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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국가의 살인

‘가난뱅이 타자’ 사냥하는 경찰 잔혹사


부자의 재산·권력 보호가 근대적 경찰제도의 존재 이유… 가혹행위 하고도 면피할 권리까지 누려

제786호
등록 : 2009-11-18 10:37 수정 : 2009-11-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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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14일, 날씨가 추워지던 캐나다 동부의 밴쿠버 국제공항. 승객으로 붐비는 이곳에서 한 폴란드 출신의 이주민이 안절부절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입국장을 배회한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로버트 지에칸스키라는 이름의 공사장 노동자는 어머니가 사는 캐나다로 운 좋게 이민 비자를 받아 이민을 왔는데, 어머니가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가 자신을 찾지 못해 돌아가는 바람에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캐나다에서의 첫 시간을 보낸다.

2007년 10월14일 캐나다 밴쿠버공항 입국장에서 전자충격기에 맞아 쓰러진 폴란드계 이민자 로버트 지에칸스키를 공항경찰들이 붙잡고 있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 화면. 현장 목격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지에칸스키에게 경찰이 다짜고짜 전자충격기를 발사했다고 증언했다(왼쪽). 지난 10월14일 지에칸스키의 2주기 추모미사를 앞두고 밴쿠버 시내 성 로자리 대성당에서 어머니 소피아 치소프스키가 영정 앞에 화분을 놓고 있다. (왼쪽부터) REUTERS·REUTERS/ ANDY CLARK

공항서 진압봉 맞고 숨진 지에칸스키

만인이 영어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여기는 영어권 나라답게 공항에는 통역 서비스조차 없어, 말이 안 통하는 직원들에게 어머니의 소재를 확인해달라고 아무리 애걸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혹시 어머니가 애초의 약속대로 수하물이 나오는 곳에서 기다리지 않나 싶어, 입국장을 벗어나 다시 수하물이 나오는 벨트 쪽으로 가려던 지에칸스키는 열리지 않는 유리문을 힘으로 열어보려고 노력해본다. 바로 그 순간, 그 ‘수상한 거동’을 거의 1시간 동안 지켜봐온 공항경찰은 당장 달려들어 저항할 생각도 없는 그를 제압해 진압봉으로 때리고 전자충격기(테이저건)로 얼굴을 쏜다. 어머니도 보지 못하고 의사의 진단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지에칸스키는 약 15분 뒤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캐나다에서의 첫 시간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된 셈이다.

누가 봐도 ‘공권력에 의한 살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이 사건은 과연 어떻게 처리됐는가? 독자들은 아마도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지에칸스키를 곡직불문해 죽여버린 경찰들이 적어도 사법 처리라도 됐을 것이라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오판이다. 용산 참사 같은 초강경 진압에 따른 대형 참극을 처리할 때 경찰에게는 아무런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반면 점거농성 가담자 등 사회적 의미의 ‘피해자’들을 가혹하게 형사처벌하는 권력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에칸스키 사건’은 폴란드에서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캐나다에서는 경찰당국도 사법부도 대체로 살인 경찰의 행동을 “약간 과잉된,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필요했던 진압”으로 본 것이다. 살인 경찰관들은 경징계를 받았고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지금도 계속 근무하고 있으며 형사처벌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는 캐나다 당국을 소리 높여 규탄했지만 캐나다 안에서 지금쯤 이 사건은 벌써 잊히고 있을 것이다.

‘파업 노동자 살해’ 책임 추궁 없어


경찰이 명백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정부도 사법당국도 언론도 이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자면 근대적 경찰제도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진화돼왔는지 한번 고찰해봐야 할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경찰’의 정의는 “공공의 안녕질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공권력”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파리나 런던 같은 서구 자본주의의 중심지에서 제복을 입고 중앙집권적 통제를 받는 초기의 근대적 경찰조직들이 그 윤곽을 드러낸 1829년 무렵이면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서로 평등한 ‘국민’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 일정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이들은 투표권이 없었으며 명실상부한 ‘국민’으로 취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같으면 당시의 총인구 1400만 명 중 고액 재산 보유자이자 고액 납세자인 40만 명만이 투표권을 누렸다. 농촌공동체 와해와 도시화로 치안 문제가 심각해진 초기 산업사회의 전체적 ‘안녕질서’도 과제였지만, ‘시민계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 자산가들의 생명, 재산 그리고 특권과 권력의 보호야말로 초기부터 경찰의 주된 임무였다.

부자들의 재산 증식을 가장 위협하는 듯한 것은 초기 노동운동이었는데, 특히 생산을 교란시키는 파업에 대한 경찰의 조처는 대개 ‘노동자들과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예컨대 1877년 공황 시절의 미국 철도 총파업 때 시카고와 피츠버그 등지에서 군과 국가경비대(National Guard), 그리고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진압 작전’ 과정에서 각각 20명가량씩 죽고 수십 명의 파업 노동자가 평생 불구가 됐다.

이에 대해 과잉 진압 주범들을 사법 처리하자는 ‘주류’ 언론은 당시의 미국에는 없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회장이자 당대 재벌들의 대표자인 토머스 스콧(1823~81)은 당시 ‘주류 사회’의 기분을 그대로 표현한 명언(?) 하나를 남겼다. “파업 노동자에게 며칠간 총탄의 식이요법을 시켜보자. 총탄이라는 이름의 빵을 얼마나 좋아할는지 한번 보게.” 사회의 ‘상전’들이 반항하는 노동자에 대한 살인 행위를 공공연하게 사주하는 마당에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 추궁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서구의 19세기 말 폭력이 지금 한국에서

유색인종 범죄 혐의자를 일삼아 고문한 것으로 악명 높은 전 미국 시카고 경찰서장 존 버지가 지난해 10월21일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연방법원의 석방 결정으로 풀려나고 있다. 연합 AP

‘부자의 재산과 소득원의 무조건적 보호’라는 근대 경찰의 하나의 존재 이유를 밝혀주면 용산 참사 때 왜 무리한 진압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진압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이 왜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지 어느 정도 이해된다. 부동산을 보유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건물주와 개발업자 등에게 ‘덤벼든다’는 것은, 과거의 구미권과 마찬가지로 재산이 없는 한 ‘사회적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 ‘재산가의 공화국’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룰’에 어긋난 것이었다.

과잉 진압의 책임이 추궁되기는커녕 대한민국의 ‘주류’를 대표한다는 보수 신문들은 한겨울에 쫓겨난 데 대해 ‘감히 반발한’, 이 사실상의 ‘2등 시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명명할 정도다. 즉, 무산자들이 아직 이렇다 할 정치적 영향력을 갖지 못한, 보수적인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구미권처럼 무산자들의 물리적 반발에 대한 초강경 진압이 거의 당연시되고 있다.

그런데 ‘주류’의 재산에 어떠한 실질적 위협도 되지 않았던 지에칸스키에 대한 ‘책임 추궁이 없는 살인’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경찰이 재산가들을 보호하면서 처음부터 주된 표적으로 삼은 것은 바로 빈민,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형태로든 ‘반발’을 시도하는 빈민이었지만,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주류’와 확연히 구분되고 ‘주류’의 지배를 받거나 위계질서 속에서 신분이 낮은 모든 ‘타자’들을 통상적으로 ‘집중관리 대상자’로 여겨왔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전통적 이민국가에서는 ‘인종적·국민적 타자’, 즉 ‘유색인종’들과 가난한 동유럽·남유럽 출신의 ‘2등 백인’, 그리고 최근에 이민 와서 아직 ‘덜 동화된’ 자 등이 경찰의 물리력에 희생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다.

영어를 하지 못하고 가난한 동유럽 출신으로 보이는 지에칸스키는 캐나다 경찰관들의 입장에서 전형적인 ‘열등한 타자’였다. 경찰은 이와 같은 ‘수상한 가난뱅이 외부인’으로부터 안락한 ‘우리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진정한 의미의 ‘시민’에게 쉽게 사용하지 않는 잔혹한 물리력을 이들에게는 별 생각 없이 사용한다. ‘주변 분자’들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은 북미를 비롯한 대다수 ‘선진국’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폭 닮은 ‘침묵의 청색 장벽’

물론 존 버지라는 시카고의 한 노르웨이계 경찰처럼 1980년대 약 200명이나 되는 흑인 등 ‘유색인종’들에게 성기에 대한 전기고문부터 나무막대기를 이용한 항문 강간까지 온갖 고문을 가하고 허위 자백을 끌어내 감옥에 보낸 사례는 어디까지나 ‘극단적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최근의 한 대표적 조사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경찰이 용의자에게 과잉 진압부터 사살까지 각종 물리력을 사용한 경우 용의자의 40%가 흑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인구에서 흑인 비율이 8%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인종적 타자’의 머리에 진압봉이 얼마나 쉽게 내려지는지 실감할 수 있다.

막스 베버의 유명한 정의대로 근대국가란 일체 폭력의 유일한 합법적인 독점자이고 국내적 폭력의 유일한 합법적 독점자는 바로 경찰조직이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처럼 경찰은 꼭 ‘폭력’, 즉 사회의 안녕질서 보호에 필요한 물리력만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주류’의 재산권에 도전하거나 도전할 확률이 높은 ‘반항자’, ‘주류’ 사회 바깥에 있거나 ‘주류’ 사회 안에서 ‘내부 식민지’로 전락해 있는 각종 ‘열등한 타자’들에 관한 한, 경찰조직은 단순한 물리력 사용권뿐만 아니라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도 대부분 그 책임을 면할 비공식적 권리까지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미국 도심 인구의 약 13%가 직접 당했거나 목격한 적이 있는 경찰관의 구타 등 잔혹 행위는 불법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범죄자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미국 경찰관들이야말로 조직문화의 차원에서 바로 조폭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지적이 있다. ‘침묵의 청색 장벽’(Blue Wall of Silence), 즉 어떤 수사를 당하더라도 한 경찰관이 다른 경찰관의 탈선 행위에 대해 절대 증언하지 않는다는 집단의 불문율로 봐서는 미국 경찰들의 조직문화에 일종의 ‘마피아성’이 내재돼 있다.

근대국가의 기원을 장사꾼들에게 ‘보호세’를 갈취하면서 자신의 영향권을 점차 넓혀 갈취 행위 자체를 제도화하려는 조직폭력배의 행동과 비교해 고찰한 찰스 틸리(1929~2008) 교수의 연구결과도 있기에 미국 경찰의 조직문화를 조폭과 비교하는 게 꼭 말이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와 같은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이상 경찰의 잔혹 행위에 대한 수사는 늘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적어도 사회의 ‘주변부’에 대해선 ‘폭력의 유일한 합법적 독점자’는 늘 ‘유사 합법적인’ 잔혹 행위의 최대 가해자로 군림할 것이다. 근대국가가 ‘사회의 관리자’로서의 합리성에 기반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지배계급 본위의 합리성인 이상 흑인 용의자의 성기에 대한 전기고문은 영원한 그림자처럼 이 ‘합리성’을 따라다닐 것이다.

용산 참사가 드리우는 불행한 예감

홀로코스트, 즉 ‘인종적 타자’의 대량 학살은 근대에 대한 배반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근대성 그 자체의 하나의 당연한 결론이었다고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경찰의 잔혹성에 대해서도 같은 종류의 진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잔혹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경찰조직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초기의 경찰조직이 식민지 경찰관 출신들을 대폭 받아들인 채 ‘빨갱이 사냥’에 열중함으로써 보도연맹학살(1950년)을 비롯해 비무장 민간인 수만 명의 목숨을 빼앗은 전력이 있는, 즉 불과 반세기 전 ‘잠재적 반항자’들을 대량 학살했던 대한민국에서는 각종 ‘묻지마 진압’의 위험이 특히 높을 수밖에 없다. 다민족화된 오늘날 북미 지역의 경찰이 특히 ‘인종적 타자’들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면, ‘인종적 타자’들이 아직 힘없는 극소수에 불과한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반항하려는 가난뱅이’가 중점적 공격 대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듯하다. 용산 참사는 앞으로도 한국의 지배계급이 사회적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는지 우리에게 직설적으로 보여주었다는 불행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다.

참고 문헌:

1. <미국 기밀문서의 최초 증언: 한국전쟁과 집단학살> 김기진, 푸른역사, 2005, 21~57쪽

2. < In The Shadows of the War on Terror: Persistent Police Brutality and Abuse of People of Color in the United States > 2007년 미국의 인종차별 실태에 대한 정기 조사를 맞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

3. < Fabricating Social Order: A Critical History of Police Power > Mark Neocleous, Pluto Press, 2004

4. < Imagining the State > Mark Neocleous, Open University Pres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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