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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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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음벽 너머 나무에 앉으려 날아간 황조롱이

시속 40~70㎞로 날기에 부딪치는 순간 즉사, 한 해 투명벽에 부딪쳐 죽어가는 새 800만 마리를 구할 방법은
등록 2022-06-29 09:40 수정 2022-06-29 22:00
2022년 3월 전북 정읍 영원면 국도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참새 두 마리. 허은주 제공

2022년 3월 전북 정읍 영원면 국도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참새 두 마리. 허은주 제공

출근길, 건물 밖으로 나서는데 발밑에 새 한 마리가 떨어져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4층 높이의 평범한 다세대주택이다. 조심스럽게 새를 들어 올리니 고개가 아래로 축 처졌다. 유선형으로 날렵한 몸, 옅은 갈색과 짙은 황색 깃으로 덮인 날개, 머리 위에 삐죽삐죽 솟은 짧은 깃, 직박구리였다. 경직이 없고 손바닥 안에서 사체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아침마다 들리던 직박구리 소리가 기억났다. 오랫동안 나의 아침을 깨워준 고마운 소리였다.

생각해보니 출근길에 죽은 새를 발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 집으로 이사한 지 3년째인데, 출근길에 죽은 새를 발견한 것은 네 번째였다. 직박구리 둘, 박새 하나, 물까치 하나였다. 혹시 이 새들이 내가 사는 건물 유리창에 충돌한 걸까?

유리, 죽음으로 가는 문

수의대 학부생 때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실습이 생각났다. 여름방학 한 달 동안 구조한 동물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을 함께했다. 그때 유리창에 충돌한 새를 처음 봤다. 멧비둘기였는데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견해 구조했다. 아파트는 투명유리창이 많아, 그곳에 부딪쳐 다쳤을 거라고 수의사 선생님이 설명해줬다.

손안의 직박구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몇십 층 되는 아파트에는 유리창이 많으니 부딪칠 수 있겠지만, 설마 내가 사는 이 작은 다세대주택 유리창에도 새가 부딪칠까? 자료를 찾아봤는데 놀라웠다. 투명창이 낮다고 해서 새에게 덜 위험하지 않았다. 새도 높은 비행보다 낮은 비행을 선호한다.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에너지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높게 날지 않아도 천적을 피해 먹이를 구하고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다면 새도 낮게 난다. 주변에 흔한 유리가 있는 모든 구조물에서 새가 부딪쳐 죽어가고 있었다.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주문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갑자기 쿵 소리가 들리더니 비명과 함께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두꺼운 통유리 앞에 아이가 주저앉아 이마를 붙잡은 채 울었고, 놀란 가족이 아이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가 뛰어가다가 통유리에 부딪친 것 같았다. 그 아이스크림가게를 다시 찾았을 때 통유리에는 다양한 색깔의 스티커로 화려한 무늬가 생겨 있었다.

새도 비슷하게 부딪친다. 건물 유리창은 새가 보기에 거울과 같다. 유리창에 나무와 하늘이 반사돼 보이면 새는 그 나뭇가지에 앉기 위해 혹은 그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 속도를 낸다. 새는 중력 방향으로 떨어지지 않고 날기 위해 시속 40~70㎞로 날아가기 때문에 부딪치는 순간 대부분 즉사한다. 사람이 유리에 부딪치면 투명한 유리의 위험을 배울 기회가 되지만, 새에게 다음은 없다. 새에게 유리는 죽음으로 가는 문이다.

주거지역에서 도로의 차량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방음벽을 세운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도 대형 방음벽을 세우는데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려 대부분 투명한 벽으로 만든다. 전국의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로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에서 얼마나 많은 새가 죽어가고 있을까.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명 방음벽에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국립생태원이 실제로 투명창에 충돌해 죽은 물총새의 사체를 활용해 충돌 장면을 재연한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국립생태원이 실제로 투명창에 충돌해 죽은 물총새의 사체를 활용해 충돌 장면을 재연한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지을 때 충돌 예방하는 투명 방음벽이라면

첫째는 방음벽에 충돌한 새의 자료를 공유한다. 요즘 나는 운전하다가 방음벽이 보이면 갓길에 차를 세워 충돌한 새가 있는지 살펴보고 사진을 찍어 앱으로 공유한다. 국립생태원에서 진행하는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국립생태원은 애플리케이션 ‘네이처링’을 통해 전 국민이 자기가 사는 곳 근처의 투명창 조류 충돌 현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는 새가 유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스티커나 저감도필름을 투명 방음벽에 붙인다. 작은 스티커를 촘촘한 간격으로(세로 5㎝ 또는 가로 10㎝ 이하로 붙이는 것, 이를 ‘5×10의 규칙’이라 한다) 붙이면 사람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새의 충돌을 막을 수 있다. 환경부는 이미 몇몇 지역에 방음벽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애초에 조류 충돌 예방 투명창을 만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건축사에게도 조류 충돌을 예방하는 투명창 사용을 권장하고 때에 따라선 강제해야 한다.

공공건물만이라도 솔선수범해야 한다. 2022년 5월29일 국회에서 의결돼 2023년 시행을 앞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인공구조물에 야생동물이 충돌하는 일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중앙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인공구조물이 대상이다. 하지만 국내 건물의 약 70%는 민간에 속한다.

지난겨울 투명 방음벽 옆에서 죽은 새를 봤다. 웅장한 숲이 파노라마처럼 막 펼쳐지는 국립공원 초입에 있는 방음벽이었다. 전날 밤에 눈이 많이 와서 걸을 때 눈에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건조하고 찬 아침 햇살이 흰 눈에 반사돼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방음벽 밑에 쌓인 눈에 무언가가 꽂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새의 꽁지깃과 두 다리만 눈 밖에 수직으로 서 있었다. 얼굴부터 몸 대부분이 눈 안으로 깊게 파묻혔다. 새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바닥으로 추락했던 것 같다. 충돌 직전까지 빠른 비행을 했을 것이다. 눈을 걷어내고 사체를 꺼내니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황조롱이였다. 윗부리가 깨져서 불규칙한 모양으로 부서지고, 부리와 머리가 연결되는 피부와 깃털에 피가 배어 있었다. 부리를 제외한 몸이 꼭 살아 있는 듯 온전하게 보존돼 있었다. 황금색과 갈색 깃, 레몬색 눈꺼풀 위에 남아 있는 흰 눈이 겨울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였다. 눈 속에 있었는데도 몸에 경직이 없었다. 충돌한 지 얼마 안 됐을 것이고, 충돌 즉시 죽었을 것이다.

2022년 2월 내장산 국립공원 근처 지방도로에 설치된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황조롱이의 모습. 허은주 제공

2022년 2월 내장산 국립공원 근처 지방도로에 설치된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황조롱이의 모습. 허은주 제공

겨우 생존해냈을 겨울의 끝자락

황조롱이는 투명창 너머로 보이는 숲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 숲과 자신 사이에 투명창이라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로, 단단한 윗부리가 산산이 조각날 정도로. 혹한이 끝나가는 2월 말, 황조롱이가 야생에서 어렵게 생존해냈을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방음벽 뒤편에는 작은 마을과 연결된 숲이 있었다. 아마도 황조롱이가 날아가려고 했을 그 숲으로 걸어갔다. 그 숲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나무 밑에 황조롱이를 눕히고 마른 덤불과 눈으로 덮어줬다. 부드러운 흙으로 온몸을 덮어주고 싶었지만 찬 날씨에 땅이 얼어 도무지 흙을 파낼 수 없었다.

국내에서 연간 800만 마리의 새가 투명벽에 부딪쳐 죽는다. 지난 50년간 북미에 서식하는 새의 30%가 사라졌다는 연구도 있다. 새가 사라진다는 건 우리를 실존에 가깝게 하는 다른 세상이 조금씩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건 내가 조금씩 사라진다는 거나 다름없다. 인간이 만든 투명벽에 사라지면 안 될 세상이다. 그 세상이 사라지면 사람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허은주 수의사

*시골 수의사의 동물일기: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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