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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7년간의 거짓말

등록 2021-02-22 18:14 수정 2021-02-23 00:00
1351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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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승객 구조 실패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등)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2월15일 취재진 앞에서 유족에게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악어의 눈물’과 다를 바 없는 그의 몸짓에 넌더리가 났습니다. 반성이라는 걸 한다면 그가 7년간이나 거짓말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를 인지한 때를 오전 9시5분, 상황실에 도착한 때를 9시10분이라고 줄곧 주장해왔습니다. 오전 8시께 출근해 5층 사무실에서 일하다 9시5분께 “진도 인근 관매도 해상에서 다수 인원이 승선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9시10분께 6층 상황실 옆 위기관리실 회의실로 이동했다고 했습니다. 감사원 조사에서도,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한결같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록들은 그가 9시28분께 상황실에 도착했음을 보여줍니다.

09:28 해경 본청 상황실-본청장실 경비전화 녹취록

“야, 청장님 오셔야 돼.”(기획담당관)

“예, 지금 올라가셨습니다.”(청장실)

09:28 해경 본청 상황실-서해해양경찰청 경비전화 녹취록

“여기, 지금 본청장님이 입청하셨습니다.”(해경 본청)

“예예.”(서해해양경찰청)

세월호 사고가 해경에 처음 신고(오전 8시54분)된 지 30분이 지나도록 김 전 청장이 상황실에 없어 구조 지휘를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9시10분 상황실에 들어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15년 12월15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서의 발언입니다.

“청장님이 정말 9시10분경에 (상황실에) 올라가신 거 맞나요?”(이호중 특조위 위원)

“틀림없는 사실이고 여기 우리 옆에 계신 우리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이나 그 당시에,”(김 전 청장)

“9시30분 근처에 (상황실에) 올라간 것 아닙니까?”(이호중 위원)

“그런 질문을 받는다는 게, 위원님. 다른 질문을 해주십시오. 기본적인 사항 아니겠습니까?”(김 전 청장)

“기본적인 사항”을 뒤집은 것은 김 전 청장 자신입니다. 2021년 1월11일 피고인이자 증인으로 법정에 섰을 때 변호인의 질문에 그가 답합니다.

“사고 당일 상황실에 임장한 시각이 언제인가요?”(변호인)

“9시28분으로 알고 있습니다.”(김 전 청장)

“상황담당관 임근조로부터 ‘진도 인근 관매도 부근에서 여객선이 침몰 중에 있다’라는 보고를 받은 즉시 상황실로 임장했는데, 그 시각은 검찰에서 9시28분이라고 확인해준 것이지요?”(변호인)

“예.”(김 전 청장)

김 전 청장이 말을 바꾼 이유는 간명합니다. 세월호 사고를 늦게 보고받은 탓에 세월호와 교신해 상황을 파악하거나 구조계획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 구조 지휘한 일이 없는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자 형사처벌을 피할 새로운 전략을 짠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업무상 과실이 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7년간 거짓말한 김 전 청장에게 그 어떤 책임 추궁도 없이 “9시19분경 이후에야 (세월호)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하였고, 그 후 지체 없이 상황실에 임장했다”고 말이지요.

세월호가 침몰하고 304명을 잃은 2014년, 우리 사회는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그 상흔은 한층 깊어졌습니다.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면 결국 면죄부를 받아낼 수 있다는 나쁜 교훈만이 남았으니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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