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부터 추첨에 들어가겠습니다.” 기사를 위해 어투를 바꾼 것이 아닙니다. 한가위 퀴즈큰잔치 출제위원장 박태우 기자는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계처럼, 공정하고 차갑게. 추첨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회의실로 향하던 편집장 발걸음이 머쓱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제 자리에서 합니다, 컴퓨터로.”(관련 기사는 40~45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봄 뉴스룸에 처음 들어서던 날, 황톳빛 묵직한 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 한가위 퀴즈 대잔치 추첨함’이라는 종이가 붙었는데, 그 쓰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깔리고, 누군가 조마조마해하며 저 함에 손을 넣고, 한 사람 한 사람 당첨 독자가 발표될 때마다 박수가 쏟아지고, 그런 풍경일까.
컴퓨터 추첨은 상상과 전혀 달리 클릭과 클릭으로 이어졌지만, 공정성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엑셀로 정리한 엽서 리스트에, 0~1 사이 난수를 무작위로 부여한 뒤 작은 순서대로 늘어세우고….” 차분한 저음으로 출제위원장이 설명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증거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지켜보던 편집장은 ‘기계와 공정성’을 기삿거리로 슬쩍 던져봅니다. 당첨자가 발표되고 뉴스룸에 한바탕 웃음이 번집니다. 쓸모 잃은 손때 묻은 황톳빛 추첨함만 그 자리에서 황망합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자두농사 청년’ 향년 29…귀촌 7년은 왜 죽음으로 끝났나
‘입틀막’ 대통령경호처, 총선 직후 1억원 ‘과학경호’ 행사 취소
윤 대통령 “남은 임기 3년 도와달라”…낙선 의원들 격려 오찬
‘1인 가구 10평 원룸’ 살아라?…임대주택 면적 논란에 물러선 국토부
5평 토굴의 스님 “편하다, 불편 오래되니 ‘불’ 자가 떨어져 버렸다”
민희진, 1년 전 “어도어는 내 음악·사업 위한 회사” 인터뷰 재조명
[현장] 미 대학가 텐트 농성…“가자 고통에 비하면 체포가 대수냐”
집값 빼고도 6298만원…‘웨딩플레이션’ 허리 휘는 예비부부
윤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에 야당 “악수하자며 따귀 때려”
양조장 직원, 음주단속 걸렸지만 무죄…이유가 놀랍다