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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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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과 ‘비권’좀 가르지 마라

등록 2000-12-19 15:00 수정 2020-05-02 19:21

재집권한 운동권?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장종오씨가 ‘변화’를 논하다

흰 머리띠에 긴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면서 등장, 하지 않았다. 지난 11월 서울대 44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장종오(22)씨는 열혈투사, 애국지사라기보다는 선량한 이웃집 청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서 시종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장씨가 후보로 출마한 운동조직인 21세기진보학생연합이 내걸었던 표어는 ‘발칙한 상상’. 대구 출신의 ‘발칙한’ 그러나 정중한 이 청년은 이제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두부 자르듯 나누어 생각할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군복과 염색…

최보은: 팔공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서 어떻게 운동권에 입문하게 됐나요? (웃음)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불만세력이었나요?

장종오: 그렇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모범생에 가까웠어요.

최보은: 그럼 대학 들어가서 어찌하여 변신을 하게 됐나요? 선배들 때문에?

장종오: 일차적으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공부하다보니까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운동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동시에 여러 선배들의 권유와(웃음) 또 여러 가지….

최보은: 그런 걸 보고 근주자적이라고 하지. (웃음) 최근까지도 학생회나 학교 운동권이 내부에서 상당히 권위적이었고, 일반 학생들과 유리돼 있다고 비판받았잖아요. 상명하달식 사고방식에 나라 전체가 길들여지면서 학생 지도부도 똑같은 우를 범해왔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은 좀 달라졌나요?

장종오: 그 자체가 권위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변화의 단초들은 있어요. 쉽게 말해서 예전에는 전대협이나 한총련,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이런 식으로 내려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자율적인 모임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 당원 모임이라든지, 생활협동조합을 고민하는 모임, 환경운동을 생각하는 사람들 등 여러 모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거든요.

최보은: 내가 생각할 때는 학생운동이든 아니든 열린 사고를 했을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운동권 학생들도 머리를 노랗게 염색할 수 있잖아요, 그런 현상이 있나요?

장종오: 있죠. 그렇지만 염색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사고가 열리는 것은 아닌 거 같고…, 학생운동 내에서도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한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김규항: 우리 때 운동권 학생들은 500m 앞에서 봐도 표가 났어요. (웃음)

최보은: 역설적인 게, 당시에는 운동하는 학생들이 다 군복 입고 다녔잖아.

김규항: 일단 분위기가 어둡고 역사가 어두우니까. 근래에 보면 학생운동하는 학생들의 옷차림에도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물론 유연함의 전체적인 방증은 아니겠지만, 옛날에는 금기시되기도 했었어요. 이를테면 우리 때는 타입화된 이외의 복장을 하면 이상하게 보고 프티부르주아라는 비난도 들었죠.

최보은: 그때는 프티부르주아라는 게 지상최대의 욕이었지.

김규항: 그때는 운동권들도 군대같은 데가 있었어. 적을 공격하다 적을 닮아간 거죠.

장종오: 그걸 포기했을 때 다른 것도 포기하게 될 위험성 때문에 아닌 줄 알면서 부여잡은 측면도 있었겠지요. 변화되고 있는 과정을 저는 역동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변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규항: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일반 학생들의 변화 속도보다는 확실히 느리다는 점이죠. 학생운동이라는 게 선후배간으로 이어지는 건데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운동권 선배에 대해서 별로 호감을 못 느낀다잖아요. 저는 대학 들어갔을 때 운동권 선배들한테 매혹됐었어요.

최보은: 그때 속아서 인생 망쳤잖아. (웃음) 근데 일반학생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에 운동권에서 학생회장에 당선된 것이 이른바 비권이 당선됐던 지난해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장종오: 에도 ‘운동권의 복권이다’라고 기사가 나왔는데, 학우들이 느끼는 것과 사회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차이가 분명히 있어요. 또 학우들이 보기에는 운동권, 비권이란 구도 외에도 21세기진보학생연합이나 전학협, 한총련 등 후보들 나름의 색깔들에 따라서 기대하는 바도 있고 거기에 따라서 유권자들이 판단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총학생회장 워스트는 누구?

최보은: 득표는 몇%나 했어요?

장종오: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최보은: 거의 부시 수준이예요? (웃음)

장종오: 투표율은 50%를 갓 넘었고, 제가 득표한 건 20%니까 전체 학우들의 10%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지요.

최보은: 공약은 뭘 걸었어요?

장종오: 저희들은 대학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제일 많이 각인됐던 공약이 장학금 문젠데 대학 내 장학금을 평점 2.7 이상의 학생들에게 줍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장학금 자금이라는 건 학생들이 낸 입학금인데, 어떻게 보면 이 돈은 우리 돈이다, 이 장학금을 성적우수자들에게 주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경제적인 열외자에게 나눠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또 학생회 재정을 투명화할 수 있는 방안들, 자치단위들과 학생회가 어떻게 손잡을 수 있는가 하는 정책들을 이야기하고, 정보공개청구운동을 인터넷상에서 대중화해 학생들이 대학행정에 대해서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주로 이런 대학개혁 정책들을 이야기했죠.

최보은: 지난해에 광란의 10월팀이 당선된 데는 힙합춤 추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빠른 시간에 모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방종오씨가 나온 쪽은 어땠어요?

장종오: 이번 선거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건 매체연합이라는 거였어요. 학내 여러 언론들이 연합해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열린 인터뷰도 하고 정형근씨를 역대 워스트 총학생회장으로 뽑기도 하고…. (웃음)

김규항: 정형근이 총학생회장 출신이었어요? 역시 제국대학이군(웃음). 베스트는 누구였어요?

장종오: 베스트는 안 뽑았어요. 워스트만 뽑았어요. 그런 식으로 학생회 선거를 나름대로 좀 풍성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자유게시판에서 정책에 대한 토론도 있었고요.

김규항: 원론적으로 운동권이 총학생회 선거에 나선다는 건 학생의 대표기구라는 틀을 가지고 학교 내부뿐만 아니라 대사회적인 운동을 하는 게 보다 중요한 목적인데 그런 목적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피부로 부딪히는 복지문제들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지요.

장종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고요, 장학금 이야기가 전부일 수 없고, 총학생회의 1년 활동중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건데 이런 문제를 통해서 저희들의 이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공적 재화라고 하는 게 어떤 식으로 분배돼야 하는 건가, 학생들이 과연 교육재정이라고 하는 데서 국가로부터 어떤 복지를 제공받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최보은: 서울대 역대 학생회장의 많은 수가 금배지 달고 정치권으로 옮겨가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후학으로서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요? 본인도 기회가 닿는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장종오: 80년대와 90년대의 차인데, 90년대에도 참여연대나 민주노총 등에서 사회운동하는 분들이 많죠.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제는 불러주지 않는다고. 80년대는 그 세대 자체의 정치가 이루어졌다면 90년대는 그러지 못하고 있거든요. 진보적인 학생활동가로 자기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학내 대표자 마인드만으로는 운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졸업 뒤에도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이제는 잘 불러주지도 않을 거고. (웃음) 80년대 민주화운동했던 선배들을 존중하지만 사상적으로 봤을 때는 유지가 안 되는 거 같아요. 예전에 가졌던 사상에 대해서 왜 틀렸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왜 김대중씨나 이회창씨가 맞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생각의 변화에 무게를 실어서 운동하는 후배들을 위해 밝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운동권 사회진출의 단선적인 경로

김규항: 이른바 386세대 중에 국회 들어간 사람들은 운동이력이 아니라 대중적인 스타성 때문이죠. 최근의 학생회장들은 스타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80년대처럼 드라마틱한 고난의 이력이 없기 때문에, 감옥에 갈 기회도 적고. (웃음) 그런데 386 대표주자라는 사람들이 다들 서울 메이저 캠퍼스의 총학생회장 출신이죠. 그런 사람들을 제외하면 학생 운동권의 진출이 지나치게 전형적인 경로, 사회운동조직으로 들어간다든가 하는 것뿐이고 그 외의 진출은 운동을 떠나는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죠. 회계사가 되든 의사가 되든, 자기의 사상을 견지하면서 전문가의 길을 모색을 하는 것은 사실 어렵단 말이예요. 사회곳곳의 전문영역에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 있어야 사회가 점진적으로 변혁할 가능성도 많아지는 건데, 그런 게 약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장종오: 그때는 진보정당도 없었고, 시민운동도 활성화 안 됐던 한계가 있었죠. 지금도 운동권하면 집회 나가는 정도의 단선적인 이미지만 남아 있고 CPA를 보거나 법률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운동과 전혀 관련없는 사람으로 분류되는데, 운동권, 비권이라는 말은 새로운 운동의 카테고리를 담아낼 수 없는 말인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식으로 운동권과 비권을 나누는 것도 지양하고 이른바 운동권의 사회진출 폭도 넓어져야겠죠.

김규항: 이번에 수능시험이 사실 쉬워졌고, 출제위 입장은 만점자가 서울대, 연고대 정원보다 많아져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반대로 서울대나 연고대 입시 담당자들은 굉장히 반대하지요.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엘리트를 구별해야 하는데, 고만고만한 애들이 너무 많아서는 곤란하다는 말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종오: 교육문제만큼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쉽게 말해서 신자유주의적 교육질서 재편이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제대로 관철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사실 교육개혁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반응이 나오게 되고요. 저는 분명히 수능시험이 쉬워져야 그나마 과외문제도 줄일 수 있고, 주 5일교육 같은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문제는 입시제도를 개혁하는 데 하나를 바꿔서 다 얻을 수 없다는 거죠. 일시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서울대 출신은 실력이라기보다 학연으로 만들어진 메리트로 유리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소신지원을 하기보다 눈치지원을 하게 된다는 거겠죠. 서울대, 연·고대 그 밖에 몇몇 학교 사이에 서열이 사라지면 이런 식의 관행은 좀 줄지 않을까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모순은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의 특별한 문젠데, 입시제도가 개선될수록, 말하자면 무조건 달달 외우는 데서 수능이니 논술이니 좀 더 복잡한 준비가 필요한 쪽으로 갈수록 부잣집 아이들에게 유리해져 가는 거죠. 돈이 많을수록 준비하는 데 유리한 입시라는 얘기죠. 이른바 일류대에 부잣집 자식들이 많아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도 그런 거예요. 제도는 좋은 쪽으로 가는데 모순은 점점 늘어가는 겁니다. 교육문제가 교육문제 차원을 넘어서는 거라는 걸 말하는 거죠.

서울대생도 군대는 가야 하네

최보은: 수능 몇점 받았요?

장종오: 저는 커트라인 가까운 점수로 들어왔어요. 330점 조금 넘었어요.

김규항: 재수 안 하고 들어와서 학교에서도 총학생회장 되고 훌륭하네.

최보은: 군대는 아직 안 갔죠? 학생회에서 군입대 반대운동할 생각은 없어요?

장종오: 군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는데, 한국 현실에서는 군 의문사문제도 제대로 진상규명이 안 되고, 여전히 국정원 같은 조직이 존재하잖아요. 대중적인 힘으로 모두 안 가게 되면 좋겠지만, 일단 군기간 단축이 이야기돼야 하고, 6·15합의도 단지 6·15합의를 지지하냐, 아니면 좌파적인 관점에서 반대하냐 이런 수준이 아니라 이 부분에서 눌려왔던 대인지뢰문제나 학살문제, 이런 걸 터뜨려야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지요.

최보은: 당장 군입대 거부를 하라는 게 아니라 대학이 아카데미즘의 산실이고, 이상과 진리를 추구하는 공간이라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전근대성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또 당사자들이기도 하니까.

김규항: 이런 문제도 있는 것 같애. 현실적으로 학생운동의 이슈는 일류대를 중심으로 선도되는 경향이 있는데 일류대일수록 군대에 대해 유연한 기회가 많아요. 병역특례 기회라든가, 그러니까 당사자들한테 덜 절실한 문제가 되는 거야.

최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생의 80∼90%는 군대가야 할걸요?

장종오: 그렇죠. 가야 하는데….

최보은: 가기 좋아하는 친구들 있었어요?

장종오: 아니요. (웃음)

최보은: 한국이 분단국가이고, 레드콤플렉스 때문에 이런 데 참 예민하거든요. 어떤 사회단체나 정치조직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데가 없어요. 유일하게 그런 걸 문제제기할 수 있는 건 군대를 가야 할 당사자들의 집합이자 이데올로기의 이해관계를 떠나 있는 학교라는 공간이라 보거든요.

장종오: 지금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는 힘은 없지만 정책으로는 군복무 기간 단축, 예비군 해체 등등의 정책이 있기는 한데 분명한 건 우리가 학생이지만 한 마디 이야기하는 것과 지속적으로 책임감 있게 꾸준히 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군가산점 논쟁만 보더라도 양상 자체가 남자들이 왜 청춘에 거기 가서 시들어야 하느냐, 국가원수가 내가 군대가야 하는 이유를 설득시켜봐라,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당장 여성에 대한 공격이 됐잖아요. 언론도 조선일보 같은 데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자체를 거부했던 거고, 다른 데서는 보완책이 나와야 하지 않겠냐 수준의 이야기를 한 건데, 지속적으로 이런 문제를 제기해 나가는 것이 부족한 게 현실이거든요. 저희들은 전쟁이 났던 6월이나 통일논의가 뜨거워지는 8월에 평화와 군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에요.

김규항: 개인적으로 학생운동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운동이 아니라 학생 신분의 진보 활동인 거고 그래야 학생 공간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관념성도 지양될 수 있죠. 방종오씨가 꿈꾸는 세상은 뭡니까?

내가 꿈꾸는 세상

장종오: 글쎄요, 일단 북한이나 소련이나 실패한 체제는 실패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무시하고 그야말로 이상 자체로 이게 진보적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건 같아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민주노동당 같은 정당이 정말 국회의원도 내고,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발언력들도 모이고…. 제 개인적으로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살아야 한다, 이런 책무가 저한테 떨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자유로운 분위기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존중받고, 연대라고 해야 하나, 따뜻함이 있는 사회를 바라는 거죠.

김규항: 미소가 따뜻합니다. (웃음) 웃는 게 순진무구해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옛날처럼 지사적인 이미지도 아니고. 오늘의 결론을 내볼까요?

최보은: 제가 오늘 너무 많이 선동을 했는데 기대해 보겠습니다.

장종오: 일단은 학생회 활동이라는 게 운동권, 비권이 아니라 사람의 태도, 방식, 생각하는 가치관의 방식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최보은: 언론이 그렇게 주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운동권 출신이 재집권했다는 게 초점이 아니다라는 말이죠?

장종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희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구조도 있는 거고 사회적으로도 이제는 제발 경직된 잣대로 가르는 관습이 사라졌으면 해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이 제 생각에는 반공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게 사용되고 있거든요. 사실 모든 집단의 이해가 있는 거잖아요. 이런 이해관계들이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집단이기주의라는 이야기로 매도된다면,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논쟁의 분위기가 형성될 수 없지 않습니까?

김규항: 집단이기주의와 정당한 사회의식의 차이는 그것이 어느 정도 남에 의해서 추인받을 수 있는 수준인가에 따라 다르겠지요. 사회적으로 다른 집단의 정당한 연대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억압 상태가 있는 건데, 남 생각 안 하고 자기만 더 먹으려고 난리를 치는 건 집단이기주의라 할 수 있겠죠.

장종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시사 프로를 보는데 방송도중 진행된 설문내용이 공공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 중 어느 것이 우선시돼야 하는가였어요. 당연히 다 공공의 이익이라고 하는데, 공공의 이익이라는 게 한국사회에서 정말 우리 전체의 이익이냐, 국가의 이익이냐를 가지고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제대로 토론돼본 적이 없잖아요. 그렇게 쉽게 이야기가 진척되는 걸 보면서 한국사회의 지배블록이라는 게 참 견고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규항: 부드러운 것은 강하다. 청년 장종오의 부드러움이 그런 부드러움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최보은: 아주 문학적인 표현이네. 나도 결론 멋있게 바꿀까봐. (웃음) 대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군대 안 가는 사회가 보고 싶다? 빼라 빼. 도저히 문학적으로 안 나간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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