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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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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랑 편견의 강을 건넜어

등록 2021-11-20 08:46 수정 2021-11-21 23:53

‘삐삐언니’의 집은 우리 집에서 223m 떨어져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회사에서 상처받았을 때, 술을 마셔도 갈증이 풀리지 않고 마음이 아플 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저는 그에게 연락해봅니다. “선배, 집에 있어요?” 때로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그는 흔쾌히 저를 초대해줍니다. “응, 지원아. 잠깐 올래?” 도보 3분 거리에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사실 저에게 선배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5년 전엔 제 기사를 고치고 취재를 지시하는 ‘데스크’였거든요. 선배는 기획할 때 열정적이고 기사 고칠 때 냉정한 사람이라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온몸이 다 쪼그라들었습니다. 멀기만 했던 데스크가 친구의 얼굴로 다가온 건 그가 자신이 쓴 책을 제게 건넨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건넨 책의 제목은 이랬습니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완벽한 줄 알았던 선배가 ‘조울병’이라는 고통과 오래 싸워야 했단 사실을 그제야 알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 병에 대해 기자인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알고 거듭 놀랐습니다. ‘양극성 장애’라 불리는 조울병은 “끊임없이 챙기고 돌봐야 하는 만성질환”이고 이 병 때문에 삐삐언니는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투병해야 했습니다. 치열하지만 객관적인 자기인식, 정확하지만 섬세한 언어로 기록된 선배의 투병기는 아프지만 아름답고 따뜻했습니다.

선배 덕분에 처음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편견 없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나와 구별되는 ‘환자’나 범죄를 저지른 ‘위험인물’, 취재해 드러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 ‘친구’인 그 사람이요. 대부분 순간에 나보다 유능하고 튼튼하지만 어떤 순간에 나보다 아프고 약해질 수 있는 사람. 이번 취재도 사실은 삐삐언니의 거실 식탁에서 시작됐습니다. “지원아.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연대가 출범한대.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아. 기회가 되면 한번 들어봐.” 근대사회가 만든 ‘비정상인’의 굴레를 넘어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보도자료와 책, 전문가들로부터 출발한 취재가 아니라, 내 친구인 당사자의 조언에서 출발한 취재여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당사자의 말을 듣는 데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같은 이유로 기사 쓰는 일이 더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정신장애를 겪는 이들을 기록한 기사는 대체로 부정적인 낙인론을 동반했지만 긍정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기사들도 당사자를 대상화하는 시선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여기에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위적 관점을 넘어서 ‘여기에 우리가 있다. 무서워할 것도, 동정할 것도 없다. 다만 함께 살아가달라’는 그분들의 메시지를 잘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혹여 당사자들의 상처를 건드릴까 인터뷰를 나눌 때마다 충분히 대화하지 못했고, 기사로 옮길 때도 제멋대로 곡해한 것일까 싶어 많은 이야기를 옮기지 못했습니다. 제 편견이 저를 막아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정신장애 나너우리 이야기’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것 아닐까요. 앞으로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질까요. 깊고 넓은 편견의 강을 건널 때 삐삐언니가 우리 곁에 있을 테니 다행입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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