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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다시, 학교

등록 2020-09-12 00:25 수정 2020-09-12 01:14
1330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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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접속’으로 만난 대학원 교수는 현란한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띄운 채 쉴 새 없이 떠드는데 이어폰을 낀 나는 자꾸 딴짓합니다. 학술용어를 검색하려고 휴대전화로 포털 창을 열었다가 속보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이 발표할 때는 음량을 줄여놓고 깜빡 졸기도 합니다. 어른이 이럴진대 아이들이 디지털 원격수업에 싫증을 내는 게 당연하지요.

코로나19로 인해 대다수 학생이 올해 학교에 간 날은 많아야 60일가량에 그칩니다. 학교를 잃은 아이들의 학습 의욕은 떨어지고 일상은 깨지고 관계는 끊어지고 있습니다. 제1330호에서 초·중·고교 학생 9명과 학부모 7명, 교사 10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하루를 들여다보니 그랬습니다.

학교 가는 시간이 없어져 아침은 여유로워졌지만 수업은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입니다. 휴대전화로 수업을 들으며 누워 있거나 잠을 잡니다. 진도 빼기에 바쁜 동영상이 지루해 집중하기가 어려운 거지요. 그렇게 중위권이 무너져 성적은 하향 평준화가 되고 학습 격차는 심각해집니다. 게다가 집에 갇힌 아이들은 외로움에 몸부림칩니다. 공부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였는데 친구는 없어 마음의 병을 앓습니다. 한 상담교사는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상담) 일이 많다”고 합니다.

혼란은 우리나라만 겪는 문제가 아닙니다. 유니세프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전세계 학생 수의 90%가 넘는 15억 명이 임시휴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중 3분의 1에 가까운 4억6300명은 디지털 원격수업에도 참여하지 못했답니다. 학생도, 교사도 컴퓨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아 원격수업을 받는다고 해도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홀로 버티고 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은 뒤,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성장의 공간이 학교라는 게 확인된 셈이죠.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희망의 불씨도 역시 학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동영상 강의를 보는 일이 없습니다. ‘불확실한 시기에도 (아이들이) 배움의 기쁨’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예산을 쏟아부은 덕분입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원격수업에 흥미를 갖도록 머리를 짜냅니다. 국어 선생님은 만화 시리즈물을 읽고 분석 글을 쓰라 하고 가정경제 선생님은 직접 요리하고 사진을 내라고 하는 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교육의 새판을 짜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담임교사가 학생, 학부모에게 자기소개와 교육철학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며 ‘이럴 땐 이런 음악’이라는 주제로 음악 수업을 합니다. 아이들은 상황별 음악을 선곡해 그 이유를 설명하며 공감받고 마음의 위로를 얻습니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아이들의 감정 표현이 분명해지고 글쓰기 실력이 늘어난답니다. 폐허 속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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