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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묵시록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20-01-06 15:57 수정 2020-05-02 19:29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다 문제이거나 부조리하지는 않다. 지속가능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세상에 이성과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더구나 이성과 논리도 다 제각각 아닌가. 그런데 부동산은….

2년 전 서울 개포동에 사는 친구한테 물건을 갖다줄 일이 있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도로에서 만났다. 아파트 단지 옆 커피숍으로 이동해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단지 내 주차 공간이 부족해 2열 주차는 기본이었다. 차를 가진 사람이 살기 불편한 단지 내 25평 남짓 아파트 가격이 13억원이나 한다는 얘기를 듣고선 놀랐는데, 지금 다시 가격을 확인해보니 18억원이 넘는다. 평수는 제쳐놓고 37년 된 아파트 가격에 어이없고, 2년 새 5억원이 올랐다는 소식에 더욱 어처구니없다. 아파트값은 전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강남, 재건축, 교육 등 ‘특수한’ 가격을 설명하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들어도 납득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니 너무 불편하다. 부동산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시장이다. 책상 앞에 신문이 하나 놓였다. 며칠 지난 이 신문 1면에 ‘1억~2억씩 껑충 12·26 대책이 더 불지른 전셋값, 서울 14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런 유의 신문은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비웃는 식의 기사로, 서투른 정부의 설익은 정책이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메시지를 반복해 내보낸다. 무능한 너희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충고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차피 미운 정권을 향한 막무가내 성토인지 알 듯 모르겠다. 늘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투다.

한국 사회의 집단적 욕망의 성채와 같은 부동산은 일종의 ‘폰지게임’이다. 높은 수익률 보장으로 포장된 금융사기 수법 말이다. 다단계판매처럼 새 투자자의 돈으로 앞선 투자자에게 수익이나 원금을 돌려주지만 투자 유입이 확 줄거나 대거 자금을 회수할라치면 판이 깨진다.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서 부동산의 가치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파트에 돈을 거는 후발 투자자가 없다면 폰지사기처럼 일순간 거품이 터질 수 있다. 미국도, 일본도 그리고 유럽의 많은 나라도 겪은 일이다. 우리만 다르다고 할 수 없다. 곧 거품이 꺼진다고 나팔을 부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들의 말을 핑계 삼아 집을 사지 않은 채 투자 기회를 날렸다는 원망도 들린다. 반대로 수십 년 불패 신화를 써온 폰지게임이 끝없이 계속될 것처럼 자신하는 사람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올라타야 한다는 조바심이 지금은 대세다.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 꺼진 뒤에야 알게 되는 속성 탓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집에 투자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5년, 10년, 15년 뒤에도 현명함으로 기록될지는 불확실하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건 부풀어오른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가계부채, 소득 대비 너무 높은 주택 가격, 인구 감소, 초고령사회 진입, 저성장 경제 시대, 100% 넘는 주택보급률 등 예측 가능한 많은 변수를 언제까지 피해갈 수 있을까. 부동산 투자 심리의 급랭,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과잉의 부작용, 세계경제 파동 등 어쩌면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쓰나미처럼 부동산을 덮칠 수 있다.

거품이 터지는 순간 폰지게임 참여자뿐만 아니라 구경꾼, 이웃, 동떨어져 사는 주민 등 땅에 발 디딘 많은 이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긴다. 진짜 큰 고통은, 게임에서 돈을 얼마 잃은 부자가 아니라 집이 없는 자, 일감이 없는 자, 돈 없는 자에게 집중된다. 슬픈 부동산 묵시록의 결말이다. 그게 바로 세계사에서 수없이 봐왔던, 우리가 이해하는 경제위기의 법칙이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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