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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센델의 질문

21토크
등록 2020-02-15 08:11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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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선로 끝에는 인부 다섯 명이 일하고 있어요. 그대로 두면 다섯 명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기차의 방향을 바꿔 인부 한 명만이 일하는 쪽으로 옮길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2014년 저는 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였죠. 그는 강단에 서서 간단히 인사한 뒤 앞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기차 방향을 바꿔 한 명을 희생하더라도 다섯 명을 살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샌델 교수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번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여러분은 기관사가 아니라 제3자입니다. 기차가 인부 다섯 명을 덮치기 전에 옆에 있는 덩치 큰 사람을 밀어넣어서 기차를 세울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학생들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부분이 다섯 명을 살릴 수 있더라도 한 명을 밀어넣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죠.

두 가지 경우는 어떻게 다를까요?

샌델 교수가 언급한 두 상황은 정의의 두 원칙 ‘공리주의’와 ‘인간존엄성’이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한 명의 목숨을 앗더라도 다섯 명을 살리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 다섯 명을 살리고도 한 명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제1299호 표지이야기 ‘남편을 바이러스 취급 했다’를 통해 하고 싶었던 질문도 바로 이것입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80번째 환자이자 38번째 사망자였던 김병훈씨는 치료받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됐습니다. 그는 기저질환으로 악성림프종을 앓고 있었기에 치료가 필요했지만, 격리된 음압병실을 나가지 못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엔 샌델 교수가 아닌 제가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인부 다섯 명을 치기 전에 한 명을 밀어넣어 기차를 세울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미 한 명을 밀어넣고 기차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명이 여러분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샌델 교수는 숭실대 특강 끝머리에 말했습니다. “정의란 효용의 문제만도 아니고,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도덕적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때 서로의 입장이 충돌한다. 단 하나의 원칙은 서로 대화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공공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바이러스가 찾아왔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정의의 두 원칙은 충돌합니다. 두 원칙은 다수 국민의 안전과 건강, 그리고 소수 감염자(혹은 의심환자)의 신체 자유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 정의를 고민하고 있나요? 충분히 서로의 상황을 듣고 이해하며 대화하고 있을까요?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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