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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위기를 위기로

등록 2020-08-29 01:52 수정 2020-08-30 01:23
1328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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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의 한 양계장에 방역복을 입고 들어간 이수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더위에 지쳐 배를 바닥에 대고 숨을 헐떡거리는 닭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깃털로 온몸을 감쌌지만 땀샘이 없는 닭은 양계장의 온도가 33도 넘어가면 죽는답니다. 장장 54일간에 걸친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수십만 마리가 떠내려갔는데 폭염으로 또 폐사할까 어른들은 걱정했습니다.

충북 충주의 세고개마을은 18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가족처럼 지내온 이웃을 산사태로 잃은 탓에 마을은 어둡고 쓸쓸했습니다. 자식처럼 키운 콩과 깨도 산에서 쏟아진 진흙에 뒤범벅돼 다 갈아엎었습니다. 물난리, 산사태를 처음 겪는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박선영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이 비의 이름이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것’을 압니다.

환경부와 기상청이 펴낸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보면, 한반도의 장마는 1990년대 후반 이후 강도가 세지고 시작 시기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여름 강수량 증가는 북서태평양고기압이 확장되면서 습한 공기가 늘고, 인도양 해수면의 온도 상승으로 대기 중 수증기 공급량이 늘어난 것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두 가지 모두 기후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의 기온 상승 속도도 세계 평균보다 빠릅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13.5도 정도였습니다. 1912년부터 2017년까지 100여 년 동안 지표 기온이 1.8도 올라 세계 평균(1.4도)보다 상승률이 높았습니다. 미래의 상승 속도는 더 빠르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당한 정도로 감축하면 21세기 말에 현재보다 2.9도, 저감하지 않으면 4.7도 이상 오를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 기온 상승치 2.5도, 4.6도보다 다소 높은 수치입니다. 평균기온이 오르면 폭염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벼와 감자를 비롯한 주요 식용작물의 수확량이 뚝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류·해조류 등 양식산업도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제1328호에서는 청소년기후행동의 10대 활동가들과 함께 ‘2020년 기후위기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남원의 양계장, 충주의 산사태 피해 현장과 더불어 따뜻한 겨울과 봄 냉해 탓에 사과나무를 베고 체리나무를 심은 경북 청송군 과수원, 뜨거워진 바다에서 물고기를 양식하며 애태우는 전남 완도군 가두리양식장을 둘러봤습니다. 산과 바다, 마을과 농장에서 기후위기를 목격한 10대 활동가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겐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넷제로(net-zero·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돼 순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탄소중립 상태)를 하루빨리 달성해야 합니다.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고 밀어두지 말고 지구 다른 편에서 그렇듯 ‘(기후)위기를 위기처럼 다룬다’(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 그것부터 우리 함께 해봅시다. 전기밥솥 코드를 뽑고 재활용 분리배출을 잘하고 삼겹살을 덜 먹는 것, 그 사소한 일상의 변화가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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