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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삶

등록 2020-03-15 16:00 수정 2020-05-02 19:29
연합뉴스

연합뉴스

코로나19 장기화로 정부와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안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모두 힘들지만 더 고통받는 이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될수록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3월11일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1089곳을 대상으로 진행해 공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 기업의 40.5%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재택근무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각각 60.9%, 50.9%가 실시하거나 실시할 계획이지만 중소기업은 36.8%에 그쳤다. 업종에 따른 특수성이 있지만 기업 규모에 따라 재택근무도 격차가 발생한다. 3월12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891명에게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은 29.8%에 그쳤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유급휴가는 먼 이야기고, 코로나19 장기화로 인원 감축 등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부정기적인 일감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프리랜서(운동 강사, 글쓰기 강사 등)의 일감은 끊겼고, 영세 자영업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못하는 노동자 처지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콜센터다. 3월12일 오전 10시 기준, 서울 구로 콜센터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02명에 이른다. 최저임금 수준인 기본급과 ‘콜 수’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콜센터 노동자는 대부분 중년 여성이다. 콜센터는 중년 여성이 비교적 쉽게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다. 한 푼이 아쉬운 이들은 다닥다닥 붙은 일터에 매일 나갈 수밖에 없다.

노동 격차는 삶을 뒤흔든다. 영국 방송 는 최근 ‘코로나19가 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코로나19에 고통받는 아시아 여성들의 모습을 다뤘다. 아이들의 개학 연기로 한국 여성들은 육아와 가사노동의 부담을 더 짊어진다. 중국에선 여성 수백만 명이 실내에 머물면서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늘었다. 홍콩은 필리핀·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40만 명이 해고 위험에 시달리고 마스크나 손세정제 등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보건사회 분야 노동자 가운데 70%가 여성인데 이들은 감염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존 C. 머터의 책 (2016)은 “불평등이 극심한 세상에서는 자연재해의 결과 또한 불공평할 것임을 확실히 짐작할 수 있다. 재난은 어떤 면에서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지만, 각 집단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다르고, 각 집단이 대응할 방법도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각자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불평등과 재난의 관계를 짚는다. 책은 주장한다. 재난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의를 바로잡고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전 사회가 노력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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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블라


SF 소설가가 만든 종교


[%%IMAGE4%%]‘회의주의자’라는 뜻의 과학잡지 한국판 최신호(21호)에는 ‘종교는 어떻게 공중보건을 위협하는가’라는 해리엇 홀의 글이 실렸다. 역사 속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얼마나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는지 보여주는 여러 사례가 실렸다.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을 거부하고, 크리스천사이언스는 질병은 그릇된 신념에 의해 온다고 착각한다. 성수 샘플의 86%는 분변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오스트리아 검사 결과).
종교는 과학과 멀어 보이지만 최신 종교는 과학과 결합한다. 사이언톨로지는 SF 소설가였던 론 허버드가 만든 종교다. 1940년대 뉴욕 SF 소설가들로 구성된 히드라클럽 모임에서 작가들은 원고료 불평을 쏟아냈고, 한 회원이 “종교를 만들면 세금을 안 낼 텐데”라고 말하자 작가들은 너나없이 종교 아이디어를 냈다. 허버드는 이때 나눈 이야기를 발전시켜 이라는 글을 썼고 이것이 사이언톨로지의 바탕이 됐다. 사이언톨로지는 깨달음(스키오)과 이성(로고스)을 합친 말이다. SF 소설가가 만들어서인지 과학과의 친연성도 강조한다. ‘온 우주가 당신을 도운다’와 비슷하게 명상, 텔레파시를 물질·에너지·공간과 결합시킨다. 평신도에서 직위가 올라갈수록 영혼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높은 단계로 가면, 슈퍼마켓 앞을 차로 지나면서 영혼을 보내 유기농 마요네즈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한 과학 연구소의 신자는 영혼을 화성에 보내 데이터를 구하는 일로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를 도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이 영혼은 ‘테탄’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이 종교의 경전인 ‘창세기’에 나온다. 창세기는 신도가 고위직에 도달해 1만달러를 내야 볼 수 있다. (2015년 4월19일자)은 이런데도 사이언톨로지가 종교로 인정받아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번역 ‘뉴스페퍼민트’ 참조).
1984년 종말론이 예언대로 되지 않자, 신자들을 교회에서 데리고 나와 시작된 한 종교는, 성경에 충실하고 논리적이라고 알려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논리에 유독 젊은 청년들이 끌렸다. 신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우주가 자신을 돕는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한국 드라마 같은 상황’도 자주 연출됐다고 한다. 코로나19 시국, 너나없이 종교의 상상력에 골몰하는 요즘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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