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투표하되 흔쾌하지 않은

등록 2021-02-24 14:19 수정 2021-02-24 22:41

봄같이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습니다.(1월27일) 설상가상으로 굵은 눈송이가 펑펑 내렸습니다.(1월28일) 급변한 날씨가 야속했습니다. 그래도 <한겨레21> 기자 3명(김규남·신지민·박다해)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두 달 남짓 앞둔 이 이틀 동안 서울 종로구와 성동구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유권자의 설 민심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선거 얘기냐”며 손사래를 치는 시민들에게 까이고 또 까였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21대 총선 때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이 박빙의 정당득표율을 획득한 이 두 자치구의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봤습니다. 길거리에서, 시장에서, 상점에서, 주택가에서, 대학교에서, 택시에서 묻고 들었습니다. 성추행 혐의를 받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치르게 된 이번 보궐선거에 대한 ‘표심’을 살펴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민들은 1년 넘게 우리 삶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생활고를 한결같이 토로했습니다. 어떤 이는 “2020년에 카페 운영을 6개월 쉬었다. 이렇게 어려움이 계속되면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든다”며 막막해진 생계를 걱정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여행사에 오래 근무한 아들이 1년 가까이 무급휴직 중이다.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후보를 찍을까 한다”며 자식의 밥벌이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뽑힐 새 서울시장에게 “코로나19 좀 잘 잡아서 일상이 회복되게 해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틀 동안 64명의 유권자를 취재했습니다. 절반 약간 넘는 35명이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35명 중 15명은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거라고 했습니다. 이보다 5명 많은 20명은 ‘민주당 심판론’을 제기하며 지지를 철회(10명)하거나 ‘민주당 책임론’을 내세우며 지지 유보(10명) 속내를 밝혔습니다. 이번 선거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있음을 현장에서도 확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표심들에서 여야 후보 모두에 대해 ‘흔쾌한 지지’의 마음이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민주당 계속 지지 의사를 나타낸 유권자 사이에서는 “뽑고 싶은 후보는 없지만, 최악만은 막자는 심정으로 투표하게 될 것”이라는 ‘차선 또는 차악 투표론’이 많았습니다.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이나 제3지대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한 유권자도 “이번에는 차라리” “이번에는 아예 새로운” 등 소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했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 단일화가 되느냐(양자 구도) 마느냐(3자 구도)에 따라 선거 결과가 출렁입니다. 이 안갯속에서 누가 새 시장이 되든 ‘투표하되, 흔쾌하지 않은’ 표심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지지세력이나 자기 진영만이 아닌 더 많은 시민의 목소리에 귀와 마음을 열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 정치가 필요한 때입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