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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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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2번의 감사

등록 2020-03-16 15:53 수정 2020-05-02 19:29

8537만원. 어제(3월11일)까지 모인 후원금입니다. 고맙게도 숫자는 낮아지지 않습니다. 을 아끼는 많은 분의 노동의 대가란 걸 잘 압니다. 커피 한 잔, 책 한 권, 술 한 잔, 외식 한 끼를 접고 보태주셨습니다. 후원자 625분이 2942번(입금 건수)의 ‘포기’를 저희에게 보태주셨습니다.

원래라면 내일, 3월13일 저녁 서울에서 625분 가운데 몇 분이나마 뵐 수 있었겠죠. 후원제 첫돌을 맞아 준비한 후원자와의 만남은 코로나19 탓에 미뤄졌습니다. 후원제 1년 경과를 말씀드리고, 의 고민을 수다스럽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기약할 순 없으나 곧 뵙도록 하겠습니다.

모임은 못했지만 조윤영·장수경 기자가 준비한 기사를 싣습니다. 후원제 시작을 알리는 지난해 창간기념호 표지이야기 속 두 주인공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충남 공주 딸기농장에서 만난 공경숙씨와 경북 영천의 치과의사 곽성순씨입니다. 한 번도 뵙지는 않았지만 두 분 다 얼굴과 글에 새겨진 목소리가 친숙합니다. 그리고 아기 공룡 둘리의 고향에 사는 임화섭씨, 중학교 국어교사를 하다 퇴직한 김인태씨, 지난해 독자·후원자와의 만남 행사 때 어려운 발걸음 해주신 양현주씨 소식도 짧게나마 담았습니다. 인천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의사 김해영씨와 그의 구독나눔으로 을 받는 전북 남원시 새싹작은도서관의 운영자 이경화씨…. 그렇게 모아가다보면 후원자 625분의 얼굴과 목소리가 하나로 그려집니다. 과 겹쳐진 얼굴들은 한목소리로 “지금처럼!” 버텨달라고 하십니다.

기대하거나 당부할 때 흔히 하는 ‘지금보다 더’ ‘더 열심히’ ‘조금만 더’ 따위의 말을 애써 하지 않습니다. 부족하지만 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인 줄 압니다. 지난해 이맘때 연락드렸던 이은주 독자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괜찮은 척하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해라.” 후원제를 하게끔 힘이 되어주고 여러 차례 후원해준 그에게 오늘 다시 연락했습니다. 무엇을 바라냐고 물었더니 역시 “지금처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어두운 곳, 소홀할 수 있는 사회 곳곳을 따스한 시선으로 살펴주고” “흔들리지 않고 정론 직필”해달라고 하십니다.

뉴스룸에 때마다 전북 군산 이성당 빵을 보내주는 후원 독자를 지난달 만났습니다. 생각지 못한 큰돈을 후원해준 그에게 은 어쩌면 일터로 삼는 저보다 더 소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조건 없이, 대가 없이 후원한다는 그에게 오늘 다시 물었습니다. “후원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초심을 잃지 말아달라”는 그는 “‘대가 없이’에 답이 있는데 무엇을 (더) 하시려고요. 그냥 이 생존하는 게 최고지요. 적어도 21세기까지만이라도요.”

후원자의 대가 없는 바람에 편집장으로서 지난해 후원제 시작을 알리며 한 인터뷰에서도 미리 답했습니다. “(후원제는) 의 보도가 백년, 천년 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겁니다.” 지난 한 주 정기 후원자가 다섯 분 늘었습니다. 독자와 함께 계속 더 늘어날 후원자가 버팀목이 되어 을 지탱해준다면 21세기 끝까지 생존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인터뷰에서 했던 약속이 있습니다. “좋은 보도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후원금은 “탐사, 기획, 심층 보도 등 취재에 재투자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3월16일, 이 스물여섯 돌 생일을 맞습니다. 후원자, 먼저는 독자가 있어서 맞게 된 또 한 번의 생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26번째 창간기념호를 냅니다. 표지이야기 ‘도심 속 폐교 위기에 내몰린 임대아파트 옆 학교’는 후원제 첫발을 뗄 때 한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입니다. 서보미·방준호 기자가 호흡 맞춰 취재에 거의 두 달, 변지민 기자가 데이터 분석에 거의 한 달을 쏟아부었습니다. 다른 매체에서 보지 못한, 쉽게 볼 수 없는 기사입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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