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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대신 배당으로 말하는 판사들

‘촛불’ 끄려 몰아주기 배당한 법관들, 여론 비판엔 침묵으로 일관

제750호
등록 : 2009-03-05 14:11 수정 : 2009-03-0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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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한겨레21>(732호)은 인권 OTL ‘재판이 복불복 게임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기소된 이들에 대한 법원의 양형 편차가 너무 크다는 내용이었다. 청원경찰이나 호텔 직원을 폭행한 이들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된 반면, 전경버스에 망치를 휘두른 대학생과 코리아나호텔에 ‘조·중·동 OUT’ 스티커를 붙이다 도망친 퀵서비스 배달원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당시 기사의 한 대목이다. “똑같은 성격의 집회에 참여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휘두른 이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나는 반면, 기물을 파손하거나 영업을 방해하다 도주한 이는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어긋나…. (중략) 촛불집회에 관한 판사 개인의 시각이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지 않겠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법원 수뇌부의 ‘몰아주기 배당’과 ‘양형 코치’와 관련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신영철 대법관(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은 국회에서 위증한 사실까지 드러났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해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2월18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신 대법관의 모습.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 최근 그 의문이 풀렸다. 서울중앙지법 수뇌부가 촛불집회 관련 사건들을 보수 성향의 한 판사에게 ‘몰아주기’로 배당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해당 판사는 당시 <한겨레21> 기사에서 ‘과도한 형량’을 내린 것으로 지적된 조한창(44)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다. 그는 최근엔 ‘보수 성향의 판사’라는 수식어와 함께 여러 언론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사건 전체를 복기해보자면, 서울중앙지법은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조 부장판사에게만 집중적으로 사건을 배당했는데 이에 평판사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자 이후 평판사들에게도 사건을 배당했다. 그에 따라 조 부장판사와 다른 판사들 사이에 양형 편차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재판이 복불복 게임인가’라는 기사는 법원의 의도적인 몰아주기 배당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개별 판사들에게 “벌금 대신 구류를 활용하라”는 등 양형을 ‘코치’하고 입단속을 시켰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사실, 판사들 사이에서 재판 처리 방향이나 양형 수위와 관련해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는 일은 금기시되는 행위다. 상급자인 수석부장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판의 독립을 무엇보다 강조해온 사법부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일단 관련된 고위 법관들의 개인적 캐릭터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정몽구 회장 사건 배당 예규 어겨

우선 이번 사건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신영철(55) 대법관(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과 관련해서는 사실 예전부터 말들이 많았다. 신 대법관은 공교롭게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6년 사건 배당과 관련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구속기소되자 대법원 ‘특정 형사사건의 재배당에 관한 예규’를 어겨가며 일반 형사합의부에 사건을 배당한 것이다. 정 회장 변호인단에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서 퇴임한 지 넉 달 된 김덕진 변호사가 포함돼 있었는데, 예규에서는 퇴임한 지 1년이 채 안 된 법관 출신 변호인이 선임된 사건은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수석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재판부에 배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명백한 예규 위반이었지만 당시 신 대법관은 “그 예규는 거의 사문화된 예규이다” ”예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예규를 어긴 것이다” “언론이 전관예우를 되레 부추기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신 대법관과 관련해 법조계 안팎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대목은 판사답지 않게 ‘재판 이외의 것들’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실제 200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재직 시절 그는 새로 임명될 대법관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관련한 언론 하마평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변에 “중부권 대표 주자도 필요하다” “정통 법관들 가운데서 될 만한 이들이 있다” 등 자기 선전성 말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신 대법관은 충남이 고향이며, 1976년 사법시험 8회에 합격한 뒤 법원행정처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친 정통 엘리트 법관이다.

정치권과도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한 인사는 “헌재 재판관 후보를 두고 (열린우리)당에서 갑자기 신영철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이름이 나왔다. 아마도 본인이 여기저기 운동을 하고 다닌 것 아니겠냐”며 의아스러워하기도 했다. 곧이어 법원행정처 차장 인선 때에는 대법원의 한 부장판사가 “신영철 부장은 어떤가? 윗사람들한테는 잘하는데 밑에서는 ‘출세 지향적’이라고 평한다는데.”라며 일선 기자들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꿈은 좌절됐다. 그는 2006년 여름 수원지방법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지난해 초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08년 여름 기자와 만난 한 서울 지역 법원의 평판사는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년에 고현철 대법관이 퇴임하면 그 후임으로 갈 것이라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진짜 말이 많은 인물이다. 윗사람들에게는 뭐를 잘 보였는지 업무 능력은 인정받은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정치적인데다 언론플레이에 능하고 자가발전이 심해서, 평판사들 사이에서는 말이 제일 많은 부장판사 중 하나였다.” 그 판사의 전망대로 신 대법관은 결국 올해 2월 대법관에 올랐다.

삼성특검때도 부적절한 배당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주연’인 허만(51)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신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엘리트 법관으로 손꼽히는 인사다. 1990년대 중반 초대 법원 공보관을 역임했는데, 기본적인 성향은 보수적이지만 합리적이고 무난한 업무 스타일로 기자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대법원을 출입했던 한 기자는 “좀체 실수도 안 하고, 민감한 사안은 잘 피해갈 줄 아는 정치적 감각도 있고, 술도 세서 공보관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두루 갖췄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비유하자면 깎아놓은 듯한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판사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벙커’(후배에게 일을 많이 시키는 깐깐한 부장판사를 일컫는 법원 내 은어)로 유명해 김종대 헌재 재판관, 박병대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 등과 함께 4명의 유명한 벙커를 일컫는 ‘3대1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허 전 수석부장판사가 배당과 관련해 입길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삼성특검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기소하자, 평소 전환사채 저가 발행은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혀온 민병훈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던 형사합의 23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이는 해당 재판의 핵심 쟁점에 대해 이미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힌 판사에게 배당이 됐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사법부 오욕의 한 장면으로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의 두 주인공은 법원 조직에서 매우 잘나가던 엘리트 법관이면서도 적잖은 구설에 오르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신 대법관은 사건의 최종 책임자이면서 국회 청문회에서 촛불집회 사건 배당 문제와 관련해 위증까지 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무런 해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최고 법관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다면, 그가 내놓을 대법원 판결을 신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대법원과 이용훈 대법원장의 태도다. 뒤늦게라도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높은데도, 일단 소나기부터 피하자는 식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법시험을 통과한 이들이지만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과 검사들로 구성된 검찰은 조직 문화에서 매우 대조적이다. 수사·기소 기관인 검찰이 검사동일체 원칙을 가진 ‘조직’임에 반해, 최종 판단을 맡은 법원은 재판부별로 법률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보장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 이같은 원칙을 해친 사건이 일어났건만, 당사자와 대법원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맞서 ‘사법부의 독립’이라도 지키겠다는 듯한 모양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이 아니라 ‘재판의 독립’이다.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에서 오욕의 장면이 또 하나 추가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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