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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G 평가...10년 전 대통령 보는 줄

온실가스 문제를 대기업이나 화려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환상에 빠진 정부
등록 2021-06-05 07:12 수정 2021-06-06 02:42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이 5월31일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정상토론세션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이 5월31일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정상토론세션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1 P4G 서울 정상회의’가 5월31일 끝났다.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라는 긴 이름을 가진 P4G 정상회의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낯선 회의다. 12개국이 참여하는 P4G는 한국과 덴마크, 네덜란드를 제외하고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케냐,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 주로 개발도상국들이 회원국이다. 12개국 중 한국이 가장 경제 규모가 큰 나라다. P4G의 목적 자체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이명박 대통령 자산 승계” 말한 이유

P4G 정상회의의 시작은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광복절 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현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방안’으로 녹색성장을 발표한 뒤 이를 다른 나라로 확산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덴마크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의 호응으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설립은 급물살을 탄다. 2011년 5월 한-덴마크 정상회담으로 ‘녹색성장 동맹’이 맺어졌고, 한국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덴마크는 글로벌녹색성장포럼(GGGF)을 발족했다. 국제 무대에서 녹색성장을 설파하고 싶었던 양국 우파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2011년 9월 총선에서 패배해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중도좌파연합에 자리를 물려준 라스무센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다시 총리에 임명됐다. 그는 GGGF를 발전시켜 P4G를 제안했다. 2017년 라스무센 총리가 P4G 회의를 제안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긍정적으로 답하자, 국내 보수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의 자산을 승계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P4G 서울 정상회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이 주요 목적이라지만 대기업 중심 행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행사장 뒤편에 수소자동차가 놓이고, 대통령이 직접 수소차를 운전해 퇴근하는 모습은 10여 년 전 ‘저탄소 녹색성장’을 외치던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녹색성장이라지만, 사실 ‘저탄소 녹색성장’에선 경제성장을 더 중요한 가치로 놓았기 때문이다.

회의 개최국으로서 우리나라는 적절한 역할을 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 당시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났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역할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동안 기후위기에 계속 한발 늦었던 대응을 반복할 뿐이다.

탄소중립 언급 없이 미세먼지 없는 날 제안

2019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사무총장이 주최한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해 미세먼지 없는 ‘푸른 하늘의 날’을 제안했다.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전세계 국가 정상들을 질타하던 이 회의의 화두는 ‘탄소중립’이었다.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순배출을 ‘0’으로 만드는 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지를 놓고 회의한 것이다. 그해 핀란드와 스웨덴은 2035년과 2045년 탄소중립을 법제화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법률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시점을 언급하지 않은 채 당시 국내 이슈인 미세먼지 없는 날을 제안했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은 밀접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이슈는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몽골의 사막화와 황사 등 지리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의제에서 벗어난 대통령의 발언은 2021년에도 이어졌다.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기후정상회의’에서 세계 각국은 2030년 목표를 발표했다. 이미 2년 전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했기에 이제 각국의 관심은 단기 목표인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얼마나 할 것인지에 쏠렸다. 파리협정은 중장기 목표와 함께 단기 목표를 5년마다 한 번씩 설정하고 ‘진전의 원칙’에 따라 후퇴하지 않고 목표를 상향하도록 한다.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50~52% 감축, 일본이 46% 감축, 유럽연합이 55% 감축 목표를 발표한 것은 모두 이런 맥락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연말까지 상향된 목표를 제시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미 2020년 말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한 보고서에 박근혜 정부의 2030년 감축 목표를 그대로 제출해 보완을 권고받은 상황이었지만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2021년 5월에 열린 한-미 정상회의나 이번 P4G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질타가 이어지지만 대통령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개최국인 P4G 정상회의에서조차 했던 말을 또 했음에도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달성 의지가 결집되었다’는 청와대의 보도자료를 보고 있노라면, P4G 서울 정상회의는 사실상 ‘외교적 참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기후악당’ 국가에서 벗어나기보다 대통령 스스로가 기후위기에 신경 쓰지 않는 악당이란 점을 계속 확인시켜주는 탓이다.

기후위기에 신경쓰지 않는 악당 국가

2022년이면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지 30년이 된다. 국제사회가 본격적으로 기후위기 문제의 해법을 고민한 지 30년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은 여전히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 상태에 머무른다. 온실가스 문제를 대기업이나 화려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대표적이다. 과거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기후위기는 절대 극복될 수 없다.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지역사회 등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보는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저탄소’와 ‘녹색’을 외치지만 결국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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