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우동뉴스-접경지역] DMZ 두루미는 목놓아 웁니다

남북 접경지역 두루미 탐방, 월동 개체 늘었지만 난개발로 훼손 가능성 높아
등록 2021-02-12 13:13 수정 2021-02-15 01:30
2021년 1월20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 남쪽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수십 마리가 무리 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한겨레 박경만 기자

2021년 1월20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 남쪽 백연리 들판에 재두루미 수십 마리가 무리 지어 먹이를 먹고 있다. 한겨레 박경만 기자

2020년 한가위에 이어 이번 설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국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직계가족이더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꼭 4명까지만 모여야 합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직후여서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2020년 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입춘이 지났어도 아직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향 부모님 뵈러 가는 길은 조심스럽고, 자식들 얼굴 보러 움직이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젠 ‘민족 대이동’이란 말도 농경사회 유물로 남을 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우동뉴스’(우리동네뉴스)를 준비했습니다. 명절에도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겨레> 전국부 소속 기자 14명이 우리 동네의 따끈한 소식을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고향 소식에 목마른 독자에게 ‘꽃소식’이 되길 바랍니다. _.편집자주

1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으로 국내 대표적 겨울 철새 도래지인 강원도 철원군 양지리 들녘엔 적막감이 감돌았습니다. 예년 같으면 두루미와 재두루미, 고니, 큰기러기 등 멸종위기종 철새로 시끌벅적했을 한탄강 두루미탐조대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020년 11월16일부터 운영을 중단한다’는 펼침막이 내걸렸고, 이길리 한탄강변엔 두꺼운 얼음이 꽁꽁 얼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243-1호 독수리의 월동지인 토교저수지 둑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차량이 하얀 가루를 내뿜으며 소독약을 뿌립니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한 관광객은 “조류독감 방제한다고 철새 서식지에 마구 소독약을 뿌려대면 새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남겠냐. 새들을 내쫓기보다 농가에서 더 철저히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민통선) 밖의 또 다른 철새 도래지인 대마리에도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가족 단위로 서너 마리씩 드문드문 보일 뿐 비슷한 풍경이었습니다. 문득 하늘을 보니 두루미 한 가족이 남쪽 휴전선 감시초소(GP)를 지나 북녘을 향해 날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남과 북, 경기도와 강원도, 연천과 철원 등 틈만 나면 편가르기를 하려 하지만 두루미에게는 풍부한 먹이터와 안전한 휴식터, 잠자리보다 중요한 게 없을 것입니다.

서식 환경이 좋아진 영향으로 증가세

예로부터 두루미는 평화와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현재 전세계에 이동하는 개체수는 2천 마리 미만으로 추정됩니다. 그중 절반 이상이 한반도 DMZ 접경지역에서 겨울을 납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됐고,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 제202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재두루미는 세계적으로 6천 마리 이상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역시 천연기념물(제203호)입니다. 두루미류는 해마다 10월 말 강화·파주·연천·철원 등을 찾아와 겨울을 보낸 뒤 이듬해 3월 러시아 시베리아 습지와 중국 북동부, 몽골 대초원으로 돌아갑니다.

이날 철원평야를 누비는 두루미를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올겨울 조류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속에서도 DMZ 민통선 일대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는 예년보다 늘었다고 합니다. 철원에서 두루미 모니터링을 수십 년간 해온 최종수 철원두루미협의체 부회장은 “현재 철원에는 두루미 900~950마리, 재두루미 6천~6500마리 등 모두 7천~8천 마리의 두루미류가 월동 중”이라고 말합니다.

철원두루미협의체는 한국조류협회, 한국두루미보호협회 철원지부 등 10개 단체와 양지리·이길리·대마리 등 접경지역 5개 마을이 참여한 연합단체로, 연천 두루미 보호단체 등과 연대해 두루미 보호를 비롯해 생태관광, 두루미 브랜드 개발 등 이용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철원에선 두루미 수가 2001년 550여 마리에서 2020년 1179마리로 20년 새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재두루미도 2001년 1600여 마리에서 2020년 4870마리로 세 배가량 늘었습니다.

연천에서도 2020년보다 각각 100~200마리 정도 두루미류가 늘었습니다. 1월15일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와 경남과학기술대 이수동 교수팀의 조사 결과, 두루미 460마리와 재두루미 705마리가 관찰됐습니다. 2020년에는 두루미 396마리, 재두루미 507마리가 관찰됐습니다. 파주도 임진강 유역 민통선을 중심으로 두루미류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파주환경운동연합이 1월20일 민통선 마을인 군내면 백연리(통일촌) 들판에서만 재두루미 125마리와 두루미 4마리, 독수리 14마리 등을 확인했습니다. 이수동 교수팀은 1월3일 백연리 들판 인근 도라전망대에서 DMZ 생태조사를 통해 두루미류 226마리를 확인했습니다. 종합해보면, 도라산과 임진강 주변 파주 DMZ 일원에는 두루미류 300~400마리가 월동 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0년 파주에서는 두루미 51마리, 재두루미 293마리가 관찰됐습니다.

고속도로 나들목 후보지인 파주 들녘

전문가와 접경지역 두루미 보호 활동가들은 두루미류 증가 원인을 중국·일본 쪽 서식지 훼손과 우리 접경지역 주민의 보호 노력 때문으로 분석합니다. 최종수 부회장은 “민통선 안 볏짚 존치와 무논 조성 등 보호 노력으로 서식 환경이 좋아진 영향일 것”이라며 “전세계에 개체수가 극히 적은 두루미는 한계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체수가 많은 재두루미나 흑두루미는 우리의 보호 노력에 따라 앞으로 더 늘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최 부회장은 “날씨가 더 추워지면 일본으로 내려가던 재두루미가 온난화 영향으로 최근 몇 년간 1천 마리 이상 철원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증가세가 계속될지 의문입니다. 백승광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공동대표는 “개체수가 급증하자 먹이터가 부족한데다 철원의 두루미 탐조대 폐쇄로 사진가 등 방문객이 연천으로 몰려와 서식지 교란이 심하게 일어나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강화에서 김포, 고양, 파주, 연천, 철원으로 이어지는 국내 두루미 서식지 환경이 민통선 축소와 개발로 인한 농경지 훼손 등으로 날로 악화되는 탓입니다. 특히 개발 압력이 높은 파주 백연리 들녘은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나들목 후보지여서 국토교통부의 계획대로 건설될 경우 서식지 파괴가 불가피합니다. 노현기 파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환경영향평가에서 새들의 영향권으로 분류되는 1㎞ 범주 안에 수백 마리 두루미류가 안정적으로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들목이 들어서면 두루미의 먹이터와 은신처가 없어져 서식 공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철원과 연천에서 추진되는 민통선 축소는 두루미에게 최대 위협 요인입니다. 실제 철원 양지리는 2010년 민통선에서 제외된 뒤 대규모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무분별하게 들어서, 두루미 개체수가 과거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백승광 대표는 “연천에서 민통선 북상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망제여울(빙애여울)과 장군여울 출입이 자유로워져 두루미의 집단 서식이 어려울 것”이라며 “군남댐~필승교 구간을 천연기념물 보전지역으로 지정해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수동 교수는 “우리나라는 순천만을 제외하면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기존 논이 축사, 비닐하우스, 복토 등으로 용도가 전환돼 서식처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며 “두루미 서식지 개발이나 민통선 축소에 앞서 생태 측면에서 충분한 조사와 보호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서식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합니다.

철원·연천·파주=박경만 <한겨레> 기자 mania@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