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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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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가 사막이 되고 있어요

등록 2022-06-18 13:15 수정 2022-06-19 01:43

참 예쁜 왕벚나무였습니다. 서울에선 간판을 가린다고, 또 전선에 닿는다고 손쉽게 나뭇가지가 잘려나가는 까닭에, 이렇게 수형(나무의 전체적인 모습)이 잘 살아 있는 왕벚나무를 만나긴 쉽지 않습니다.

제주 제성마을 ‘삼춘’(제주말로 ‘이웃어른’)들이 40년 전 마을 입구에 심었던 왕벚나무 14그루 가운데 간신히 살아남은 2그루는, 사람 20명 정도는 넉넉하게 품어줄 긴 팔을 사방으로 뻗고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삼춘들이 집 밖으로 나와 여기 왕벚 그늘에서 종종 모이는 이유입니다.

‘자르긴 쉬워도 키우긴 어려운데, 어른들이 저렇게 나서게 해야 했느냐’. ‘다시 40년을 기다려야 그런 나무 되는 거잖아요.’ ‘할머니들 큰 용기에 감사드리고 먼 뭍에서 응원합니다.’ ‘오래된 나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성마을 팔구순 삼춘들의 분투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응원하는 댓글이 온라인 기사에 달렸습니다. 삼춘들이 행동에 나선 것도 안타까움에서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2022년 5월17일 취재할 때, 베어진 왕벚나무 중 한 그루의 밑동에 곱게 지푸라기가 덮인 것을 봤습니다. 제성마을 삼춘 한 분이 덮어놓았다고 합니다.

“가슴이 짜개지는 것 같았다”며 왕벚나무 나뭇가지로 꺾꽂이 화분 100여 개를 만들고, 마을회관 화단에 나무뿌리 조각을 심고, 물 주고, 기도하는 손길을 우리가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제주도답게 제주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지켰으면….’ ‘조금 편해지자고 제주를 서울처럼 만들 필요 없어요.’ ‘제주도에 아우토반이 필요한가?’ ‘2주 전 휴가로 월정리를 다녀왔는데, 바다에 생물이 없어 놀랐습니다. 이유가 있었군요….’ 또 다른 표지이야기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제성마을 벌목,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 강행 시도, 비자림로 공사 재개 등을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규탄한 것은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제주도의 ‘일방통행식 행정’이었습니다. 제주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자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막힘 없는 차량 통행을 목표로 삼을지, 시속 20~30㎞ 느릿느릿 가더라도 수십 년 된 거목을 보호할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의논해보자는 겁니다. 제2공항을 지을지, 더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입도객을 제한할지 결정하기 전에 제주도 자연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자는 것입니다.

포털에서 제주 구좌읍 월정리를 검색하면 하수처리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밭담테마공원’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직접 가보니 하수처리장은 푸른 기왓장이 얹어진, 겉으론 근사해 보이는 건물이었지만 지독한 하수 냄새까지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월정리 해녀들은 1997년 동부하수처리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그 흔했던 우뭇가사리조차 없다”며 병든 제주 바다를 증언했습니다.

월정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2022년 4월 녹색연합이 제주 연안 조간대(썰물에 물이 빠져 드러나는 경계지역) 43개 지점의 갯녹음(해조류가 사라지고 암반 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 현황을 2~3월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바다의 사막화’라는 갯녹음이 모든 지점에서 ‘심각’ 또는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에 참여한 한 해양생태 전문가는 “제주 바다는 이미 생태적으로 회복할 힘을 완전히 상실해 생태적 임계점을 넘어섰다. 발상의 전환 없이 현재 바다 상황을 바꾸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10년 뒤, 20년 뒤 제주 바다와 산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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