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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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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노동자가 ‘일과 삶의 균형’ 누리려면

등록 2020-01-17 02:49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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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노동 상한제’(주52시간제)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경영계에선 52시간으론 부족하다는 말이 계속 나왔고,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에만 목매고 있었습니다. 이후 계도기간 연장과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가 보완 대책으로 나왔습니다. ‘법 안 지키려는 기업에 정부가 면죄부 줄 생각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쓴 기사가 ‘도둑놈 심보에 누더기 된 노동시간 단축’(제1289호)입니다.

그런데 50~299명 사업장에도 주52시간제가 시행될 즈음(2020년 1월1일)이 되니, ‘국회가 법을 만들었는데 왜 못 지킨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가 계도기간을 1년이나 준 상황에서, 아직도 안 지키고 있는 곳을 지키게 하려면 뭘 해야 하는 것일지도 궁금했습니다. 계도기간에는 말 그대로 지키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경영계가 들었던 논리를 보면 ‘영영’ 못 지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소기업 가운데 이미 주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이 확정된 곳들을 변지민 기자와 함께 찾아다녔습니다.

노동자와 인사담당자를 만나면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완강한 표정의 저임금 노동자의 말을 들으면서 말이죠. 이분께 “덜 받아도 더 쉬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 없었습니다. “원청이 계획 없이 들쭉날쭉 주문하는데 우리가 노동시간을 줄이기는 너무 어렵다”거나 “원청이 단가를 올려주지 않는 한 어렵다”는 말, “사람을 뽑으려 해도 오는 사람이 없다”는 인사담당자의 말을 직접 들으니 답답함도 느껴졌고요.

고작 몇 군데에 지나지 않지만 직접 목소리를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중소기업의 노동시간 단축은 저임금 노동, 원·하청 관계, (특히 제조업에서의) 산업구조, 취업시장에서의 미스매칭(불일치), 더 넓게는 인구구조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최저임금 인상 때 나왔던 얘기와 비슷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을과 을의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 기억하시죠?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종합적인 대책을 미리 준비 못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고요. 노동시간 단축도 똑같았습니다. 중소기업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중소기업 전체의 혁신과 이를 유도하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52시간제를 계기로 더 많은 중소기업에 정부가 지원했으면 합니다. 단순히 몇 달 임금을 보전하는 것을 넘어, 중소기업 노동자가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하는 지원이면 좋겠습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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