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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단죄수단은 단 하나

등록 2021-02-06 11:59 수정 2021-02-0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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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2월4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법관 탄핵 소추 발의는 헌법 사상 세 번째이지만, 통과는 처음입니다.

이날 표결을 앞두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 판사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재판의 독립)를 위반했다고 밝히며 ‘재판의 독립’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의 호소를 귀로 듣고 내가 제출한 증거를 직접 읽은 바로 그 판사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독립해서 판단한 판결이어야만 헌법이 인정하는 정당한 판결이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임 판사는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습니다. “법정에 한 번 들어와보지도 않고” 다른 판사의 “판결 내용을 수정”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한 2014년 2월~2016년 2월 그가 맡지 않았던 세 건의 재판에 관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보도한 혐의(명예훼손)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과 △쌍용자동차 집회에 참석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의 체포치상 사건, 그리고 △유명 야구선수 원정도박 사건의 재판 내용과 결과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피고인도, 검사도, 변호사도 몰랐”습니다.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몰래 한 것”입니다.

임 판사는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고, 이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2020년 2월 판결문에서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진행을 유도하는 (임 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여섯 차례나 적습니다. 그런데도 무죄를 선고했는데,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는 애초에 다른 판사의 재판에 관여할 권한(직권)이 없기에, 그 권한을 남용하는 것(직권남용)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징계 대상은 된다고 했지만 이미 두 사건(세월호 7시간 사건과 민변 체포치상 사건)의 징계시효(3년)가 끝난 상태라, 임 판사는 견책처분(서면으로 하는 훈계)만 받았습니다.

그를 단죄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 남았습니다. 민주당 이탄희, 정의당 류호정, 열린민주당 강민정,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 4개 정당 소속 의원 161명이 2월1일 임 판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이유입니다. 탄핵소추안은 4일 무기명 투표를 거쳐 재석 288명, 찬성 179명, 반대 102표, 기권 3표, 무효 4표로 가결됐습니다. 탄핵 가결 정족수(재적의원 과반, 151명 이상)를 훌쩍 넘어선 수입니다.

이번 탄핵소추안이 의미 있는 것은 잘못된 과거와 결별할 단초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의혹 사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영철 전 대법관의 재판 개입 행위와 만납니다. 2008년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던 그는 다른 판사들이 심리하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관련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습니다. 당시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신 대법관이 재판 내용과 진행에 관여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국회가 72시간 이내에 표결하지 않아 탄핵소추안은 자동 폐기됐습니다. “국회의 직무유기”로 “판사는 헌법을 위반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나쁜 선례가 남았고, 2년 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위헌적 행위’는 더욱 노골화됐습니다.

탄핵소추안 의결로 공은 헌법재판소에 넘겨졌습니다. 헌재는 헌법을 위반하는 재판 개입 행위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임 판사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잘못된 악순환이 끊어지고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 출발선에 드디어 섰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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