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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오늘은 운하 파고 내일은 환경운동

등록 2009-05-12 03:05 수정 2020-05-02 19:25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소년소녀 가장, 장애 어린이 등 260여 명이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소년소녀 가장, 장애 어린이 등 260여 명이 청와대로 초청했다.

아이들 웃음이 푸른 하늘 꽃가루처럼 날리는 5월. 이명박 대통령은 ‘아이들아, 꿈이란 자고로 소박해선 아니된다’는 표정으로 “대통령을 그만두면 환경운동, 특히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소년소녀 가장, 장애 어린이 등 260여 명이 청와대로 초청된 어린이날이었다. 토건국가에서 환경운동가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완전인지’(요즘 아이들 말로, 완전히 어렵다·쉽다, 완전히 좋다·나쁘다 등의 말뜻을 ‘완전이다’ 한마디로 줄여 전함), 아이들이 알긴 어렵다. 이 대통령은 바로 이튿날 인천에서 열린 경인운하(아라뱃길) 현장보고회에 참석했고, 먼발치에서 시민들은 “보고회라는 이름으로 도둑 기공식을 치른다”며 분노했다. 보고회 현장 500여m 앞에서 일찌감치 경찰에 제지당한 채 하릴없이 “운하사업 중단”만 외치는 무리엔 환경운동, 특히 녹색운동가들이 꽤 섞여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는 어린이들이 너무 공부에 시달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이 정권 들어 아이들의 성장판을 쉴 새 없이 자극해준 일제고사, ‘아륀지’ 몰입교육 같은 ‘치적’을 접겠다는 건지, 그런 것에 시달렸다면 어린이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 대통령은 “확실한 꿈을 가지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확인 도장까지 찍어주셨다. 마땅히 아이들, 하늘색 카디건을 입은 대통령 ‘아저씨’와 줄다리기도 하며 뛰어놀던 청와대를 나서면서 이 한마디 가슴에 새겼을지 모른다. 엠비 엠비셔스(MB, MBtious) 아니, 보이스 비 엠비셔스(Boys, be MBtious). “엄마, ambitious(야망적인)의 최상급이 mbtious 맞죠?”

개교 104주년 기념행사를 치른 5월, 이기수 고려대 총장도 ‘아이들아, 꿈이란 자고로 꾸고 싶은 자 맘대로’이겠거니, 꾸는 꿈 모두를 가감없이 말씀하신다. 지난 5월6일 관훈포럼에서 “일정 액수 이상을 대학 발전에 기여한 사람의 2~3세를 입학시켜주는 제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학 천신일 교우회장(세중나모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특별당비 30억원을 ‘기부’하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로비 대가로 금품을 ‘기부’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으나, 국민들 반감에도 이 정부가 초지일관 ‘강부자’를 배려해왔듯, 기부자 배려는 이 총장의 오랜 철학이고 꿈이다. 그러고보니, 기부자들의 아이는 공부에 시달리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겠구나.

이 총장은 김연아 선수의 성공이 “고려대 정신을 팍팍 주입한 결과”라고도 말씀하셨다. ‘고려대가 김연아를 낳았다’는 광고로 한 차례 곤욕을 치른 터라, 설명은 더 구체화됐다. 김연아의 실력이나 자세가 고교 때와는 판이한데 “그건 고려대의 개척정신을 주입한 결과니, 고려대가 김연아를 낳았다”라는 게 꿈 많은 이 총장의 생각이다. 학교 홈페이지엔 재학생들의 생각이 올라와 있었다. 총장님이 꿈은 많을지 모르지만 “개념이 없다”며 낯뜨거워하는 글들이었다. 자꾸 그러니까 아이들은 궁금하다. “엄마, 연아 언니네 엄마는 이름이 려대야? 완전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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