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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전교조 노조 지위 회복, 오래 걸릴 일이었나

등록 2020-09-05 01:11 수정 2020-09-05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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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9월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합법노조의 지위를 되찾을 길이 열렸다는 뉴스를 접하며 든 생각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해직자가 가입해 있다는 이유로 ‘법률상 노조가 아님’(법외노조)이라고 통보한 지 7년. 그사이 법외노조가 된 탓에 전교조 교사 34명이 해직돼 교단을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 고용부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 규약(1999년 제정)이 노조 가입 자격을 ‘재직 중인 교원’으로 한정한 교원노조법에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따라 법외노조로 통보한 것입니다. 조합원 6만 명 가운데 고용부가 문제 삼은 해고자는 단 9명이었습니다. 법외노조 통보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졌지만 전교조에 ‘불법 딱지’를 붙일 계획은 그 이전에 세워졌습니다. <한겨레21> 제1313호에서는 전교조 법외노조가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치밀한 계획으로 실행됐다는 사실을 밝한 바 있습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두고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선 지난한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해왔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날 전교조 손을 들어주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습니다. 대법원은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사실상 노조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행정부가 법률상 근거나 위임 없이 헌법상 보장된 노동삼권을 제약했다고도 했습니다.

험난한 길을 돌아왔지만 사실 전교조 법외노조를 푸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노조 아님 통보’를 직권취소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첫 단추가 박근혜 정부의 행정처분이었기에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릴 의무가 없었습니다. 정부가 결정하면 전교조와 고용부의 법정 공방은 중단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국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실업자·해직자의 노조 할 권리 등을 보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비준해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사법부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고 국제사회 표준에 크게 뒤처진 노동 관련 법률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기본적인 국제 노동 기준을 담은 핵심 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 보장’(87·98호)과 ‘강제노동 금지’(29·105호) 등 네 가지를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20대 국회 때 정부가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폐기됐습니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상황이 다릅니다. 여당이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의석수 176석을 확보한 만큼 통과 가능성이 훨씬 커졌습니다. 국제사회의 압박도 거세졌습니다.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가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것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해당한다며 분쟁 해결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이제 때가 됐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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