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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돌 기획 ①] 시장〈 국가〈 개인

<한겨레21> 독자 성향 조사… 일반인 대상 조사결과보다 훨씬 진보적
등록 2009-03-25 07:07 수정 2020-05-02 19:25
은 설날 합본호인 745호에 ‘독자 정치 취향 조사’를 위한 설문지를 실었다. 과연 우리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였다. 모두 769명의 독자들이 퀴즈 큰잔치 정답 엽서에 설문에 대한 답변을 정성스럽게 적어 보내줬다. 애독자 중의 애독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답변을 민주주의교육연구센터가 분석해 독자들의 정치 취향을 정리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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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사에 응답한 이들의 성격을 살펴보자. 응답자들의 연령 집단은 30대·40대·20대 순으로 많았고, 남성이 조금 더 많았으며, 직업별로는 학생·회사원·공무원 및 군인·전문직 순으로 비율이 높았다(표1·2 참조).

또 응답자 가운데 경제 수준에서 중간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 전체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실시된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의 한국종합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유권자(‘국민’이 아니라 ‘유권자’라 표현한 것은 정치 조사들이 19살 혹은 20살 이상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 가운데 경제 수준이 평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36.2% 정도였는데, 이번 독자 조사에서는 45.1%가 그렇게 인식했다. 하지만 경제 수준이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은 전체 유권자 조사와 비슷하다.

중산층이라고 대답한 비율 높아

이번 조사의 응답자들은 우리나라 유권자 전체에 비해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3 참조). 2004년과 2007년 의 국민 이념 성향 조사에서 이념 성향 평균값은 각각 2.92와 3.16으로 나타났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평균값이 2.13으로 나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지금까지 조사된 우리나라 유권자 이념 성향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평균값을 나타냈던 2004년보다도 훨씬 진보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조사에 응한 독자들은 자신들의 생각만큼 실제로 진보적인 것일까?

설문조사 문항 가운데 4개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응답자의 인식을 파악하려 기획된 것이다. 4개 문항의 응답 내용을 가장 최근의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와 비교한 결과, 독자들은 확실히 달랐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먼저 ‘국가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명제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 명제는 2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공동체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공익을 중심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다른 면에서는 개인의 이익에 우선하는 국가의 이익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자유주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자유와 이익에 앞선 공익, 즉 국익의 존재는 회의의 대상이다. 공익이란 것을 ‘누가’ 정의할 것인가, 공익의 내용이 구체적 개인이 아닌 추상적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명제에 대해 독자들의 67.1%는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반면, 2008년 유권자 전체를 상대로 진행된 다른 조사(의 국가정체성 조사)에서는 68.7%가 찬성 입장을 보였다(표4 참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인정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쟁점이다. 국민개병제가 공익을 위한 제도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소수자의 양심, 사상의 자유는 인정돼야 한다는 온건한 태도부터, 국민개병제가 국익 혹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강경한 태도까지 존재할 수 있다. 어떤 태도에서든 독자의 72.3%는 대체복무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 반면, 전체 유권자 조사에서는 46%만이 찬성이었고 반대가 더 많았다(표4 참조).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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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고교 평준화 찬반, 일반인과 반대

‘고교 평준화 제도 대신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자녀의 학업 능력에 따라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독자들은 전체 유권자와 상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2004년 실시된 전체 유권자 대상 조사(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국민 이념 성향 조사)에서는 64.4%가 찬성 입장을 보였다. ‘교육비를 더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자 한다면 허용해줘야 한다’는 유사 문항에 대한 조사(2008년 P&C정책개발원의 한국인 정치 성향 조사)에서도 찬성과 반대가 45.2% 대 36.2%로 나타나 찬성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찬성이 17.1%로 월등히 낮았다. 또한 ‘시장과 경쟁의 자유가 개인의 양심·사상의 자유보다 중요하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전체 유권자 조사(P&C정책개발원)에서는 56.4%가 찬성한 반면 이번 조사에서는 6.1%만이 지지를 보였다.

결론적으로 독자들은 우리 사회 전체에 비해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는 자유주의 의견에 서 있지만, 개인의 자유를 시장에서의 자유와는 구분짓고 있었다. 반면 전체 유권자들은 독자들보다 훨씬 시장친화적이었다.

이어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역시 4개 문항을 조사했다(표5 참조).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 전체에 비해 시장에 대한 신뢰가 낮은 반면,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경제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므로 정부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는 명제에 21.8%만이 찬성한 반면, 전체 유권자들은 42.7%가 찬성(2005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했다. 2008년 P&C정책개발원의 한국인 정치 성향 조사에서 유사 문항(‘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의 역할을 지금보다 축소해야 한다’)을 물었는데, 이때도 44.2%가 찬성하고 22.3%만이 반대 의견을 보였다.

‘기업이 스스로 개혁을 못한다 하더라도 기업 활동에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독자들은 21.5%만 찬성한 반면, 전체 유권자 수준에서는 60.6%가 동의하고 있었다(2004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국민 이념 성향 조사). 또 ‘정부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나눠주는 일보다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을 묻는 항목에서, 전체 유권자의 72.9%(2004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조사)가 성장이 중요하다고 본 반면, 이번 조사 응답자의 69.5%는 재분배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독자 조사 결과도 그렇거니와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정치사회 인식에서 사람들의 태도는 단차원적이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시장에서는 무한한 자유보다 국가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보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익(공익)이 더 중요하지만 시장에서는 개인이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보는 등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정치 인식은 복합적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어서, 유권자의 정치 성향이 진보·보수 등 단차원적으로 판단되기 어렵다는 인식은 서구에서도 1970년대부터 널리 인정되기 시작했다.

표6. 정치 성향 2차원 모델에서 <한겨레21> 독자의 위치

표6. 정치 성향 2차원 모델에서 <한겨레21> 독자의 위치

은 1997년 영국에서 발간된 보고서 (Beyond Left and Right: The New Politics of Britain)에 나오는 ‘정치 성향 2차원 모델’에 이번 조사 결과를 대입한 것이다. 영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념 성향을 조사해 유형화한 이 모델에서 ‘경제적 자유’축(y축)은 국가-시장 관계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높은 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에 부정적이다. ‘개인의 자유’축(x축)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할수록 사적 영역에 공동체(국가)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 영국의 보고서는 당시 영국 사람들 가운데 보수주의 성향은 40%, 자유(지상)주의는 22%, 권위주의는 18%, 사회(민주)주의 성향은 20% 정도라고 진단했다. 최근 이 틀을 원용해서 우리나라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P&C정책개발원의 ‘2008년 한국인 정치 성향 조사 결과 보고서’가 나왔는데, 여기서는 보수주의 8.8%, 자유주의 5.9%, 권위주의 33.2%, 진보·개혁주의(사회민주주의 분류의 명칭을 바꾼 것) 37.3%, 중도주의 14.9%라고 분류한 바 있다. 물론 영국의 보고서와 최근 국내 보고서가 경제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를 측정한 조사 문항은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같은 나라에서도 시기별로 사람들의 의견이 형성되는 지점은 다르게 마련이다.

64.4% ‘개인 자유’는 선호 ‘시장 자유’엔 부정적

그렇다면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독자들의 성향은 어떨까? 공동체-개인, 국가-시장의 관계를 측정한 각각 4개 문항 값을 ±방향에 따라 가중치를 두어 변형한 다음 2차원 축에 위치시킨 값이 의 수치다. 이번에 응답한 독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64.4%는 높은 개인적 자유를 선호하지만 시장에서의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반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시장에서의 자유를 원하는 태도는 가장 낮은 비율인 4.7%에 불과했다. 전체 유권자 대상 조사와 비교해도, 전반적으로 공동체(국가)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이 높고 시장에 대해서는 정부(국가)의 개입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았다.

의 이념 성향 평균값에서 독자들은 전체 유권자들에 비해 스스로 더 진보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의 결과를 전통적인 정치 성향 분류 기준에서 해석할 때, 독자들의 자기진단은 일관성을 갖는다. 위에서 확인한 것처럼 우리 사회 평균보다 개인의 자유를 훨씬 더 옹호하고 있고, 정부가 나서 시장의 약자를 더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부 주도의 교육과 조세정책이 시장에서 개인의 선택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식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서복경 민주주의교육연구센터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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