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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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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서울대를 꿈꿔보면 어떨까요?

등록 2022-03-08 15:05 수정 2022-03-09 23:54

‘좋아요’ 43건, ‘화나요’ 72건, ‘댓글’ 106건.

제1402호 표지이야기 ‘10개의 서울대’의 한 기사에 달린 독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전국의 거점국립대 9곳에 정부 재정 투자를 집중해 이들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전국에 명문대를 늘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과 대입 시험의 과열을 완화하자는 것입니다.

뜻밖으로 부정적 반응이 많았습니다. ‘화나요’가 ‘좋아요’의 1.7배에 이르렀고, 댓글도 부정적 내용이 더 많았습니다. 가장 많은 부정적 반응은 ‘서울대는 늘어날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투자를 해도 서울대와 서울의 주요 사립대가 상위권을 과점한 대학 서열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었습니다. 서울대가 서울대인 것은 희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많은 부정적 반응은 서울대 같은 명문대를 늘리겠다는 생각은 ‘진보의 헛된 꿈’이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1970~1980년대까지 서울의 사립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지역 거점국립대의 위상이 낮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짧은 기간에 서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포항공과대학(포스텍)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은 재정 투자가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정부는 국립대에 적절히 투자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재정을 사립대에 쏟아부었습니다. 국립-사립을 막론하고 재정 투자가 충분한 대학들은 명문대로 성장했습니다. 둘째로는 그동안 수도권 집중과 지방 쇠퇴가 더 심각해졌다는 점입니다.

현재처럼 서울대와 서울의 일부 사립대가 계속 대학 권력을 과점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것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은 대입 시험에만 매달리고, 서열화된 대학들은 경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대학 서열로 사회는 더욱더 불평등하게 경직되고,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은 심각해질 것입니다.

현재 대학 체제의 문제점을 단 하나의 수단으로 개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1단계로 지역의 거점국립대를 키우는 방안은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합니다. 명문대 수를 늘리고, 대학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지역의 인재와 기업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시작해 한국의 대학을 더 수준 높고, 더 공공적이며, 더 평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방안에 대해 ‘꿈’을 꾸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민주주의 사회도, 선진국도, 10대 경제 대국도 모두 ‘꿈’이었습니다. 꿈꾸는 일이 모두 실현되지는 않지만, 꿈꾸지 않은 일이 실현되는 일은 없습니다. 대학 개혁이 매우 어렵다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너무 일찍 꿈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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