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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는 강탈한 재산 토해내야”

등록 2007-06-07 15:00 수정 2020-05-02 19:25

진실화해위도 ‘강요된’ 헌납 인정, 사과하고 조치 취하라 했으나 박근혜는?

▣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은 제661호 기사 마감일(5월19일)에 며칠 앞서 ‘정수장학회 문제’를 다뤄야 할지 고민을 했다. 5월15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위원장 송기인 신부) 전원위원회에 올려진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 강제 헌납 의혹 사건’에 대한 결정이 나올 것을 예상해 특집 기획물을 준비 중이었는데, 결정이 2주 연기됐기 때문이다.

사과하고 서면 땅 돌려줄 것도 권고

고민 끝에 분량을 줄여 ‘이슈추적’으로라도 다룬 것은, 진실화해위 쪽을 취재한 결과 2주 뒤에는 결정이 내려질 게 확실해 보였고, 결정의 방향 또한 거의 예견됐기 때문이다. 1962년 당시 부산 지역 기업인이자 2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김지태씨 소유로 돼 있던 부일장학회의 기본재산(부산 서면 땅 10만여 평)과 부산일보사·부산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 주식 각 100%를 박정희 정권이 강탈했다는 진상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가해자(국가)와 피해자(유족) 사이의 화해를 권고하는 조처를 할 것이라는 게 그 방향의 뼈대였다.

진실화해위는 5월29일 전원위원회에서 마침내 이 사안을 결말지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김지태씨의 차남 김영우(65) 한생산업 회장이 지난해 1월 진실 규명을 신청한 지 1년4개월 만이다. 진실화해위 결정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부장 김종필) 관계자가 군법회의에서 회사 임원들과 함께 구속 재판을 받는 궁박한 처지에 놓인 김지태에게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토지 10만여 평과 부산일보사 등 언론 3사를 국가에 헌납할 것을 요구해 받은 것은 공권력에 의해 ‘강요된’ 것으로, 의사 결정권 및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다.

부일장학회 헌납이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진상 규명은 이미 지난 2005년 7월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원회’에서 이뤄진 바 있지만, 그에 따른 진실화해위의 후속조처 권고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의 ‘권고’ 대목에서 “국가는 김지태씨의 재산권 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와 함께 “김지태씨가 헌납한 토지는 부일장학회에 반환하고, 반환하기 어려울 경우 손해를 배상함이 마땅하다”며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됐기 때문에 공익 목적의 재단 법인을 설립해 그 재단에 출연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징적인 명예회복 차원을 넘어 국가 소유로 돼 있는 부산 서면 땅의 소유권을 유족에게 넘기는 게 맞다는 것이다.

‘어거지이자 흠집내기 위한 정치공세’라고?

진실화해위 결정문에는 아직 정수장학회 소유로 남아 있는 문화방송 주식 30%, 부산일보사 주식 100%의 향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목도 있다. “헌납한 주식도 돌려줘야 하는데 정수장학회가 이 주식을 국가에 반환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유족에게 배상함이 상당하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강제 집행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유족에게 우선 배상금을 지불한 뒤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시나리오를 예상해볼 수 있다. 정수장학회 소유의 주식 값어치는 1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우에 따라선 또 다른 과거사 정리 작업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이다.

진실화해위 결정에 따른 후속 조처 과정에서 파열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정수장학회 스스로 강탈로 판명난 재산을 토해내는 것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2005년 3월까지 10년 가까이 이사장을 지냈고, 지금도 여전히 장학회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5월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진실화해위 결정은) 어거지이자 흠집내기 위한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말했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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