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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리에서 나온 비봉이, 바다로 나갈까

등록 2022-08-27 06:10 수정 2022-08-28 00:17

“파도에 가두리가 넘실대면 비봉이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22년 8월16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연안. 비봉이가 헤엄치는 가두리로부터 300m 떨어진 육지에서 가두리 쪽을 바라보던 한 시민이 말했다. 가두리를 측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보니 큰 파도가 칠 때 가두리가 출렁이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그는 결국 비봉이를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다.

제주도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바다에 가면 비봉이를 볼 수 있겠지.’ 그러나 육안으로 비봉이를 보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한 일이다. 돌고래는 호흡할 때를 빼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낼 일이 많지 않다. 주둥이를 내밀고 얼굴을 내보이는 돌고래의 이미지는 수족관에서나 보아오던 이미지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마크·MARC)의 장수진 연구원은 동료와 함께 제주 연안에 사는 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한다.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수면 위로 돌고래가 보이면 잽싸게 차 밖으로 뛰쳐나가 카메라를 든다. 그리고 수천 장의 연속사진을 찍는다. 집에 돌아와 그 사진을 하나하나 확대해가며 그날 목격한 돌고래의 등지느러미를 살핀다. 돌고래는 등지느러미의 각기 다른 상처 형태로 개체를 식별할 수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등지느러미 사진과 당일 찍은 등지느러미 사진을 비교하며 오늘 본 돌고래가 제돌이, 빌레, 단이, 춘삼이 혹은 그 누군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이서 돌고래를 보겠다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 않는다. 돌고래의 삶의 터전을 함부로 헤집지 않고 먼발치에서 연구를 이어간다.

‘소통의 한계 때문에 인간의 관점에서도 동물의 관점에서도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의 복지 상태를 평가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2022년 8월11일 국회 토론회 한 참석자의 발언) 비봉이는 네댓 살 때 제주도 비양도 앞바다에서 혼획(그물에 엉뚱하게 걸려 붙잡힘)된 뒤 수족관에서 17년을 살았다. 앞서 방류된 수족관 돌고래 7마리에 비춰볼 때 수족관 생활이 긴 편이기 때문에 방류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등이·대포 사례에 더 가깝다. 그래도 바다로 돌아가면 금방 야생성을 회복하지 않을까. 몸 상태와 상관없이 바다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까. 오히려 생존이 불투명한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진 않을까. 익숙한 공간에서 여생을 보전하고 싶진 않을까. 그 마음을 알 방법은 없다.

비봉이를 수족관에서 가두리로 옮겨 야생적응 훈련을 진행하는 것을 두고 이견이 첨예하다. ‘실패를 단정 짓지 마라. 시도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낭만과 구호를 앞세우기보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양쪽 모두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지만 근본은 윤리의 문제다. 동물을 야생에서 납치한 뒤 착취하다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회복하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그나마 인간이 비빌 언덕은 최선을 다해 투명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결정했다는 안도감 그뿐 아닐까. 비봉이는 이미 가두리로 나와버렸다. 다만 가두리에서 바다로 나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성공과 실패의 격차는 한 개체의 목숨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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