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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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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없이 장보기’ 베테랑이란

어시장 가방 활용한 캠페인에 참여하려 찾아간 전통시장
등록 2021-10-27 14:18 수정 2021-10-28 00:53
캠페인에 참여하는 군민에게 배부된 키트. 어시장 가방, 제로웨이스트 관련 도서, 캠페인 홍보물 등으로 구성됐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군민에게 배부된 키트. 어시장 가방, 제로웨이스트 관련 도서, 캠페인 홍보물 등으로 구성됐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내려와서도 변하지 않은 생활 중 하나는 바로 마트에서 장보기다. 주로 읍내의 중소형 마트 여러 곳을 돌며 필요한 물건을 사는 편인데,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많고 가격이나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어 온라인쇼핑이나 인근 도시의 대형 마트도 함께 이용한다. 그에 반해 재래시장은 거의 이용한 적이 없는데, 점점 줄어드는 인구 탓인지 오일장이 서는 날에도 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살 만한 물건 종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채소·생선 등 신선 재료보다는 빵이나 유제품, 가공식품 등을 주로 사는 식습관, 매번 현금을 내고 거슬러 받는 일보다는 카드 한 장을 내미는 것이 익숙한 소비 습관도 시장보다는 마트가 편한 이유다.

그런데 최근 읍내 전통시장에 일부러 찾아가기 시작했다. ‘비닐 없이 장보기’ 캠페인에 참여하면서다. 지역의 한 청년단체가 전통시장 활성화와 남해 어시장에서 비닐 사용 절감을 위해 기획한 캠페인은 비닐을 대체해 쓸 수 있도록 직접 제작한 ‘어시장 가방’과 천주머니 등을 활용해 전통시장에서 비닐 없이 장보기를 함께 실험해보는 것이 요지다. 서울 망원시장이 친환경 시장을 선포하고,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없애기)의 하나로 시장에서 장보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세제나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리필숍이 곳곳에 생겨나는 움직임이 이제 남해에도 슬며시 흘러 들어온 것이다.

생선이나 조개를 비닐 없이 그대로 담을 수 있게 제작된 ‘어시장 가방’을 들고 처음 찾아간 곳은 바로 전통시장 내 조개 가게였다.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해산물에 친숙하지 못한 탓에 가장 만만한 바지락을 골랐다. 가져간 가방을 꺼내 “여기에 바로 넣어주세요!” 했는데, 한참 늦었다. 그동안의 장사 내공으로 손이 아주 빠른 사장님은 이미 바지락을 검은 봉지에 단단히 포장하고서 내게 내미셨다. 첫 도전은 싱겁게 실패했다. 그래도 얼마 전 마트에서 산 바지락보다 훨씬 양이 많고, 부피 큰 플라스틱 용기 대신 얇은 봉지 한 장으로 쓰레기가 줄어든 것을 위안 삼았다.

두 번째 도전은 채소 사기! 요즘 제철이라는 가을무를 사러 전통시장에 찾아갔는데 어떤 무를 골라야 하는지, 요즘 무는 하나에 얼마인지 전혀 감이 서질 않는다. 눈치껏 먼저 무를 사고 계신 한 아주머니 뒤에 덩달아 줄을 섰다. 그리고 지난번 조개 담기에 실패한 가방에 무를 그대로 담아달라고 했으나, 가방이 더러워지면 안 된다며 굳이 비닐로 한 번 싸주시는 상인분의 배려(?)로 이번에도 ‘비닐 없이 장보기’는 실패다. 다음에는 꼭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 전에 장바구니 가방부터 얼른 내밀어 더 크고 확실한 목소리로 “비닐 없이 그냥 주세요!”라고 외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닐 없이 장보기’ 실험은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거의 찾아가지 않던 전통시장에 몇 번 가보니 시장에서 물건 사는 일에 조금은 익숙해진 기분이다. 캠페인은 끝났지만 전통시장에서 ‘비닐 없이 장보기’ 실험은 혼자서도 이어갈 생각이다. 머지않아 베테랑 상인분들의 빠른 손놀림에도 뒤처지지 않는, ‘비닐 없이 장보기’ 베테랑이 돼 있길 꿈꿔본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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