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피었습니다. 자리 뒤편 때 낀 우중충한 창가로 흐릿한 노란색 물감이 번졌습니다. 핀 지 며칠 됐을 텐데 오늘에야 보입니다. 개나리가 질 때쯤 이 자리에 왔는데 떠날 때가 되니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2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아흔일곱 번(제1210호~제1306호)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휴가를 핑계로 한 번 빼먹긴 했지만 매주 ‘만리재에서’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부질없어 보이지만 정리할 때 흔히 하듯 셈을 해봤습니다. 같이 일했던 소중한 동료들의 이름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이미 몇은 떠났고 또 몇은 새로 왔습니다. 좋았던 기사도 신통치 않았던 기사도 아쉬운 기사도 머릿속을 스칩니다 .
이 작은 둥지에 다시 변화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시간의 법칙은 뉴스룸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와 몇 명의 기자가 떠나고 새로운 편집장과 기자 몇 명이 인사할 시간입니다. 누구는 신문으로, 누구는 한겨레신문사 안 어딘가로 흩어집니다. 지난 26년 그렇게 사람이 드나들면서 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왔습니다. 몇 사람의 드나듦이 을 함부로 바꿀 순 없습니다.
상투적이지만, 모든 걸 뒤로하고 떠납니다. 하나 품고 가고 싶은 게 있다면 독자란 외마디입니다. 나 이 날 때부터 있던 독자를 저는 입사한 지 20년이 다 돼야 발견했습니다. 기자 중심, 공급자 중심의 세계에 갇혀 독자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얼굴을 마주하니 달리 보였습니다. 자주 볼수록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주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종로에서, 신촌에서, 공덕에서 만나 때론 밤늦도록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름만 떠오르는 분도, 얼굴만 떠오르는 분도, 이름과 얼굴이 모두 떠오르는 분도 있습니다. 햇수로 3년 세 번에 걸쳐 만든 단체대화방의 아이디로 기억되는 독자들도 그리울 겁니다. 모두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종이 구독자가 줄고 있어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더러는 저보다 한겨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솔직히 당황했던 적도 있습니다.
후원해주신 분들을 만날 때마다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하지만 후원자가 기꺼이 돈을 내놓을 만한 의 가치는 뭘까? 저는 잘 모릅니다. 지난해 8월 만난 이미옥 후원·독자님이 들려준 말씀입니다. “마이너스통장을 덜 메우고라도 을 후원한다. …내게는 가치 있는 소비다.” 수만의 독자와 수백의 후원자 한분 한분에게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도 고마웠습니다.
더 바라지도 않으십니다. 그 자리에 있던 송영옥님은 “폐간하지 말고 기사만 써달라”고, 박선영님은 “바라는 건 별것 없다. 없어지지 않는 거다”, 이은주님은 “계속 있어달라”고 말합니다.
지난 2년 버팀목이 되어준 독자와 후원자들 덕분에 은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는 후원·독자님에게 별로 바라는 게 없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어디선가 또 뵙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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