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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시진핑, 엇갈린 만남

등록 2022-09-06 07:36 수정 2022-09-09 22:59

“양국은 수교 이래 다방면에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 양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협력을 강화해 양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를 달성해나가길 희망한다.” -윤석열 대통령

“세계가 새로운 변혁기에 들어섰다. (…) 윤석열 대통령과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수교 30주년을 새 출발점으로 삼아 양측이 대세를 파악하고, 방해를 배제하며, 우정을 다지고, 협력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22년 8월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날 저녁 두 나라는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기념 리셉션을 열어 자축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축하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두 정상의 메시지는 뉘앙스가 묘하게 엇갈립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희망”하며 “주석님을 직접 뵙고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메시지에는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언중유골입니다. ‘새로운 변혁기’ ‘대세 파악’ ‘방해 배제’ 같은 표현은 미국과 중국의 날카로운 패권 경쟁 구도에서 한국의 처신에 대한 은근한 압박으로 읽힙니다. 앞서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포괄적 전략 동맹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와 기술 동맹,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 동맹까지 아우릅니다. 그 핵심 목표가 ‘중국 견제’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1428호 표지이야기로 ‘중국의 꿈, 한국의 현실’을 다뤘습니다. 시진핑 집권 10년 새 중국의 변화와 국제 정세, 미-중 경제전쟁의 사이에 낀 한국,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을 쓴 저자 인터뷰 등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다각적으로 짚었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가 냉전 종식의 훈풍을 타고 왔다면, 30년이 흐른 지금의 세계는 신냉전의 찬바람이 거셉니다.

올해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몽’을 제시한 지 꼭 10년째이기도 합니다. 2022년 가을에 집권 연장이 확실시되는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꿉니다. 중국에선 자신감 넘치는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애국주의가 커져갑니다. 우려스럽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10~20대 청(소)년 세대에 만연한 혐중 정서는 위험수위를 오르내립니다.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에서, 관련 기사들에 달린 댓글의 상당수는 거친 혐오와 노골적인 편향을 드러냅니다.

물론 온라인 댓글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호와 협력이 쌍방향이듯, 편견과 혐오도 쌍방향입니다.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몰이해는 편견과 혐오의 자양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막연한 혐오와 멸시, 두려움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기회와 위험을 냉정하게 따지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공통분모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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