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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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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노후 원전 옆에서 불장난

이미 결정난 노후 원전 월성 1호기 폐쇄 두고 시비 걸어…
“감사원, ‘정부의 압박으로 폐쇄’ 방향 잡고 조사하는 듯”
등록 2020-06-27 06:19 수정 2020-06-28 00:38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상 앞)과 탈원전 단체 관계자들이 6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월성 1호기 감사원 감사 관련 시민사회 입장’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단상 앞)과 탈원전 단체 관계자들이 6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월성 1호기 감사원 감사 관련 시민사회 입장’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성 1호기가 전혀 의도치 않게 정치적 쟁점의 한가운데로 와버렸습니다.”

6월24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월성 1호기 경제성·위법성 평가 검증 토론회’(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에 참석한 송갑석 민주당 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여당 간사)이 토론회를 여는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송 의원 말대로 경북 경주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원전) 1호기를 두고 여야가 21대 국회 문을 열자마자 충돌하고 있다.

2019년 원안위 영구 정지 결정

2018년 6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는 월성 1호기 폐쇄를 의결하고, 2019년 12월 원전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결정했다. 미래통합당과 친원전 단체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며 멀쩡한 원전을 멈춰버렸다”고, 민주당과 탈원전 단체는 “월성 1호기는 돌릴수록 손해가 나는 원전으로,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맞서며 논쟁 중이다.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과정이 적절한지를 따지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도 곧 발표될 예정이다. 여야와 탈원전·친원전 단체는 6월 들어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잇달아 열며 “정치적 감사는 안 된다”고 감사원을 압박한다. 가동을 멈추고 은퇴한 노후 원전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두 번째로 가동을 멈춘 월성 1호기를 둘러싼 싸움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탈원전 정책)의 앞날을 좌우할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월성 1호기는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2017년 6월 가동 중단과 폐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원전(1983년 4월 가동)이다. 국내 전체 발전 설비량의 약 0.5%(67만9천㎾·2019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월성 1호기가 논란이 된 계기는 한수원이 2018년 6월 원안위가 허가한 원전 운영 수명(2012년 11월 설계 수명이 만료됐으나, 원안위 허가로 10년 수명을 연장해 2022년 11월 가동 중단 예정)보다 4년 빨리 폐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당시 월성 1호기의 불확실한 경제성과 안전성을 두루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반대하던 통합당은 시장형 공기업인 한수원의 결정이 정부의 압박에 따른 것이고, 조기 폐쇄를 위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낮춰 잡았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은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밀어붙여, 결국 2019년 9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감사원 감사요구안을 의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채익 미래통합당 의원(단상 앞)이 6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월성 1호기 감사원 감사 발표 촉구 및 감사원장 응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채익 미래통합당 의원(단상 앞)이 6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월성 1호기 감사원 감사 발표 촉구 및 감사원장 응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용률 떨어지고 재가동 사실상 어려워

통합당과 친원전 단체들의 주장에서 핵심은 2009년 5925억원을 투입해 노후 설비를 개선했기에 경제성 있는 원전을 조기 폐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원전의 경제성은 원전 이용률(전력 생산능력 대비 실제 생산량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데, 통합당과 친원전 단체들의 주장은 월성 1호기가 가장 최적의 상태로 전력을 생산하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한수원은 삼덕회계법인에 의뢰해 받은 경제성 보고서를 토대로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했다. 경제성 보고서는 월성 1호기 이용률을 낙관(80%), 중립(60%), 비관(40%) 세 경우로 나눈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용률 80%로 2022년까지 4년간 가동하면 1010억원, 60%면 224억원, 40%면 -563억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계산됐다.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월성 1호기 이용률은 54.4%다. 한수원은 노후한 월성 1호기가 손익분기점을 넘는 이용률을 보일지 불확실하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포항·경주 지진에 따라 안전 기준이 강화돼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실제 월성 1호기가 잦은 고장과 경주 지진(2016년)으로 정지 기간이 길어 연평균 이용률은 떨어지는 추세였다. 2012~2017년 60.4%에서 2014~2017년 57.5%, 2017년 40.6%의 이용률을 보였다. 월성 1호기는 전력 생산 원가가 판매 단가보다 높아, 2008~2017년 연평균 1천억원 넘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통합당과 친원전 단체는 “권력 집단의 폭거로 추가 영업이 가능한 새 차를 폐기하는 꼴”(6월18일 국회 기자회견)이라며 경제성 평가가 축소됐다고 주장한다. 월성 1호기 이용률은 올라갈 것이고, 계속 돌릴수록 이익이 난다는 주장이다.

논란이 계속되더라도 월성 1호기 재가동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재가동하려면 일정 기간의 준비가 필요한데, 가동이 가능한 기간은 2년5개월밖에 남지 않은 까닭이다. 현재 월성 1호기를 재가동해야 할 만큼 전력 사정이 나쁘지도 않다.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이 적절치 않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단(2017년 2월)이 나와 2022년까지 월성 1호기를 가동해야 한다는 근거도 무너졌다. 이를 알면서도 통합당과 친원전 단체 등이 논란을 이어가는 것은 2023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차례로 노후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현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로 읽힌다.

감사원 감사 따라 또다시 논란에 오를 수도

여야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애초 지난해 말부터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적절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던 감사는 계속 결과 발표가 미뤄지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4월 감사 책임자가 교체되고 5월 초 보수언론에서 월성 1호기를 두고 최재형 감사원장과 감사위원들의 갈등설을 부각했다. 감사위원들이 정부 눈치를 봐, 최 감사원장이 철저한 조사를 주문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가 나온 뒤, 감사원의 감사가 이전과 다르게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감사원은 6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한수원 직원들과 폐쇄 결정을 내렸던 한수원 이사들을 계속 불러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받은 이들 사이에서 “이전 감사와 강도가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감사원 조사를 받아온 한 인사는 <한겨레21>에 “이전 조사와 달리 정부의 부적절한 압박으로 월성 1호기를 폐쇄했다는 방향을 잡고 조사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최근 한무경 통합당 의원은 “탈원전 정책은 청와대와 정부의 직권남용”이라며 청구한 공익감사(2019년 6월 정갑윤 전 통합당 의원이 청구)의 감사 진행 상황을 감사원에 서면 질의했다. 6월24일 감사원은 한 의원에게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절차가 적정했는지에 대해 감사를 준비 중이다”라고 답했다. 2019년 정부가 확정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담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 외에도 안전성, 지역주민 의견, 사후 처리 비용,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다. 감사원 쪽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 중”이라고 확대해석에 선을 긋는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라 정부의 노후 원전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등의 정책 추진이 또다시 논란에 오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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