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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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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고 살살

등록 2019-10-23 02:52 수정 2020-05-02 19:29
ㅎ

“지금처럼만 하세요, 살살.”

모두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기, 마음이 녹는 듯한 문장을 만났다. 독자 이장규(50)씨가 ‘한가위 퀴즈큰잔치’ 응모엽서에 남긴 말을 속으로 두어 번 되뇌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것은 이 ‘아등바등 열심히 안 해도 괜찮다’는 응원인가, 아니면 ‘지금 살살 하고 있다’는 우회적인 질책인가. 정답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전남 무안에서 순천으로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고 있던 그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순천에서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해온 그는 잠시 학교를 떠나 무안의 전라남도교육청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

응원인가, 질책인가. 나에게도, 남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다. 다들 과도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교사는 교육을 통해 학교를 구하겠다고, 언론은 정론직필을 해서 세상을 구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너무 힘들다. 지금 하는 일을 충분히, 의미 있게 잘하고 있으니 자신을 혹사하지 말고 즐기면서 일하라는 뜻이다. 특히 와 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힘들게 보내지 않았나.

응원 감사하다. 조 전 장관 사퇴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 전 장관이 몇몇 문제는 있지만 검찰개혁 적임자고 과도한 검찰 탄압을 당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사퇴했을 때 전라도 말로 ‘짠했다’. 고뇌가 얼마나 컸겠나. 또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분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너무 떨어지면 진보 진영이 어려워지니, 너무 늦지 않게 사퇴한 것이 다행이다.

인상 깊게 읽은 기사는. 창간 때부터 을 본 것 같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처음 썼던 ‘미안해요 베트남’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최근 다시 ‘미안해요 베트남’ 시즌2 기사가 나오던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사를 보고 싶나. 조금 피로감이 있다. 그동안 정치, 사회 기사를 많이 봤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게 레드 기사다. 지금 레드 기사가 많이 부족하다. 우리는 위로도 힘도 받고 싶다. 이 힘을 빼고 살살 했으면 좋겠다.

한가위 퀴즈에는 당첨됐나.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 가장 소소하다. 치킨세트다. 매번 빼먹지 않고 응모했는데 나름의 당첨 노하우가 있다. 일단 정답을 다 맞혀야 하니 문제를 계속 붙잡고 있고, 그다음에는 계속 간절히 기도한다.

요즘 간절히 기도하는 소원이 있나. 내년 4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프로야구가 개막한다. 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만큼 기아 타이거즈를 사랑한다. 올 시즌 기아 타이거즈가 7위인 것은 견딜 수 없다. 지금 학교 아이들(초등학생)도 환장하게 보고 싶은데, 봄에는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 빨리 4월이 와서 아이들, 아들과 야구장에 가서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고 싶다. 물론 4월 총선도 무척 기대하고 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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