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꾸준히 논의된 주류의 횡포, 소수자 담론, 인권 문제 등을 책에서와 같은 ‘입말’로 풀어냈다. 그는 무거운 주제를 굳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변하게 할 수 있다.”

강연을 마치고도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미리 신청한 6명의 독자와 ‘인터뷰 뒤풀이’를 가졌다. 간담회라 이름 붙인 독자 인터뷰였는데, 때때로 고민 상담의 시간이었고 간혹은 김두식 교수가 인터뷰어가 됐고 얼마간은 작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면에 옮겨 담는다.

 


체벌, 사라지면 논의 대상도 안 될 텐데

성인숙(42·교사) 최근 출간한 <불편해도 괜찮아>를 보면 ‘찌질이 부모’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찌질이 교사’다. 김 교수가 딸과의 관계를 계속 고민하듯 나도 학교에서 내내 아이들과의 관계를 고민하는데, 부녀 관계는 책에 나오는 것보다 많이 회복됐나.

김두식 많이 좋아졌다. 밝고 복원력이 있는 아이다. 요새 아이들은 많이들 그렇지 않나.

성인숙 모두 그런 건 아니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지와 신뢰가 있는 경우에만 자신의 자리에 잘 돌아온다. 교사다 보니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으면서 교육 문제에 가장 집중했다. 학교에서 여러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규율이나 체벌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두식 규율은 있어야 하되 어떤 범위 안에서 만들어져야 하는지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학교의 규율은 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들이 해야 하는 불필요한 업무를 줄여서 규율을 좀더 부드럽게 하고 체벌 없는 학교를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최보라(24·가명·초등학교 교사 발령 대기 중) 발령을 기다리기 전에 기간제 교사로 1년을 일했는데,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의 교실은 아주 민주적이다. 규율을 정할 때도 아이들과 의논한다. 그러나 여전히 교실에서 왕은 교사다. 규율에 대한 의사결정권에서도 최종 권한은 교사에게 있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교사다. 교사가 원하는 대로 교실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교사의 권한이 여전히 남용되는 상황이니 체벌 금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체벌 없이는 힘들더라. 필요악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체 방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두식 교육이 통제와 규율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지만 칭찬으로 아이들을 발전시킬 수도 있지 않나. 예컨대 미국 사회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달라서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혁대로 아이를 때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체벌 없이도 교육이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너무 당연한 나라였다. 이 때문에 아이들 머릿속에도, 선생님 머릿속에도 체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채워져 있는 것 같다. 사회 전체가 폭력에 지배되는, 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문제다. 체벌이라는 규칙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나면 더는 논의의 대상조차 안 될 것이다. 아이들이 처음 사회를 배우는 울타리인 학교에서부터 ‘시작해본다’는 생각으로 목표를 가지고 체벌을 없애가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이신애(20대 중반·‘백수’)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인권을 읽는 시도를 했다. 그래서 영화와 관련한 질문을 해보겠다. 영화를 보면서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추격자>처럼 개인이 공권력을 믿지 못하고 사적인 복수를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가 현실보다 앞서가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영화를 따라 사적인 복수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두식 질문 그대로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긴 하다. 물론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권력이 바로바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공권력 부재의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과잉의 나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이런 공익광고가 있었다. ‘조심조심 코리아.’ 공사 현장에서 예쁜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노동자가 나온다. 광고를 보면서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현장의 시스템 문제지 개인의 문제나 책임이 아니다. 그런데 이 광고는 어떤가. 사고나 불의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이건 ‘사익광고’지 ‘공익광고’가 아니다. 국가가 자꾸 ‘네 문제는 네가 책임져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래,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과장된 위험에, 과장되게 반응하는 것 아닐까.

이신애 요즘은 공부를 잘해야만 행복하다는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이들이 오히려 더 행복해하는 것 같다.

김두식 공부가 절대적 가치라는 데 모두 동의해버리면 사회에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행복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요즘 중학교 교사들이 외고·과학고 등 특목고는 ‘전기고’, 일반고는 ‘후기고’라고 말하던데, 왜 정상적인 전형 과정을 거치는 일반고를 후기고라 표현하며 아이들이 열패감에 빠지게 하는지 모르겠다. 공부가 행복의 기준이 안 된다는 담론을 펼 수 있는 수준의 사회인데, 후기고 운운하는 것은 차별을 만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강연회를 마치고 독자들과 김두식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괜찮은 불편함과 괜찮지 않은 불편함

조소인(31·법학전문대학원 재학) 강연에서 소수자 담론을 주류가 가져가려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다고 했는데,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과학고와 공대를 졸업하고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공부 중이다. 일종의 주류다. 살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사람은 가치관을 떠나 자기가 놓인 환경에 따라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 같더라. 예를 들어 내 남편은 노동자를 생각할 때 관리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한다. 악의는 없다. 자신이 놓인 환경이 자연스레 그의 행동을 결정하는 거다. 김 교수도 우리 사회의 주류에 속해 살아왔는데 소수자의 인권을 고민하는 <불편해도 괜찮아> 같은 책을 내는 데는 어떤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김두식 예전에 이런 기도를 했다. 내가 사법고시에 붙으면 이 시험에 붙지 않은 다른 친구들만큼만 누리고 살겠다고. 내가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데는 첫 번째로 이런 기독교적인 배경이 있다. 내가 더 누릴 때마다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결혼이다. 내 배우자는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장애아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더불어 집안에 물건이 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사진을 한창 찍을 때는 아내 몰래 카메라를 사서 감춰놓고 쓰기도 했다. (웃음) 아내는 내가 주류 사회식 사고에 치우치지 않도록 견제장치가 돼준다.

차은정(20·대학생)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두식 이성애자인 나는 동성애를 그린 영화에 무의식중에 불편함을 느꼈다. 이런 불편함은 괜찮지 않다. 그런데 벗은 남자들이 잔뜩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하는 <300> 같은 영화를 보고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역시 괜찮지 않다. 책의 모든 장이 ‘불편해도 괜찮음’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불편함과 괜찮음 사이의 고민을 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고 그동안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찾는 독자도 있을 테고, 인권 문제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 책 자체가 불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한 10년쯤 뒤에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런 책이 옛날에는 인권을 얘기하며 팔리기도 했다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얘기하는 게 보편적 상식에 불과해지도록, 그런 식으로 인권이 한 걸음씩 발전하면 좋겠다. 10년 뒤에도 이 책이 잘 팔리고 있다면 그건 너무도 슬픈 이야기일 것 같다.

 

보수와 진보가 섞여들어 인권 고민하자

박연주(28·교사) 상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불편해도 괜찮아> 같은 책이 팔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임을 입증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판단컨대 보수 진영은 이런 상식을 숨기려 하고 진보 진영은 보수가 숨기려는 내용을 자꾸만 폭로하려 한다. 이러다 보니 양쪽 진영이 항상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이런 분위기를 해결할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김두식 보수와 진보가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서로의 가치관을 훼손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작은 만남에서 비롯해 서로 마음을 열고 인간적으로 이야기하고 각자의 생각에 동의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오늘 이 비를 뚫고 모인 이들을 봐라.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강연을 듣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래서 책의 맨 앞 장에 교육 문제를 내걸었다. 보수든 진보든 주류든 아니든 누구나 관심 있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공동의 관심 영역을 통해 양 진영이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오면서 함께 인권을 논의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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